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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_이야기(40)] 시래기와 야쿠르트

이정환 기자 승인 2018.04.03 12:47 의견 0
집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생수를 한 병 사는데 야쿠르트아줌마가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기백아부지, 요즘엔 다리 좀 어떠세요" "아! 네에... 안녕하세요 그럭저럭합니다. 하하"“용한 한의원 있는데 소개 좀 해드릴까요”“아니요. 고맙지만 후배네 한의원에 다니는 중입니다.”“네. 그러셔요. 언능 쾌차하셔야 할 텐데……”얼마 전, 후배한테 받은 무청 시래기를 조금 나눠줬더니 부쩍 더 살갑게 아는 체를 한다.

 

아줌마는 배달을 다니다가 남는 제품은 미아사거리 역 2번 출구 근처에 야쿠르트카트를 놓고 장사를 한다. 전철역과 버스정류장이 있는 곳이라 어디를 갈라치면 꼭 마주칠 수 밖에 없다. 그럴 때마다 아줌마는 살갑게 인사를 하며 내 안부를 묻는다. 동네 장사이다 보니 아줌마는 단골집들의 집안사정을 잘 안다. 간혹 기백이를 만나면 야구르트 하나를 주곤 한다.“어쩜 애들이 그리도 인사성이 밝아요” 그런 말을 들으면 아비로서 기분이 좋을 수 밖에……또 그런 말을 듣고 그냥 지나칠 수가 있나 당연히 야구르트를 한 봉지 잔뜩 사가지고 집에 온다.

 

미아리이야기의 주무대인 미아삼거리 먹자골목, 일명 미삼먹자골목의 밤풍경

(사진: 이정환)

 

며칠 전에는 집에 갔더니 냉장고 안에 야쿠르트가 잔뜩 있는 거다. 나는 '누가 이렇게 잔뜩 사다 놨지' 라고 생각하며 어머니께 왠 야구르트를 이렇게 잔뜩 사놨냐고 물었다. "정환아, 야쿠르트아줌마가 고맙다고 이렇게나 많이 주더라. 아줌마가 왜 그런 거냐"저녁 먹으며 어머니가 말을 꺼내신다. “지난 번에 시래기 좀 나눠줬거든요.”후배한테 잔뜩 얻은 시래기가 사실 너무 남아서 작업실에 보관하기가 곤란해서 나눠줬는데 아줌마는 그게 고마웠나 보다. "무청시래기 더 남았냐" "왜요" "집에 많다고 했더니 엄마친구들이 달라고 해서......" "지난 번에 많이 나눠줬잖아요. 더 필요하면 나눠주세요. 아직 서너 봉지 더 남았으니까.”최근 티브이에서 시래기가 몸에 좋다는 방송이 나왔나 보다. 동네아줌마들 사이에서 시래기 구하기 전쟁이 벌어졌다는 거다.

 

그러더니 요즘엔 여주가 몸에 좋다고 여주 구하기 전쟁이 벌어졌다.“정환아 아는 사람 중에 여주 농사를 짓는 사람은 없니 라고 성화다.

 

티브이가 미아리를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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