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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푸틴_X파일(10)] 독일 간첩 라스푸틴

칼럼니스트 박광작 승인 2019.02.10 09:00 의견 0

러시아 제국이 전군 동원령을 내리자 독일제국은 이를 빌미로 바로 러시아에 대해 선전포고하였다. 1914년 독일-러시아 전쟁의 개시(開始)와 동시에 니콜라이 대공은 총사령관으로 영전했지만, 전투 경험도 전략도 없는 무능한 장군이었다. 총사령관의 역량뿐만 아니라 농업 국가인 러시아는 최초의 세계대전에 대한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 군사력을 뒷받침할 산업은 후진적이었고, 군대는 독일제국에 비교해 약체 군대였다.

보급을 위한 수송시설도 마련돼 있지 않았다. 독일제국은 러시아보다도 10배로 조밀한 보급 철도망을 가졌던 것이다. 1차대전이 발생한 1914년 바로 그해 말에 러시아 측에 12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식량 사정도 최악으로 치달았다. 1915년은 전쟁 기간 최악의 해였다.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도 함락되었다.

차르는 당숙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총사령관을 해임하고 직접 전쟁 지휘를 맡았다. 러시아 장군들은 차르가 군사 문제에서 어린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능력이 없다고 불만을 드러내었고 차르의 지도력을 의심할 지경에 이르렀다. 러시아 병정의 3분의 1은 소총도 없이 전선에 투입되었다. 1915년 말 기준으로 제정 러시아 영토의 4분의 1 가량이 독일 및 오스트리아 제국에게 빼앗긴 상태이었다.

러시아의 국내 정세는 전쟁 초기의 범 슬라브족 기치의 환호 속에 전쟁으로 달려 나가자는 주전론적 여론은 썰물처럼 빠져 나가고 기아와 가난과 무정부적 혼란이 몰려왔다. 제정 러시아는 종말적 파국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쟁에 대한 책임이 주전론자(主戰論者)들에게 돌아가야 했지만 그들은 독일제국의 황제 빌헬름 2세와 사촌 간인 알렉산드라 황후와 라스푸틴이 러시아 제국을 패배로 이끌어갈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라스푸틴을 독일 간첩이라고 몰아 붙였다. 간첩 혐의만으로 부족했으므로 라스푸틴을 섹스 광, 황후와 관계를 갖은 악마의 승려, 비리와 국정 농단의 주범 등등 가능한 모든 주홍글씨를 라스푸틴에게 갖다 붙였다. 결국 그는 제정 러시아를 몰락시킬 인물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1917년 2월 혁명으로 제정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가 멸망하고 2월 혁명 후 소비에트와 두마(국회)를 권력 기반으로 하는 임시정부는 차르 적폐 특별 ‘조사위원회’를 발족, 광범위한 조사를 실시했다.

그 중 라스푸틴에 대한 담당 부서인 13조사부의 조사 자료 진본은 비밀로 보존되었다가 유실되었던 것이다. 그 후 1995년 런던 소더비즈 경매에서 세계적 첼로 연주자이며 구소련 반체제인사였던 로스트로포비치(Rostropovich)가 이 조사자료 진본을 낙찰 받았다. 이 진본을 친구 역사가 라드신스키(Edward Stanislawowitsch Radsinski)가 분석, 정리하여 <라스푸틴 비밀문서>란 제목의 책을 러시아어로 출판했고, 영어, 독일어 번역본도 출판되었다.

라스푸틴 적폐조사 위원회의 비밀문서 원본을 분석한 결과, 라스푸틴에 대한 유언비어(流言蜚語)는 대부분 과장 또는 거짓으로 궁전 내의 왕후 반대파, 주전론자(主戰論者), 자유주의자, 과격 사회 혁명가, 볼셰비키에 의해 정략적 목적에서 유포된 것으로 밝혀졌다.

*글쓴이: 박광작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서울대학교에서 비교체제론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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