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이고 일반론적인 관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나 포토저널리스트들은 현재 자국이나 세계에서 발생되는 사건과 사고를 기록하고자 전 세계를 누비는 사진가들이다. 그들은 사진기를 통해 온 세계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며, 세상을 좀 더 발전시키려는 원대한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휴머니스트들이다. 그들은 전쟁의 아픔을 인류애로 승화시킨다. 그리고 하류층의 빈곤한 삶을 추적하여 정부나 민간인의 지원을, 저개발국가의 열악한 경제와 노동의 현장을 통해 UN의 지원 등을 호소하고 있다.
그들의 메시지는 단순히 한 사진가의 사적인 시선에 의한 이미지가 아니다. 그들의 시선은 온 세상에 따뜻하고 훈훈한 빛을 비추기도 하지만, 매우 고발적이고 날카로운 시선의 힘으로 여론을 주도하고 정책을 입안시키는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바로 이것이 다큐멘터리 사진술이 지닌 객관적인 가치이다.
이와 동시에 20세기 중반이후부터 매우 주관적이고 사적인 관점으로 자신들만의 세상을 관조하고 즐거움을 제공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들의 사진기는 다양한 일상의 모습을 통해서 또 다른 삶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객관적, 주관적 다큐멘터리 사진은 진실의 재현을 통해서 우리들의 삶 그 자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시선에 의한 사진 이미지들은 오늘의 삶을 영위하는 우리들의 생활방식이자 양식을 보여준다.
21세기 대량 소비시대의 삶을 영위하는 대중은 매일 다양한 음식을 즐기며 여행이나 여가를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있다. 특히 요즘 정부의 법정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주 5일 근무제로 근로자의 노동 여건이 변화된 시점에서 어느 때보다 여가와 소비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매우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곧 휴가 제도를 국제 수준에 맞게 개선한 것으로 가족 중심의 여가 문화가 확산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주 5일 근무로 인한 근로자 및 노동자의 생활양식이 변화하는 시점에서 다양한 레저 산업이 급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문화현상의 변화를 사진으로 표현한 작가들의 이미지는 소비라는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고 비평하는 것이다.
▲ I Shop there I am, 1987 ⓒ Babara Kru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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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바바라 크루거Babara Kruger의『I Shop therefore I am,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1987』는 끊임없이 소비하는 인간의 욕망을 직접적인 텍스트와 이미지로 재현한 작품이다. 이것은 소비하는 주체인 인간들의 무의식적인 소비 행위를 통해서 인간의 존재를 상기시킨 것이다.
앤디 워홀(Andy Warhol)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미국의 달러 지폐를 반복적으로 실크스크린 하여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돈이 지닌 가치를 역설적으로 표현하였다.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돈의 의미가 아이러니하게도 종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 주관적 다큐멘터리 사진을 탄생시킨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는 사진집 『미국인(The Americans, 1959)』에서 1950년대 미국식의 여가와 소비이미지를 포착했다. 예를 들면, 이방인 로버트 프랭크는 패스트 푸드점(Fast Food), 식당, 집회, 파티, 공원 등을 통해서 미국의 사회문화 구조를 비평적 시각으로 관찰하였다.
매그넘(Magnum) 사진작가로 활동 중인 영국 출신의 사진가 마틴 파(Martin Parr)는 최근에 선보인 여러 권의 사진집을 통해서 컬러 다큐멘터리 사진의 선두 작가가 되었다. 마틴 파는 그의 사진 집, 『The Last Resort(1986)』, 『The Cost of Living(1989)』, 『Small World(1994)』 등을 통해 컬러 다큐멘터리 사진의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였으며, 동시대 작가들 중에서 영국을 대표하는 주관적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되었다.
초창기 시절에 마틴 파는 주로 흑백 사진을 촬영하였으나 1970년대 미국의 컬러 다큐멘터리 사진가 스테판 쇼어Stephen Shore, 윌리암 이글스톤William Eggleston의 영향을 받아 1980년대에, 35mm 사진기에서 중형 사진기를 이용하여 컬러로 이미지를 제작하였다.
마틴 파를 포함하여 미국 두 작가들의 공통점은 처음에는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사진 스타일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35mm 사진기를 이용하여 흑백 사진을 찍기 시작하였으나, 1980년대에 들어서 중형 카메라나 대형 카메라를 이용해 다큐멘터리 사진과 스트레이트(straight) 예술 사진의 경계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유사한 예를 우리는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 마게렛 버크 화이트Magaret Bourke-White, 유진 스미스W. Eugene Smith의 사진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포토저널리스트임과 동시에 예술가로서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후기 모더니즘 사진가들은 내용과 의미를 재발견하기 위해서 포토저널리즘의 스타일과 구조를 예술사진에 적용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마틴 파의 컬러 다큐멘터리 사진은 내용이 다큐멘터리적인 특징을 가지며 예술사진으로서의 가치도 지니고 있다.
