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학(考現學)이란 '현대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유행의 변천을 조직적, 과학적으로 연구하여 현대의 참된 모습을 규명하려는 학문'을 의미합니다. [일상의 고현학]은 일상생활 속에 벌어지는 사안 하나를 주제로, 언제 어디서 시작되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펼쳐보는 이색코너입니다. 인터넷 검색 정보를 중심으로 정리한 넓고 얇은 내용이지만, 일상을 충실히 살아갈 수 있는 지식의 층위를 높여가 보자구요!
2025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는 을사(乙巳)년으로 푸른 뱀의 해라고 합니다. 오늘은 2025년 푸른 뱀의 해에 대한 고현학입니다.
1. 왜 푸른 뱀의 해라고 하나?
천간과 지지가 차례로 만나 만들어진 60간지는 갑자(甲子)로 시작해서 계해(癸亥)로 끝나는 육십 개의 조합을 이룹니다. 이는 동아시아의 시간관이 순환적 특성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해가 뜨고 지는 것, 계절이 바뀌는 것, 별들이 움직이는 것과 같은 자연의 순환을 기반으로 시간을 이해했습니다.
60간지는 10개의 천간(天干)과 12개의 지지(地支)를 순서대로 조합하여 만들어지는데, 앞에 오는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10가지 천간은 음양오행(陰陽五行)을 의미하고, 뒤에 붙는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의 12개 지지는 동물을 상징합니다.
을사년은 60간지의 42번째 해로, 천간 '을'은 오행에서는 나무, 오방으로는 동쪽, 따라서 오방색 중에서 푸른색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지지 '사'는 뱀을 의미하니, 2025년은 푸른 뱀의 해가 됩니다.
2025는 45의 제곱수로, 이런 제곱수의 해는 89년 전인 1936년(44의 제곱) 이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것입니다. 다음 제곱수의 해는 91년 후인 2116년(46의 제곱)이 되어, 한 세대에 단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매우 특별한 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2025년 5월 5일이 '제곱근의 날'이 된다는 점입니다. 제곱근의 날은 어떤 날짜의 월과 일을 곱해 해당 연도의 마지막 두 자릿수가 되는 날을 의미하는데, 5×5=25로 2025년의 마지막 두 자리와 일치합니다. 이처럼 2025년은 수학적으로도 매우 독특한 의미를 지닌 해입니다.
특히 2025년은 21세기를 연 2000년 이후 첫 희년입니다. 이는 새로운 시작과 화해의 의미를 담고 있는데요. 고대 히브리 전통에서는 7년간의 안식년을 7번 지내고 49년이 지난 다음 해, 즉 50년마다 축제를 열었습니다. 15세기부터 가톨릭교회는 "모든 세대가 최소 한 번은 희년의 은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며 주기를 25년으로 줄였습니다. 이에 지난 1월 1일,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의 다섯 청동문 중 맨 오른쪽 '성문(聖門)'이 25년 만에 열렸습니다.
2.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을사년에서 나왔다면서?
1905년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해입니다. 당시 메이지유신에 성공한 일본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연이어 승리하며 한반도를 포위했고, 결국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제로 박탈하는 을사늑약을 체결했습니다. '늑약(勒約)'이라는 말 자체가 '억지로 맺은 불평등조약'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아픔은 우리 언어에도 남아있습니다. '을씨년스럽다'라는 말은 1908년 이해조의 신소설 '빈상설'에서 '을사년스럽다'라는 표현으로 처음 등장했습니다. 을사늑약 이후 온 나라가 비통하고 스산한 분위기에 잠겼던 그 시절의 암울함을 표현한 이 말은, 이후 어수선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형용하는 관용구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하나의 썰일 뿐이고요. 1605년 을사년에 대홍수, 1785년 을사년에 조선에 전례 없던 대기근이 있었는데 이후 몇몇 문헌에서 을사년스럽다는 표현이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마도 이건 을사년(乙巳年)이라는 육십갑자의 조합으로 설명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앞서 ‘을’은 오행에서는 ‘목(木)’, 음양으로는 ‘음(陰)’에 해당합니다. 또, ‘을’이라는 글자는 땅에서 싹이 돋아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생명력과 성장의 기운을 상징합니다.
‘사’는 오행에서는 화(火), 음양에서는 음(陰)에 해당하는데, 이 두 글자의 속성인 ‘목’과 ‘화’의 관계를 살펴보면 ‘목’은 ‘화’를 살리는 상생(相生) 관계입니다. 나무가 불을 지필 수 있듯이, 을사년은 변화와 전환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해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1545년 을사년에는 조선 4대 사화 중 마지막 사화인 을사사화가 벌어지는 비극적인 사건도 있었지만, 구국의 성웅 이순신 장군이 탄생하여, 시련과 희망이 공존했던 해이기도 했습니다.
1965년의 을사년에는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이른바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알려진 이 조약은 일본의 침략과 식민 지배에 대한 사죄 없이, 일본군 위안부나 강제 징용자, 독도 문제 등이 누락된 채 3억 달러의 보상금과 2억 달러의 차관을 받고 국교를 정상화했는데, 이때 들어온 자금으로 70년대 이후의 경제성장이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3. 동서양이 바라본 뱀의 상징
뱀은 '비'와 '움'이 합쳐진 말로, 배로 기어가는 동물이라는 뜻입니다. 동서양은 이 특이한 생명체를 매우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아 왔습니다.
