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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독일 통일(12)] 한 시대를 접고 새로운 시대로 들어갔다.

칼럼니스트 취송 승인 2019.02.21 09:00 | 최종 수정 2019.11.20 13:56 의견 0

사전 협의가 없었다고 비판하면서도,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 모두 재통일을 위한 콜의 고무적인 조치에 원칙적으로 동의했다. 그러나 이런 동의는 독일이 서방동맹에 통합된다는 조건 하의 것이었다. 12월 12일 베를린 방문 중에 조심스럽게 미국 국무장관은 서독 정부가 혼자 나아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독일정책에서 연합국의 유보권을 다시 거론하였다.

비공식적으로 흘러나온 베이커 발언의 요지는 “독일 연방정부는 이것(서방동맹)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파리에서는 “누가 베를린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있는가를 상기하여야 한다”라는 그의 발언까지 흘러 나왔다.

당시까지 소련의 입장은 1989년 유엔에서 당시 외무장관 셰바르드나제가 발언한 내용 그대로였다. 그는 전후 유럽의 정치질서를 변경시키려는 보복주의 세력을 비판하면서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에 이들 세력을 부추기는 자들”에게 경고하였다. 동유럽 블록의 일은 자기들의 관할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자세는 10개항 방안이 나오고 동독의 사정이 급격히 악화될 때까지는 변함이 없었다.

10개항 방안이 나온 뒤인 12월 10일 고르바초프는 사회주의통일당-민사당 당수 기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콜의 10개 항 방안에 대하여 불쾌감을 표시했다.”독일민주공화국의 주권을 제한하려는 서방의 어떠한 시도도 소련에 의해 거부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동독의 안정과 유럽 대륙의 안정은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와중에도 미국과 소련 간의 물밑 접촉은 긴밀하게 진행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89년 12월 2~3일 지중해 말타에서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 간의 미-소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그 회담에서 냉전 종식을 내용으로 하는 공동성명이 발표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결과적으로 거기에는 못 미쳐도, 두 정상은 공동기자회견에서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였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세계는 한 시대를 접고 새로운 시대로 들어갔다. 우리는 항구적인 평화의 시대로 가는 긴 여정의 출발점에 서 있다. 힘의 위협, 불신, 심리적이고 이념적인 투쟁은 모두 과거지사가 되어야 한다…미국 대통령에게 내가 미국에 대하여 열전을 결코 시작하지 않겠다는 확신을 주었다”고 말했다. 이에 응하여 부시 대통령은 “우리는 항구적 평화를 실현하여 동-서 관계를 지속적 협력 관계로 전환시킬 수 있다. 이것이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내가 말타에서 시작한 미래다”라고 화답했다.

이렇게 1989년은 지나갔다. 그러나 해가 바뀌면서 동독 내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경제상황은 급락이 아니라 마비상태에 빠지고 평화적이지만 시위는 더욱 커져갔다.

*글쓴이: 취송(翠松) / 재야학자. 독일사회와 정치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했다.

*본 연재는 인터넷신문 <제3의길>에 기고된 "독일 통일의 경험"을 재구성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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