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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대‘한심(寒心)’국] 42편: 대한민국 군대(2) "한 연예인 이야기"

조인 작가 승인 2021.01.23 19:20 의견 0

앳딘 얼굴에 우락부락한 몸,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의 대명사로 꼽히던 청년이 있었다. 그의 춤 기술은 같은 댄스 가수들이 봐도 신기에 가까웠고, 얼굴은 앳된 소년의 얼굴을 하고, 몸은 액션 배우를 연상하게 하는 반전의 몸을 가졌다.

가창력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타고난 미성으로 어지간한 고음은 무난히 소화할 수 있었다. TV를 틀면 하루에 한두 번은 꼭 볼 수밖에 없어서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 없는 연예인이었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은 당연한 것이었을까? 그는 선한 청년 이미지를 굳혔고, 기독교인 천만 명을 운운하던 시대에 수상 소감으로 항상

“가장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라고 소감을 말해서 수많은 기독교 청년들의 우상이 됐다. 아울러 미국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는 상황이어서 국방의 의무를 회피할 수 있었음에도 자진해서 입대하겠다고 해서 병무청의 홍보대사가 되기까지 했다. 특히, 1990년대는 많은 연예인이 병역기피로 입방아에 올랐고, 유력한 대통령 후보도 아들들의 병역문제로 두 번이나 낙선했던 터라, 세간의 깨끗한 이미지를 구축한 연예인, 그것도 병역의 의무가 없는 청년이 자진 입대한다고 하니 새로운 병영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조금씩 부풀어 올랐다.

“저는 미국에서 주로 생활했지만,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고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에 당연히 국방의 의무를 수행할 것입니다. 현재는 해병대에 자원입대해서 대한민국의 당당한 국군이 되고 싶습니다.”

연일 좋지 않은 병역 회피가 이슈되는 상황에서 젊은 남자 연예인의 선언은 좋은 선전이 될수밖에 없었다. 깨끗하고 선한 이미지로 인해서 보수적인 기독교 목사들조차도 그의 신앙심을 높이 샀다. 그가 다니는 교회 목사는 설교 시간에 격주로 그를 칭찬했다. 혁신적인 이미지, 그리고 깨끗한 이미지로 그의 인기는 수그러들지 않았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광고마다 그를 일순위로 해서 모델로 섭외하는 데 불철주야 매달리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병역의 의무를 질 시간이 다가왔다. 대한민국 남자들은 입대 심정을 ‘도살장의 소’가 된 느낌에 비교한다. 2년에 가까운 시간을 허비한다고 생각하고, 남자, 여자, 군인으로 나눌 정도로 새로운 인간형으로 구분될 정도로 괄시받기도 한다. 아무리 똑똑한 대학생도 군 적응 시절에는 멍청이가 되기 일쑤고, 전역하고 나서도 사회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었다.

이런 이야기들을 숱하게 들은 연예인은 마지막으로 미국에 다녀오겠다고 병무청에 고하고 비행기에 오른다. 그렇게 떠난 고국 땅을 앞으로 밟을 수 없을 줄 그 누가 알았을까? 그는 망명을 원하지 않았지만, 그가 조국이라고 선언한 대한민국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왜 너 군대 간다고 설친거야?”

기획사 사장이 그를 추궁한다. 그러지 않아도 한창 전성기 시절에 빼 먹을 만큼 빼 먹어야 하는데, 뜻밖의 자진 입대선언을 하니 소속사 입장은 답답할 지경이었다. 그런 아름다운 선언만 하지 않았어도 충분히 병역 문제를 해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미국 시민권만 받으면 경력 중단 없이 연예인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당연한 거 아닌가요? 제가 이렇게 한국에 와서 돈도 벌고 있고.”
“순진한 건지, 아니면 바보인 건지.”
“네?”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네 위치가 지금과 같을 거 같아? 댄스 가수의 생명이 길 거 같아? 너도 종종 허리랑 무릎이 아프다고 호소하잖아. 군대 다녀오면 좋아질 거 같아?”

대표의 말을 들으니, 갑자기 많은 생각이 밀물처럼 몰려온다.

‘내가 왜 연예인이 되려고 했을까?’

깨끗한 이미지의 청년은 철학자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학식이 풍부한 지성인도 아니었다. 그는 춤추는 게 좋았고, 남들의 관심을 받고 인기를 얻고 싶어서 가수가 되고 싶었다. 물론, 돈도 벌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 그만둬도 평생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저축도 해 놓았다.

‘난, 춤추는 게 좋았다. 그리고 인기도 좋았고. 돈도 많이 벌어서 성공하고 싶었다. 당연히 좋은 일도 하고 싶었고.’

