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리_이야기(53)] 미아삼거리 여관골목은 우리나라 최초의 모텔촌이다
이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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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1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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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삼거리엔 왜 모텔이 많을까
1986년까지 영종여객의 직행버스 버스터미널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종여객 터미널이 있던 곳은 얼마 전 재건축으로 사라진 한마음예식장 자리인데 지금은 Y-스퀘어 빌딩이 들어서 롯데백화점 미아점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영종여객은 주로 의정부, 동두천, 포천, 철원, 연천, 전곡, 일동, 현리 등 군부대가 많은 지역으로 운행을 했다.
지금은 예전에 비해서 획기적으로 교통이 발달해서 부산이나 땅끝마을 해남에서조차 반나절이면 경기도 끝이나 강원도 골짜기까지 다다를 수 있겠지만 불과 25년 전까지만 해도 그렇질 못했다.
전라도 끝에서 서울 버스터미널이나 서울역까지 오려면 거의 한나절이 걸렸고 거기에서 미아리까지 오려면 또 한 시간 이상이 걸렸다. 그러자면 아침 일찍 출발을 해도 늦은 시각에 미아리에 도착했다. 영종여객을 타고 부대에 복귀하는 군인이나 아들을 면회 가기 위해 올라온 부모는 이미 늦어버린 시각이라 영종여객 주변 숙소에서 하룻밤을 머물러야만 한다.
미아삼거리 영종여객 종점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Y-스퀘어 건물에서 바라본 롯데타워
(이정환 작가)
중부전선에서 군복무를 하는 아들을 면회 가기 위한 관문이 미아삼거리였고, 운행수단은 영종여객 뿐이었다. 하룻밤을 머물러야 하니 당연히 여관이나 여인숙이 발달했던 거다.식사를 때워야 하니 서민들의 음식인 감자탕 집이 물길인 개천을 따라 양 옆으로 주르륵 늘어서 있었다. 그 밑으로 속칭 색시집들이 발달했다.부대 복귀 전이나 휴가 나온 첫날 같이 휴가를 나온 동료들과 걸지게 한판의 술자리를 나누고 자기 고향으로 헤어지는 곳이 이곳 미아삼거리였다.
또한 강북지역에서 제일 괜찮은 이류 극장인 대지극장이 이 지역의 랜드마크 역할을 했었다. 대부분의 약속은 ‘대지극장 앞에서 만나자’ 혹은 지금 맥도날드 자리인 ‘문화당에서 만나자’ 고 했었다.문화당 건물 지하에 위치한 음악다방인 약속다방도 그 중에 한몫 끼이곤 했다. 약속다방 레지들은 군인들이 오면 박 터지는 날이다. ‘오빠도 한 잔, 나도 한 잔’으로 매상이 팍팍 오른다.
그 곳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여관촌 골목과 즐비한 색시집들 그리고 소위 카페라고 불리는 양주와 맥주를 파는 조그만 술집 그리고 그곳을 관리하고 운영하며 돈벌이를 하는 소위 동네 건달들이 자연발생적으로 뒤섞여 지낼 수 밖에 없었다.
술에 취한 군인아저씨들을 상대하자면 거친 주먹들이 필요하였었고 그들과 업주들은 상호 보완적이며 때로는 징글징글한 기생의 관계로 지낼 수 밖에 없었다.
미아삼거리는 강북의 교통관문이다. 서북부 경기도에서 진입하는 차량들 그리고 의정부에서 나오는 차량들 상계동 이하 창동 우이동 수유리 번동 등 많은 주거지역에서 시내로 들어가기 위해선 미아삼거리를 거쳐야만 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버스를 갈아탔다.
그만큼 노선버스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일일 버스 환승 인구가 제일 많은 곳이다.지금 같은 경기불황에 미아삼거리 먹자골목이 다른 지역에 비해서 성업 중인 건 그런 이유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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