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한국 교회는 병든 골리앗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와 한국 교회(7)

조연호 작가 승인 2019.06.03 11:27 의견 0

한국 교회는 병든 골리앗이다

4차 산업혁명은 네 번째 혁명이다. version 4.0이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는 몇 번째 버전일까(세계 교회 차원을 언급하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필자의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교회만을 다룬다)

1차 산업혁명은 기계혁명이었고, 그 시절에는 대혁명을 비롯한 혁명이 유럽 전역에서 일어나 기독교를 무너뜨렸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청교도들의 이주를 통해 생성된 기독교 국가였다. 이러한 미국의 기독교적인 특징은 알렉스 드 토크빌이나 막스 베버와 같은 대학자들의 저작을 통해서 살펴 볼 수 있으며, 아울러 미국 성장의 정신적 토대로 인증 받기도 한다.

2차 산업혁명은 전기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하루 24시간 내내 생산이 가능해졌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시절로 본격적으로 미국이 세계 리더 역할을 시작했다.

이 시기에 개신교가 우리나라에 전파됐으며, 당시 기독교는 큰 문화적 충격을 동반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처음부터 기독교를 배척하지도 않았지만, 우호적으로도 수용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관찰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 부정적인 전쟁이 발발하자, 당시 추진하고 있던 쇄국정책을 더 견고히 하고,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개방의 문은 더 굳게 걸어 잠갔다. 개신교보다 일찍 들어온 천주교는 박했받았으며, 순교자도 속출했다.

이러한 박해는 자신감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었고, 세계적인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무지의 상황에서 저지른 시행착오였다. 사상적으로 생각해 보면, 기존 질서와 새로운 질서의 대립으로 인한 관념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후 서양의 접근은 집요했고, 이윽고 1876년 ‘조일통상조규’(강화도 조약으로 알려져 있는데, 정확한 명칭은 조일통상조규이다)가 맺어진 후에는 서구 열강의 강압적인 침탈이 시작됐다. 역사는 과거를 다루는 것이어서 가정하는 것은 의미 없다고 하지만, 쇄국이 아니라 개방정책을 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은 어쩔 수 없이 던져보게 된다.

서양의 문화, 문물 등은 당시 조선에서 쉽게 수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관념의 충돌’이라고 해야 할까 조선 500년 동안 기강의 정신적 토대였던 유교는 만민평등사상의 기독교가 국내에 들어왔을 때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충돌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20세기 말에 리콴유 등을 통해 ‘유교 민주주의’가 등장한다. 서구의 민주주의와 다른 아시아의 가치와 연관된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즉, 유교와 기독교의 충돌이 계속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결국, 쇄국으로 일관하던 조선은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됐고, 독립 후에 한국은 비로소 근대화를 추진한다. 한국 기독교는 근대화와 더불어 성장했다. 근대화 자체가 서양 문물의 선진성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세계의 표준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양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독교는 미국을 상징하는 문명이었다.

‘부흥’은 근대화 시기에 어울리는 단어였다. ‘천만 성도’를 선전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당시에도 염연히 존재했던 기독교의 폐해는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인다. 성장가도를 달렸던 기독교의 성장에 대한 자부심은 굉장했다.

그러나 근대화와 그럭저럭 궁합을 맞춰가면서 성장했던 기독교는 ‘정보화 시대’로 일컫는 3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그 성장 속도가 줄어든다(시기적으로 한국 교회의 성장은 1970년대 이후로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3차 산업혁명을 말하면 1970년대를 기점으로 보는데, 한국은 당시 정보화를 운운할만한 수준의 국가가 아니었다. 따라서 2차 산업혁명을 뒤늦게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추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쇠락의 길로 들어선다(최근 종교인구 조사를 보면 개신교 인구가 늘어났다. 하지만 교파별 자체 조사를 보면 성도 수가 줄었다고 한다. 여러 가지 분석이 있을 수 있으나 개신교인 숫자가 허수라는 분석에 대부분 동의한다).

'정보화 시대’의 한국 교회는 과학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했다. 19세기 말에 한국에 들어올 때는 당시 선진문물을 수용하는 가교 역할을 기독교가 했지만, 현재는 새로운 문화와 문물을 수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울러 냉전체제 종식 후 기독교는 이데올로기 방파제 역할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여전히 보수적인 기독교 단체에서는 '빨갱이' 이데올로기를 선전한다.

종교는 무형이며, 관념적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적인 것이 아니기에 인간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이 줄어들면, 그 힘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보기술이 발달한 3차 산업혁명 시대가 성숙할수록 인간 정신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종교 역할은 어쩔 수 없이 물러설 수밖에 없다. 실제로 현재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종교를 믿고 있는 사람보다 무신론자가 더 많다.

선진국과 비교할 때 정보화의 맛을 조금 늦게 본 한국과 교회는 냉전 이데올로기와 규모에 천착했던 근대화 시기의 특징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1990년대 독일의 통일, 소련의 해체로 이데올로기 승부는 일단 결정됐다.

그러면서, 흑백논리가 사라지고,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구호가 선봉이 돼서 기독교에‘선 빵’을 날렸다. 규모로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던 시대의 교회는 큰 교회 건물만으로도 시대적 랜드마크로 견고한 철옹성을 구축할 수 있었지만, 개인 한 명, 한 명이 저격수가 돼서 사방에서 공격하자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작은 소수의 달걀 투척은 이내 쌓이고 썩어서 교회로 찾아오는 사람에게 역겨운 냄새를 선사했고 발걸음을 돌리게 했다.

기존에 쌓여있던 재고(在庫)와 20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한국의 각 계층에 자리 잡은 위정자들의 힘은 21세기가 20년이 지나가는 시점에도 한국 교회의 위치를 유지하게 한다. 그러나 그 힘은 계속 줄어들 것이고, 작게만 생각했던 세상의 공격은 병든 골리앗이 된 교회를 향해 날아오는 다윗의 돌팔매가 돼서 계속 정수리를 가격할 것이다.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