흔히 후기 다큐멘터리(Post-Documentary)로 불리 우는 현대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은 출판을 통해서 그들의 사진 이미지를 전 세계에 알림과 동시에 예술 사진과 상업적인 사진 이미지 제작도 능숙히 수행하고 있는 실정이다.이는 곧 다큐멘터리 사진과 예술 사진의 경계가 모호해짐에 따라 스트레이트 사진의 위상이 절정에 달하고 있으며,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절실히 필요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 The Last Resort, 1985 ⓒ Martin Pa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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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으로 마틴 파가 세계로부터 컬러 다큐멘터리 작가로 이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3여년에 걸쳐 촬영한 사진집 『마지막 유원지(The Last Resort, 1986)』와 1989년에 『삶의 비용, (The Cost of Living, 1989)』을 발표한 이후이다. 이 사진집은 기존의 여느 다큐멘터리 사진작가가 보여준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왜냐하면 이 사진들은 영국의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사진들이 지니고 있는 접근법과는 무관하게 한 시대를 기록하는 차원을 넘어서 사회문화 비평적인 해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 사진들은 영국의 중산층과 노동자 계급의 ‘여가(leisure)' 와 '소비(Consumption)'에 대한 영국의 문화사회 구조를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유원지(The Last Resort)』는 영국의 리버풀 항구(Liverpool Bay)에 위치한 해변 가의 리조트 뉴 브리튼(New Brighton)을 다큐멘트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로 마틴 파는 매그넘(Magnum) 멤버가 되었으며, 영국의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은 다큐멘터리 사진을 통해 영국 노동자 계급의 여가와 소비에 대해 보여준다.
『마지막 유원지(The Last Resort)』는 가족 중심으로 여가를 즐기는 영국 중산층 삶의 실제를 강렬한 색감을 통해 표현한 컬러 다큐멘터리 사진이다. 마틴 파는 뉴 브리튼의 강렬한 햇빛 아래 아이들을 데리고 삼삼오오 짝을 이루며, 휴식을 취하는 노동자들의 여가 생활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그리고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영국 사회가 최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의 삶이 반드시 그와 동등하게 반영되지 못한 것이다. 마틴 파의 『마지막 유원지(The Last Resort)』는 차례대로 아이들과 그들 부모의 관계, 삶의 방식, 영국 사회 구조에 대해 보여주는 사진집이다.
그의 사진들을 보면 우리들의 일상적인 여가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심오한 사고나 논리적인 해석이 필요치 않다. 노동자들은 일광욕을 즐기고, 담배를 피우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때때로 어린아이들은 그들의 부모 곁에서 방치된 상태로, 어머니의 보호를 받으며 자연에 노출되어있다. 뉴브리튼은 화려한 리조트가 아니고 지저분하고, 폐수가 뒤섞이고, 쓰레기가 난무한 리조트이다. 그 환경에 에워싸인 노동자들은 환경에 개의치 않고 오로지 강한 햇살에 몸을 던진 채로 자연을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마틴 파는 이 사진을 통해서 노동자 계급의 삶의 방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더 나아가 영국 사회 구조의 한 단면을 여과 없이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삶의 비용(The Cost of Living, 1989)』은 영국 중산층의 소비문화를 직접적으로 드러낸 사진이다. 이 사진집은 파티, 인테리어, 쇼핑 등 중산층의 소비적인 삶을 기록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중산층이 그들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소비하는 모든 것에 ‘비용’이라는 개념을 추가 시킨 것이다. 이 사진들이 다른 다큐멘터리 사진 이미지와 달리 특별히 주목 받는 이유는 영국 중산층이 사회생활을 위해, 자기만족을 위해 치러야 하는 행위에 대한 비용을 직접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 Boulogne, France, From One Day Trip, 1989 ⓒ Martin Pa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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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마틴 파는 다양한 파티 문화를 통해서 파티를 위해 소비되는 일련의 상황들-준비된 음식들, 옷차림새에 관심을 가졌으며, 집안의 인테리어를 위해 물품을 구입하고, 벽지를 고르는 등 중산층이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소비하는 것에 주목한 것이다. 이 시기에 마틴 파는 또 하나의 프로젝트, 『하루 여행(One Day Trip)』을 기록했다. 이 사진들은 영국인이 프랑스로 여행을 떠나는 현상에 초점을 맞췄다.
