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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대‘한심(寒心)’국] 37편: 광장집회

조인 작가 승인 2020.10.18 09:35 | 최종 수정 2020.10.18 23:49 의견 0

과거부터 광장은 백성과 민중의 공간이었다. 광장에서는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그 이야기가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어떤 집에 불화를 만들기도 하고, 나랏님을 불태우기도 했다. 그렇다고 살림살이가 얼마나 나아졌을까? 달라지는 건 잠시, 괜히 구관이 명관이 아니다. 그래도 세월이 약인가 보다. 지금처럼 대통령을 욕하고, 정부를 비난하고 비판해도 잡아가는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오늘 얼마나 올까요?”
“예. 한 이만 명 정도 오지 않을까요?”
“좀 더 와야 할 텐데.”
“목사님 그것도 많습니다. 전국에서 올라오긴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쉽지가 않습니다.”
“개 놈의 새끼들 제대로 방역도 못 하고, 조작하는 주제들이 우리 모임까지 망치려 하니. 쯧쯧”

차량은 통제됐지만, 여기저기서 시험 방송으로 울리는 소리 때문에 열띤 목사의 목소리는 묻히고, 그 이마에 견고히 그어진 주름살만 굵게 구부러진다. 주변의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도 혼자서 당당하게 얼굴을 드러내 놓고 있으면서, ‘난 안 걸린다.’라고 확신한다. 일각에서는 ‘얼굴을 가리면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올 거야’라는 농담을 던질 정도다.

‘여기서 물러서면 갈 데가 없다. 이쯤 되면 알아서 협상 테이블이 마련돼야 하는데, 좀처럼 숙이지 않으니 답답하구먼. 무슨 배짱으로 버티는 거지? 알 수가 없네.’

교회 주변이 재개발 지역으로 결정돼 충분한 보상이 나왔음에도 목사는 비켜나기를 거부했다. 일명 ‘알 박기’를 시전한 것이다. 사실, 그렇게 버티면 얼마 안 지나서 다시 협상 테이블이 차려질 줄 알고 기다렸는데,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미 교인도 줄고, 그저 건물 하나 덩그러니 놓고 버티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담당 부서도 쉽게 고개를 숙일 필요 없었던 것이다. 

“어차피 교인들 다 떠나면 목사도 더 버티지 못할 겁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네만....”

그러나 담당자들이 몰랐던 사실이 있었다. 목사는 단순한 노인이 아니었다. 본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욕심을 차리기 위해서 노회에서 나가서 별도의 교단을 만들 정도였다. 더욱이 교인들이 많이 떠난 상태였으니, 교회를 좌지우지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내 나이가 벌써 일흔인 데, 그깟 돈 먹고 떨어지라면 안 되지.’

 목사는 멀리서 설치된 무대를 바라본다. 그리고 지금까지 달려 온 몇 년을 회상한다. 

‘어렵게도 왔다. 내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왔다. 그리고 이제 그 종착역에 도달할 순간이 왔다.’

어느새 광장은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서 전국 각지에서 올라 온 사람들이 조금씩 공간을 메우고 있었고, 그 주변으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경찰들이 무더위에도 방호복을 입고 에워싸고 있었다. 혹, 지나가는 외국인들이 본다면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경찰들이 단단히 챙겨 입고 온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다.

“목사님 곧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요. 뭐 참석 인원이야 부풀리면 되는 거니까.”

언론에서도 상스러운 말을 사용하지 않을 뿐이지, 비판적인 보도가 일색이고 일반적인 상식으로도 ‘코로나’ 국면에 집회를 여는 것은 정상적인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갈데 까지 간 사람들은 물러날 곳이 없는 법이다. 오죽하면,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궁서설묘(窮鼠囓猫)란 사자성어가 있을까?

“저거 미친놈 아냐?”
“그러게요. 대부분 노인이 모일 텐데, 줄초상 나겠어요.”
“그러게 저런 놈을 잡아 넣어야지. 도대체 감옥이 왜 있는 거야!”

그러나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주의 질서를 수호하는 국가이다. 특히, 현 정권은 그런 민주주의를 더 신봉하려고 노력하는 정권이다. 아니던가? 국민의 구 할이 미친 짓이라고 하고 혹은 99% 미친 짓이라고 여기더라도 그런 미친 짓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땅을 파면 어디서나 나오는 개미처럼 있기 마련이었다.

“저 목사 정신 나간 거 같아요.”
“아니에요. 그렇게 나쁜 목사님은 아니에요.”
“네?”

같이 비판할 줄 알고 던진 말에 이웃집 여자의 반응이 기대와 달라서, 지원의 어머니는 당황했다.

‘정신 나간 사람이 저기에 다 모인 게 아니구먼.’

버스를 타고 집회에 가지 못했을 뿐, 마음으로는 광장 집회를 응원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특히, 보수적인 목회를 일삼는 목사들은 광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현재 정권을 싫어하기에 어쩔 수 없이 지지하기도 했다.

“지금 정권은 좌파 정권입니다. 그들은 우리 기독교에 위해를 가하고 예배까지도 막아서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핍박에도 굴하지 말고 매주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코로나 보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 신앙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아멘!”

교인은 200여 명밖에 다니지 않는 교회 증축으로 20억을 대출받았다. 교회 재정이 어려운 게 당연한 데도 목사는 자신의 급여는 보존했다. 당연히 자신을 쳐다보는 부목사들의 급여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건축 헌금을 종용하기 위해서 약정서를 나눠 줬다.

“1인당 무조건 1천만 원씩 약정해서 5년 동안 건축 헌금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우리 교회는 지역 복음 기지로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서 증축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새 건축을 하고 싶었으나. 여러 여건을 고려해서 증축으로 결정했습니다. 교우 여러분 모두 건축에 동참해 주시기를 간절히 요청합니다.”

이미 대출받아서 증축을 완료했고, 이어서 건축 헌금을 재촉하고 있었는데 코로나로 대면 예배가 어려워지니 헌금도 줄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목사 입장에서는 침이 바짝바짝 마를 수밖에 없었다. 

“목사님 이번 주 헌금이 얼마 안 되네요.”
“응? 이거 원, 예배를 안 드리면 반 토막이 나버리니.”
“다음 주에 대출 이자를 내야 합니다.”
“참, 이 정도 신앙밖에 안 된단 말인가?”

행정직원의 말을 들으니, 당장 마음이 조여 온다. 

“부목사들 모이라고 해요.”

잠시 후 부목사 세 명이 쪼로록 달려온다. 수석 부목사가 노크를 하고, 바로 담임 목사실로 들어온다. 

“이번 주에 우리 교회는 대면 예배를 드리도록 할테니 그렇게들 알아요.”

세 명의 부목사는 서로 얼굴을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떨군다.

“네. 알겠습니다.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교회 상황을 고려하면, 대면 예배를 드리는 게 당연했다. 그러지 않아도 ‘코로나’ 시국에 급여라도 줄까 봐 노심초사했던 것이다. 

‘기독교’가 ‘개독교’가 되고 ‘목사’가 ‘먹사’가 된 지 오래다 보니, 이제 교회에 대한 모멸적인 언사와 비난, 손가락질은 크게 무섭지도 않았고, 양심에 큰 종을 치지도 않았다. 오직 목사로서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금전이 중요해졌을 뿐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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