아시아에서 뱀은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불교에서는 가장 낮은 곳을 기어 다니며 무지한 인간에게 지혜의 등불이 되는 관자재보살로 상징되었고, 힌두교의 3대 신인 비슈누는 지혜로 세상을 떠받치는 큰 뱀 '아난타'의 몸에서 잠자는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반면 유럽에서는 기독교의 영향으로 뱀을 유혹과 원죄의 상징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치유와 재생의 상징으로도 여겨졌는데, 전설에 따르면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죽은 동료 뱀을 살리기 위해 다른 뱀이 물고 온 약초를 발견해 사용했다고 하며, 이후 뱀은 의술과 치유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WHO를 비롯한 국제 의료기관들의 로고에 뱀이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유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뱀은 많은 알을 낳는 특성은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주기적으로 허물을 벗는 모습은 재생과 변화의 상징으로 여겨지곤 했습니다.
4. 한반도의 뱀 문화와 신앙
우리 선조들은 집안에 서식하는 뱀을 집지킴이로 여겨 함부로 해치지 않았고, 뱀이 나타나면 그 집에 재물이 들어온다고 믿었습니다. 이는 뱀이 쥐를 잡아먹어 곡식을 지켜주는 실질적인 이로움과도 연관이 있었습니다.
특히 제주도 표선면 토산리의 당신(堂神)은 뱀신으로, 전라도 나주 금성산의 뱀신인 여신이 제주도에 들어와 좌정했다는 본풀이가 전해집니다. 이 당신은 잘 모시면 은혜를 베풀지만, 잘못 모시면 질병 등의 재앙을 내린다고 하며, 특이하게도 딸에서 딸로 계승되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5. 뱀에 대한 오해와 진실
첫째, 뱀의 혀 날름거림에 대한 오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유혹이나 이간질의 상징으로 여겼지만, 실제로는 냄새를 맡기 위한 자연스러운 행동입니다. 혀를 통해 공기 중의 화학물질을 감지하여 주변 환경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둘째, 뱀의 청각에 대한 오해입니다. '뱀은 허물을 벗다가 개 짖는 소리를 들으면 죽는다'는 속설이 있지만, 실제로 뱀은 겉귀와 가운데귀가 없어 공기를 통해 전달되는 소리에는 반응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면을 통해 전달되는 진동에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셋째, 뱀의 지혜에 대한 오해입니다. "뱀처럼 슬기롭게"라는 표현이 있을 만큼 뱀을 지혜의 상징으로 여겼지만, 실제로 뱀은 학습능력이 거의 없는 동물입니다. 심지어 인도의 코브라가 피리 소리에 맞춰 춤을 춘다고 하지만, 이는 단순히 조련사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것일 뿐입니다.
넷째, 백사(白蛇)의 효능에 대한 오해입니다. 흰 뱀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린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이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백사는 단순히 백화증으로 인해 피부의 색소세포에 멜라닌이 없는 개체일 뿐입니다.
다섯째, 뱀의 다산성에 대한 오해입니다. 뱀이 많은 알을 낳아 풍요의 상징이 되었다고 하지만, 실제로 우리나라의 구렁이는 15~20개, 유혈목이는 14~50개 정도의 알만을 낳습니다.
여섯째, '냉혈한'이라는 표현에 대한 오해입니다. 뱀이 변온동물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그들의 성격이나 본성과는 무관합니다. 이는 단순히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지 못하는 생리적 특성일 뿐입니다.
6. 요즘은 옛날만큼 뱀이 안 보이는 거 같은데...
2025년 환경부는 을사년을 맞아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구렁이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파충류 중 가장 큰 동물인 구렁이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으로 지정된 214종 중 하나입니다. 산림과 하천, 해안가 등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가지만, 무분별한 개발로 서식지가 파괴되고 잘못된 보신 문화로 인한 밀렵으로 개체 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습니다.
최근 강원도에서는 주목할 만한 구렁이 발견 사례가 있었습니다. 2022년 태백시 장성동 장성광업소 인근에서는 3-4m 크기의 대형 구렁이가 발견되어 화제가 되었고, 2018년 평창에서도 6m에 달하는 구렁이가 목격된 바 있습니다. 원주지방환경청과 아태평양서파충류연구소의 전문가들은 이 뱀들이 우리나라 토종 구렁이임을 확인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구렁이가 1.5~2m 정도 자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매우 특이한 사례입니다. 전문가들은 구렁이가 이론적으로 4~5m까지 자랄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실제로 이런 크기의 개체를 발견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이러한 대형 구렁이의 발견은 강원도의 자연환경이 야생동물의 서식에 매우 적합하게 보존되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현재 구렁이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허가 없이 구렁이를 포획, 채취, 훼손하거나 죽이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백만 원 이상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하지만 법적 보호 조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구렁이의 보호를 위해서는 서식지 보전, 생태계 교란 방지, 그리고 무엇보다 잘못된 민간신앙이나 보신문화의 개선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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