왜냐하면 그 당시 영국인은 값싼 술을 구입하기 위해서 프랑스의 대형 슈퍼마켓(Hypermarket)에 하루 여행을 떠나는 상황이 흔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쇼핑 관광에 준하는 현상이다. 마틴 파는 여행을 해서라도 값싼 술을 구입하려는 대중들의 소비 행위에 흥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마틴 파는 1987년부터 1994년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 지역의 관광 명소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을 촬영하여『작은 세상(Small World, 1994)』이라는 작품집을 발표했다. 마틴 파는 이 사진집에서 스스로 여행객의 시선으로 관광지를 방문한 여행객들을 촬영하여 자신의 작은 사진기에 담긴 이미지를 ‘작은 세상’이라 칭하였다. 이 제목의 의미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워커 에반스(Walker Evans)가 사진의 정의 대해 언급한 “사진은 세계를 수집 한다.” 는 말과 통한다.
▲ Greece, Athens, Acropolis. From Small World, 1991 ⓒ Martin Pa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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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파는 사진기를 갖고 관광 명소를 방문해 낯선 방문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여행자의 시선으로 마치 기념촬영을 하듯 관광객들을 기록하였다.
예를 들면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The Acropolis, Athens)」는 아테네 신전을 방문한 동양인들의 한 무리를 촬영하는 한 여행객의 기념사진 촬영이다. 그 현장 뒤로 관광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서양인들의 한 무리가 신전을 배경으로 마틴 파의 사진기에 포착됐다.
이 사진은 관광객들이 특별히 그 신전을 연구하고 조사하는 차원의 방문이 아니고, 아크로폴리스가 여행 패키지 상품의 일정에 잡혀 있어 방문한 모습을 담은 것이다. 우리가 흔히 관광 명소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을 마틴 파는 관광지의 기념촬영 사진사처럼 스냅 형식으로 그들과 관광지를 기념촬영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진 「Kuta, Bali」는 중년의 한 남자가 해변에 누워서 책을 보고 있다. 그 남자는 비싸 보이는 시계를 착용 했으며, 살갗은 햇볕에 의해 붉게 그을렸고, 시원한 바다 바람에 세상을 등진 채 독서에 빠져 있다. 이 사진은 휴가를 맞이하여 일터를 벗어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삶을 풍요롭게 영위하고자 하는 현대인의 초상화이다.
▲ Indonesia, Bali, Kuta, 1993 ⓒ Martin Pa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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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파의 『Small World(1994)』에서 볼 수 있는 약 70여 점에 이르는 사진들은 현재 대중들의 관광 여행의 현주소를 드러내고 있다. 대중은 지구촌의 관광 명소를 찾아 관광지에 정신과 마음이 흠뻑 빠져 있다. 관광 명소를 즐기고, 관광 상품을 구입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맛있는 식당을 찾아 음식을 즐긴다. 이러한 마틴 파의 사진들은 지구촌의 사람들이 관광을 통해 여가를 즐기고 소비하는 대중들의 현재적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 사진들은 우리로 하여금 대리 만족, 즉 관광 여행에 대한 욕망과 환상을 불러 일으켜 또 다른 의미의 소비 심리를 자극하게 하는 것이다.
마틴 파 사진의 주제는 매우 다양하다. 또한 그의 사진들은 포토저널리즘, 다큐멘터리, 예술사진, 상업사진 등 다양한 사진 장르의 특징적인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마틴 파의 사진은 한 가지 관점에서 논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만약 어떤 한 가지 기준 아래 마틴 파의 사진을 논한다면 그의 사진들은 가벼워 보일 수 도 있다. 그 만큼 마틴 파의 사진들은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의 실질적인 삶을 날카롭게 때로는 풍자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1980년대 중반부터 새로운 시각으로 영국의 문화를 컬러 다큐멘터리로 기록한 마틴 파의 사진들은 현대 대중들의 생활 풍속을 보여준다. 마틴 파는 주로 영국인의 삶을 추적했지만 그의 사진들은 국경을 초월한 바로 우리들의 일상적인 생활양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바로 마틴 파의 사진들은 그러한 권리로부터 자연스럽게 파생되는 우리들의 생존에 관한 보고서이다.
<사진작가 정영혁>
뉴욕시각예술대학교 사진미디어 대학원(School of Visual Arts, MFA)
동양인 최초 아론 시스킨드(Aaron Siskind) 예술 지원금 수상
강남피플(인터뷰 다큐멘터리 매거진) 발행인
한국콘텐츠생산연구소장(KCPL)
1인1미디어 시대 퍼스널 콘텐츠 브랜딩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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