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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푸틴_X파일(25)] 흔적이 지워진 라스푸틴 (마지막회)

칼럼니스트 박광작 승인 2019.04.06 09:16 의견 0

3월 10일 밤 쿠프친스키는 후미진 숲 속으로 시체를 운반해 휘발성 물질을 부어서 시체를 태워 흔적도 없게 만들었다. 그 시점이 3월11일 여명이 터올 때였다. 쿠프친스키는 5월에 라스푸틴 유해 처리 보고서를 발표했고 공식적으로 이 보고서에 따라 라스푸틴 흔적 지우기는 완료되었다.

수년이 지난 후 라스푸틴 시체 흔적 지우기와 관련해, 페트로그라드 공업연구소 출신 유명한 화학자 이반 바실로프는 다른 증언을 했다. 공업연구소는 페트로그라드에서 처음으로 화장장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공업연구소의 거대한 보일러실에는 매우 큰 난로가 있었고 이 난로에 라스푸틴의 시체를 삽시간에 태워서 재로 만들었다고 했다.

여기서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왜 임시정부 첫 번째 수상 르보프가 언론인 쿠프친스키에게 라스푸틴 유해 처리 문제와 같은 ‘더러운’ 임무를 맡겨야 했느가 하는 것이다. 쿠프친스키는 차르 통치 기간에도 수년간 러시아 최초의 화장장 건설 프로젝트에서 실험 부분의 책임자였다. 그는 공업연구소 인사들과도 친밀하고 이 연구소 시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숲 속 야외에서 아무도 몰래, 다른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을 정도로, 휘발유를 사용하더라도 시체를 흔적없이 불에 태워 없애는 것은 어렵다는 사실을 쿠프친스키는 알고 있었고 르보프 수상도 쿠프친스키가 화장장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고, 라스푸틴 시체 처리를 위한 적격자로 판단해 임무를 주었던 것이다.

쿠프친스키 자신도 숲으로 가기 전 공업연구소에 잠시 들렀다고 나중에 진술했다. 쿠프친스키는 임시정부 당국에 아부하기 위해 라스푸틴을 외진 숲 속에서 태워 없앴다는 전설을 만들어 내었고, 라스푸틴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없앴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아무튼, 그는 모든 흔적을 철저히 제거하여 아무도 라스푸틴을 찾을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라스푸틴은 살아있을 동안에도 독일 스파이, 섹스광, 악마의 승려로 낙인찍혀 제정러시아 붕괴의 표적으로 이용되었고 살해된 후에는 그의 흔적조차 위험의 상징으로 제거되었던 것이다.

*글쓴이: 박광작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서울대학교에서 비교체제론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