“네가 생각하는 성공과 좋은 일도 전성기가 짧으면 소용없다는 생각을 왜 못했니?”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해요?”
“일단, 미국으로 가서 시민권을 취득해! 처음에야 욕먹겠지. 그리고 언론마다 난리 치겠지만 곧 잠잠해 지면 다시 활동하면 돼. 물론, 그전과 같은 인기를 얻을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하겠지만, 너의 인지도 정도면 꽤 괜찮을 거야! 어차피 불법적인 방법으로 병역을 회피하는 것도 아니고.”

미국에 들어가는 일은 쉬웠다. 간혹 “너 안 돌아오는 거 아니지?”라고 하면서 농담하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그는 “그럴 리가?”라고 하면서 웃어넘겼다. 병무청에서도 전혀 의심하지 않고 그의 미국행을 허가해 주었다.

“건강하게 돌아오세요. 대한민국의 병영문화는 성준 씨가 바꿀 수 있어요.”
“네. 감사합니다.”

주변의 시각은 주로 걱정과 우려였다. 한국 군대를 너무 쉽게 봤다는 걱정도 있었고, 경력이 단절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그 누구도‘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말하지 않았다. 어지간하면 빠져나가는 게 현명한 처신으로 연예계에는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자원입대와 해병대를 운운했으니, 비슷한 처지에 있는 동료들에게는 역적과 다름없었다. 소속사 대표도 다른 기획사 대표들한테 싫은 소리를 들었던 게 분명했다.

‘이제 나는 어떡하면 좋을까? 정말 시민권을 받고 병역을 피해야 할까? 아니면, 자원입대를 해야 할까?’

흰 구름을 가로지르는 비행기 속에서 그는 착륙 지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 5일 대한민국 청년들의 우상이었던 그가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는 소식입니다. 귀국과 동시에 자원입대를 예정했던 그였기에,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일반 연예인들이라면 크게 문제 될 게 없었지만, 그는 이미 전 국민의 초관심 인물이었다. 그의 결정은 개인의 선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단일 민족이라는 거대한 수레에서 단 한 번도 벗어난 적 없던 대한민국에서 이런 개인의 결정은 수레에서 낙하하는 결정이었다. 스스로 공언한 약속을 파기한다면, 공인으로서 역할은 벼랑 끝으로 달리는 자동차와 다를 바 없었다.

“혹시, 저 사람 군 면제를 위해서 시민권 취득한 게 아닐까?”
“설마, 시민권이야 취득할 수도 있잖아. 그리고 돌아와서 입대하지 않을까?”

여전히 사람들은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특히, 그를 우상으로 여기는 어린 청소년들은 군 문제와 상관없이 그를 좋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청소년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어야 공인이 될 수 있었다. 스스로 약속을 저버린 공인은 ‘낙인’으로 추락할 뿐이었다.

“너, 시민권 취득은 왜 한 거야?”
“응? 왜?”
“지금 난리가 났어. 너 병역 기피하려고 시민권 받은 거 아니냐고.”
“응? 난 시민권 받을 자격이 있잖아? 그리고 시민권 받는 건 내 자유고.”
“그렇지. 그런데, 너 군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거 알아?”
“그래? 우리 대표는 그렇게 말하지 않던데.”
“대표야 그렇게 말하겠지만, 지금 여론이 장난 아니야. 너 군 면제용으로 시민권 받은 거면 험난한 일정이 널 맞이할 거야!”

킴과 전화를 끊고 나니, 목에 커다란 쇠 구슬이 꽉 막은 느낌이다.

‘음. 군대가 그렇게 심각한가? 난 간다고 했지만, 안 갈 수 있는 자유도 있잖아. 시민권 취득도 내 권리이고. 그리고 나만 안 가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나는 정당하게 빠지는 거잖아.’

오랜 외국 생활로 인해서 대한민국의 정서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문화 차이는 앞으로가 더 기대됐던 연예인의 삶을 망칠 수도 있었다.

“그래, 너 시민권 취득 받았지? 그러나 당분간 몸조심하고 있다가 여론이 좀 잠잠해지면, 다시 활동하자고.”
“네. 대표님.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하던데요.”
“원래 다 그런 거야! 네가 하도 군대 간다고 설레발 쳐서 더 그래.”
“네.”

당시 마음은 사실이었다. 고국에 돌아와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었고, 그 모든 게 감사해서 보답할 길을 찾았다. 그래서 찾은 길이 바로 군입대였다. 그만한 봉사와 헌신이 어디에 있을까? 그러나 이벤트성으로 던진 말이 어느새 굴러 굴러 거대한 태산이 될 줄 그는 알지 못했다. 그는 대한민국을 이해할 정도로 총명하고 사리분별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한국에서 성공하고 돈 많이 벌고, 앞으로 좋은 일도 하면서 안정적으로 연예인으로서 살아가고 싶었을 뿐이다.

‘일단, 한국에 가자. 그러면 다 알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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