전체 메뉴

[한국전쟁 발발 68주년 특별 인터뷰] KLO부대 참전용사 이운성 할아버지

김기한기자 승인 2018.06.25 13:46 | 최종 수정 2020.03.15 00:29 의견 0

KLO(켈로부대)는 북파공작부대로 알려진 8240부대를 말합니다.이들은 한국전쟁 초기부터 모집, 훈련되어 정보수집(정찰), 후방교란 등의 목적으로 적진 깊숙이 투입된 유격부대였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인천상륙작전 당시에도 팔미도 등대 점령작전 등의 혁혁한 전과를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외에도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양동작전이었던 원산상륙작전 등 수많은 작전 뒤에는 이름 없는 KLO부대원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명단 상으로 확인된 대원 중 전사자와 실종자 수가 3,415명으로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은 부대원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시사N라이프>가 인터뷰한 이운성 할아버지는 17살의 나이로 홀로 부산에 피난을 오게 되었다가 머물 곳도 없어 나라를 위해 싸워야겠다는 일념 하에 KLO부대가 어떤 부대인지 모르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이후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후방 교란을 위해 북한지역에 투입되었다가 생환해 다시 원산상륙작전에 투입되는 등 여러 차례 생사의 갈림길을 경험했던 역전의 용사입니다.

87세의 연세로 기억이 많이 쇠퇴하신 이운성 할아버지.이번 인터뷰를 통해 KLO부대의 공훈을 말씀해주시는 한편, 국가로부터 아무런 인정과 보상을 받지 못한 현실을 증언해 주셨고 참전용사로서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도 전해주셨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fCNKFuiRlw&feature=youtu.be

(동영상에 삽입된 독사진은 이운성 할아버지가 제공해주신 유일한 사진이다. KLO부대 특성상 사진을 찍을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기타 사진은 공개된 자료 중에서 삽입했다.)

Q. 한국전쟁 당시의 나이와 KLO부대에 들어가게 된 사연이 궁금합니다.

17살. 혼자 피난 가서 갈 곳도 없었고, 군대는 가야겠고...그땐 전쟁 때라서 지나가는 청년들은 다 잡아가다시피 (징집)했어.그래서 지원했어. (KLO부대)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갔어.8240 KLO부대라고 하면 알아. 계급도 없고 군번도 없는 부대에 있었어.

Q. KLO부대에서의 맡은 임무는 무엇이었나요

KLO부대는 정보, 교란, 태업, 선전...말하자면 유격부대야, 유격군.계급, 군번도 없었고...

Q. 당시 어느 지구의 전투에 투입되셨나요

고성 지구에서 육군부대와 합동작전 같은 걸 했었어.원산도 상륙을 했었고,9.28 (서울)수복할 때는 만포진까지 갔다 왔어. 만주 국경선 있는 데까지...

Q. 전투 상황 중 가장 많이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전투는 죽을 각오하고 가는 거지 뭐...같이 갔던 전우가 막 폭격에 맞아 쓰러졌을 때 끌어내려야 되고...작전 같이 하던 놈이 쓰러지면 그걸 끌고 내려가야 되고...업을 수도 없고 그냥 질질 끌고... 멱살 잡고 뉘어가지고 끌고 내려가고 그랬어...

Q. 작전 중 전사한 KLO부대원은 어떻게 되었나

전사한 사람, 모르는 사람도 많지 뭐. 죽은 사람도 많아.그러니까 전사한 사람들은 그대로 (그 자리에) 묻었으니...육군 같으면 군번이다 계급이다 있었을 거 아냐(최소한의 전사자 처리는 했다는 의미)우리는 계급도 군번도 없었어. 죽으면 그 자리에 그냥 묻어버리고 나오고...나중에 휴전되고 나서야 계급을 받았어. 계급은 이등병이고 군번은 07군번을 받았어.

