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주동식 칼럼] "우리 서방 이겨라?"

주동식 객원편집위원 승인 2018.03.15 21:38 의견 0
내가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에 들은 얘기인데 확실한 근거는 없다.당시 전남 지역에 서방국민학교와 남평국민학교가 있었다(지금도 있는지, 이름이 그대로인지는 잘 모르겠다).두 학교가 운동시합에서 맞붙었다고 한다. 학생들이 자기 학교 응원하느라 동원돼서 열심히 구호를 외치는데...

 

"우리 서방 이겨라~""우리 남편 이겨라~"

 

이러는 바람에 듣는 사람들이 배꼽을 잡았다는 얘기. 물론 저 '남편'은 남평의 발음을 헷갈린 것이다.

 

갑자기 반세기 전 에피소드가 기억에 떠오른 것은 탁월한 글솜씨와 그 이상으로 훈훈한 외모로 오래 전부터 온오프라인의 스타성을 입증하신 조용수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님의 글을 [제3의길]에 게재하면서 본 단어 때문이었다.중독 현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타이레놀의 유형을 구분하시면서 '서방형'이라는 용어를 쓰셨던 것이다.

 

글의 맥락 속에서 대강 어떤 의미인지 짐작은 갔지만, 막상 검색을 해봐도 sustained release라는 영어식 표기만 나타날 뿐, 한자어임에 분명한 '서방'의 한자 표기는 찾을 수 없었다.네이버 사전에서 찾아봐도 서방(書房, 남편을 칭하는 용어), 서방(西方, 서쪽) 등이 나타날 뿐, 타이레놀 이알 제제의 특징을 지칭하는 용어는 보이지 않는다. 모르기는 해도 의학계에서 그냥 편의상 서방형(徐放型)이라고 사용한 것이 그대로 통용되는 것 아닌가 짐작할 따름이다.

 

저 徐는 '천천히'라는 뜻이고 방(放)은 '놓는다'는 뜻이다. 즉, 서방형(徐放型)이란 약의 성분을 서서히 내놓는다는 그런 의미일 것이다.저 徐 자를 보면 소동파의 <적벽부>의 도입부가 떠오른다.

 

壬戌之秋 七月旣望 蘇子與客 泛舟遊於 赤壁之下 淸風徐來 水波不興

 

임술년 가을 7월 기망(16일)에

내(소동파)가 손님과 더불어 배를 띄우고 적벽 아래 노니는데,

맑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오나 아직 물결은 일아나지 않더라...

 

淸風徐來 水波不興(맑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오나 아직 물결은 일아나지 않더라) 구절이 특별히 기억에 남았던 것은 오래 전에 읽었던 조선시대 어떤 한량과 기생의 정분에 얽힌 에피소드 때문이다.

 

청풍(淸風) 현감인지 아니면 호가 청풍인지 하는 양반이 어느 고을에 원님으로 부임되어 갔다. 가서 기생 점고를 받는데, 사또가 자리에 임하면 관기들이 마땅히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춰야 하건만, 그 고을에서 제일 에이스라고 알려진 기생 수파(水波)가 뻗뻗하게 자리에 앉아 모르는 척하는 것이었다.

 

빡친 청풍 영감이 "고연 것~ 얼릉 일어나 인사를 하지 못하느냐"고 입에 거품을 무니까 이 기생이 하는 말."사또께서는 적벽부도 읽지 아니하셨나이까 청풍이 서서히 오는데 수파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그래서 수파라는 기생의 센스와 교양에 감복한 사또가 그 여인을 총애하게 됐더라능...

 

지금 생각해보면 그다지 유쾌하지도 않은 에피소드고 속으로 "놀구들 자빠졌네"하는 심정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옛날 기억이 나서 풀어보는 썰.

 

요약 : 그래도 한자는 알아야 합니다. 전국민의 한자 실력이 낮아져서 생기는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큽니다.

 

[글: 주동식 / 웹진 '제3의길 편집장']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