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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 In 호주(7)] 특별했던 선생님 Mon와의 작별인사

칼럼니스트 레이첼 승인 2019.02.28 10:55 의견 0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어떻게든 마음을 전하고 생각을 공유하며 유독 가깝게 지낸 선생님이 있다. 그의 이름은 'Mon'이다. 여기는 헤어질 때 선생님들에게 선물을 사주는 은근한 문화가 있는데 내 코가 석자라 더 좋은걸 사주지 못해 마음 아팠다. 하루 종일 대화하니 정이 많이 들어버렸는데 말이다.

그는 꿈을 찾고 싶다는 형이상학적인 내 말에 귀를 기울여줬고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나에게 힘을 줬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그가 나한테 한 말들이 기억에 남진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건 Mon은 나에게 따뜻한 위로와 힘이 되었고 수년이 지난 지금도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Mon은 내가 특별한 학생이라고 했다. 그래서 공항 가는 버스를 타는 날 마중을 나와준다고 했다. 나는 너무 슬플 것 같다고 분명 울음이 터질 거라고 사양했지만 기어이 마중을 나오겠다고 고집하여 결굴 약속 시간을 정했다.

퇴소 당일, 나와 Mon, Mon이 아끼는 또 다른 제자인 Bella 이렇게 셋이 만나 밥도 먹고 카약도 탔다. Bella는 우리 둘에게 Mon과 함께 찍은 사진이 인쇄된 컵을 선물했다. 당시의 나는 감수성의 최대치를 찍어 눈물이 핑 돌았지만 가까스로 참아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공항 가는 버스는 언제 만석이 될지 몰라 2주 전에 예약을 해야 했고 혹시라도 버스를 놓치면 비행기도 놓치게 된다. 그래서 여유를 두고 기숙사에서 짐을 챙기고 나와 택시를 탔건만 하필 이 기사가 악질이었다.

빨리 가달라고 해도 들은 척도 안하고 일부러 먼 길을 돌아가며 코앞인 버스터미널까지 시간을 계속 끌었다. 다행히 버스 시간 전에는 도착했지만 Mon과 친구들과 함께 보낼 시간을 빼앗겼다는 생각에 너무 화가 났다. Mon이 괜찮다고 다독여줬지만 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한마디에 순간 내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Where’s your cup”
“Oh my…!”

Mon과 헤어지고 급하게 짐을 챙기느라 컵을 챙기지 못한 것이다.
시간은 촉박하고 기숙사까지 갔다 오는 건 너무 큰 모험이었다. 내가 발을 동동 구르자 Mon이 대신 갖다 준다며 급히 떠났다. 잘 참아왔던 눈물이 멍청한 나 때문에 터졌다. 그게 어떤 컵인데! 왜 이렇게 바보 같을까. 내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다들 괜찮다며 위로했지만 나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낭비하게 됐다는 생각에 기분이 엉망이었다.

버스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Mon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가지 말라고 할 걸. 이러다 못보고 가는 거 아닐까. 가뜩이나 슬픈데 불행까지 더해지다니 최악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만약 시간 내에 못 오면 택배로 부쳐주겠다고 나를 달래는 동생들 손만 꼭 붙잡고 있는 것뿐이었다.

무거운 분위기에 누구 하나 쉽사리 말도 못 꺼내고 있을 때였다. 땀에 흠뻑 젖은 Mon이 갑자기 나타났다. 너무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그를 와락 껴안았다. 나보다 키가 작은 그는 쉽게 내 손길에 이끌려왔다.

못 보고 가는 줄 알았다고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며 엉엉 울었다. 안도감에 더욱 서럽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 제발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라고, 필리핀에 다시 올 테니 그때 꼭 만나자는 지키지도 못할 약속도 했다. ‘그럼 그때 나랑 결혼하는 거야’하는 그의 농담에 무거운 분위기는 저 멀리 가고 간신히 웃을 수 있었다.

버스 시간이 코앞에 다가와 무거운 걸음으로 버스를 탔다. 몸은 돌아왔지만 마음은 거기에 두고 왔다는 영화 ‘귀향’의 대사가 떠올랐다.

그래, 항상 그랬듯 금방 잊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거다. 그래도 이 마음을 조금은, 조금은 여기 두고 떠나도 되지 않을까. 훗날 내 인생의 수많은 점들로 선이 만들어질 때 조금은 높게 자리 잡아 예쁘게 빛날 수 있도록 표시해두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