Q. 썬글라스를 쓰고 다니시는데, 전투 중 눈을 다치셨다고 들었다.

파편이 터지면 목이나 몸에 빵꾸가 나고 잘라졌을텐데...먼 데서 폭발한 센 먼지를 뒤집어 써가지고 얼굴에 상처가 났었어.(포격 후폭풍에 휘말렸다는 의미)그때는 전투가 벌어지던 때니까 그냥 그대로 작전하고...걸어다니니까, 팔이 성하니까 작전은 다 했어.(나중에) 휴전되고 나서 눈이 이렇게 못쓰게 되더라고

Q. 침투작전 중 인민군과 가까이 조우한 적이 많을 것 같다.

작전하다보면 포위되어 가지고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 때가 있어.(은밀하게) 강원도 태백산맥 쪽으로 걸어 내려오다 보면...어쩌다 집이 하나씩 있잖아.

인민군들은 9.28 수복 이후 후퇴했지, 이 새끼들도 낙오돼 가지고 이북으로 넘어 가다가 떨어져 가지고 민가 집에 (숨어)들어가 있어.우리도 그런데 (숨어)들어가잖아, 민가 집 같은 데 있으면...서로 만나면 그 사람들도 총을 가지고 있고 우리도 총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 쏘지는 못 해.

“야! 쏘지 말고! 서로 죽고 싶으냐”좋게 이야기하고 헤어져 버려. 나는 그랬었어.거기서 전투하는 놈은 바보지, 아니냐 똑같은 입장인데...“너희는 넘어가라, 우리도 내려가고...” 조용히 하자고. 총소리 내면 또 안돼잖아. 좋게 얘기하고 그랬어. 서로 불쌍하다고 하면서...

Q. 전쟁이 끝난 후에는 어떻게 되셨나요

끝나고도 (군에) 오래 있었지. 휴전되고 나서도 군대생활 오래 했어. 그냥 교육 받고 연습하고 지냈지. 전시 아니니까 마음대로 놀고 그랬어. 내가 계급, 군번있는 부대도 아니었었거든

(그 후) 미8군 정보처에서 육군으로 넘어갔어. 군복이고 뭐고 (미군이 제공했고) 낙하산 교육받고 이랬었는데...휴전이 되고나니까 미군이 많이 돌아가게 되었지. 우리가 미군 부대에서 보급 타먹고 있었는데...

그래서 우리를 현역으로 넘겼다고, 인원을. 저희들 맘대로.우리는 그 당시에 군번, 계급 다 없었어. 미군이 휴전 되고 나서 한참 있다가 우리를 육군본부에다 넘겨버렸어. 그때 군번을 받았어. 내 군번이 0776858이야.

Q. 한국전쟁 상이용사이신데, 정부로부터 인정은 받으셨나요

제대해 가지고서 국방부에다가 내가 진정서를 냈어.육군병원에 가서 신체검사 해 가지고 육군본부 병무처에다 올려버렸어.(그 후에야) 상이용사로 나온거야..

Q. 국가로부터 연금이나 혜택을 받으신 것은 없었나요

하나도 못 받았어. 나중에야 KLO부대라고 연금 나오더라고...

Q. KLO부대 생존자 중에 보상을 못 받으신 분들이 많이 있나요

많어, 많어, 많어! 죽은 사람도 많고... 뭐, (전사자) 이름도 없고 그래서 (못 받았어). 나는 살아있는 사람이라서 (받을 수 있었어). (그런데) 살아있는 사람도 있어. 혜택을 아무 것도 못 받는 사람이 많아.

Q.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을 보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나는 그것에 대해서는 남북으로 가르고 싶지 않아. 똑같은 우리 백성이잖아. 나는 멀쩡히 서 있는 인민군 (함부로) 쏘아 죽이진 않았어. (이젠) 합쳐야 돼!

 

한국전쟁 발발 68주년 군번도 계급도 없이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호국영령과 참전용사 여러분께 고마움과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