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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몰.봐] 한국역사 - 고대 고조선&고구려 역사

生글독서논술 이민우 원장의 "아는 척 하려면 몰래 봐!"

칼럼니스트 이민우 승인 2018.09.03 09:55 의견 0

구석기-신석기-청동기 선사시대를 지나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였던 고조선부터 후삼국시대까지를 고대사회라 합니다. 고조선(古朝鮮)의 원래 명칭은 조선이었어요. 후에 이성계가 세운 조선(操船)과 구별하기 위해 고대의 고(古)를 사용해 고조선이라고 불렀습니다.

고조선은 단군조선과 위만조선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중국역사를 공부할 때 춘추전국시대를 지나 진나라, 한나라까지 이르는 역사를 살펴보았죠 춘추전국시대, 많은 나라가 함께 전쟁하던 어지러운 시대에 연나라의 위만 이라는 사람이 고조선으로 옵니다. 당시 고조선의 준왕은 위만과 손을 잡았고 그에게 박사 직을 허락합니다. 후에 위만이 준왕을 몰아내고 조선을 다스리는 위만조선의 시대가 역사 속에 등장합니다. 이후 위만조선은 중국의 한나라의 침략을 받아 BC 108년에 역사를 마감하죠.

고조선을 대표하는 문화재는 비파형동검, 세형동검, 팔조법, 고인돌, 돌무덤, 적석묘 등이 있습니다. 이런 키워드들이 나오면 고조선 시대를 나타내는 거죠.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원삼국시대가 도래하고 이어 삼국시대가 이어집니다. 고구려는 BC 37년에 주몽이 건국합니다.

주몽은 중앙집권화를 위해 사성제도(賜姓制度)를 도입합니다. 사성제도는 내릴 사(賜), 성씨 성(姓). 성을 내린다는 의미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성씨는 없이 이름만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고구려 건립에 이바지했던 귀족들에게 김씨, 이씨 이런 성을 부여하며 왕의 통제 아래 귀족들에게 권력을 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국가는 중앙집권화 되었습니다.

194년에는 진대법을 시행합니다. 진대법은 풍년인 해에 곡식을 모아놨다가 흉년에 배고픈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이자를 받아서 거두어들이는 제도를 말합니다.

고구려는 310년 미천왕 시대에 전성기를 시작합니다. 왜 이 시기에 전성기를 맞았을까요 그 당시 중국은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한나라와 위, 촉, 오가 세력싸움을 하는 시기였습니다. 미천왕은 한나라가 설치한 한사군(漢四郡)을 한반도에서 몰아내죠.

313년에 소수림왕은 최초로 ‘율령’을 선포합니다. 이는 법 제도를 통일화 시키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때 순도 스님을 통해서 우리나라에 불교를 도입합니다. 또 중앙에 태학, 지방에 경당이라는 교육기관을 세우고 유교를 가르쳤습니다.

410년 광개토대왕은 흑룡강과 임진강, 연해주와 유화까지 고구려의 영토를 확장합니다. 광개토대왕의 뒤를 이은 장수왕은 78년 간 왕위에 즉위해 가장 오래 왕의 역할을 담당했다고 해서 장수왕이라고 불렸습니다. 이때 고구려의 도읍을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깁니다.

589년 중국의 수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합니다. 을지문덕 장군은 수나라를 무찌르죠. 이것이 그 유명한 살수대첩입니다. 이로 인해 수나라는 멸망하게 됩니다.

수나라에 이어 등장한 당나라 역시 계속해서 고구려를 압박합니다. 642년 연개소문이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지만 당나라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고구려를 침공합니다. 세력이 다해가는 고구려는 계속된 침략을 막을 수 없게 됩니다.

645년 양만춘 장군이 안시성에서 당의 침공을 버티려 애쓰지만 버티지만, 688년 고구려는 신라와 당나라의 나당연합군에 의해서 멸망하며 700년간의 역사를 마무리합니다.

고구려는 철기문화를 토대로 농경문화를 발전시켰으며 온돌문화가 보급된 국가였습니다. 왕산악과 유리왕의 음악들도 고구려의 소중한 유산입니다. 음악들이 유행하면서 우리나라는 고구려 때부터 가락의 민족으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또한 종이와 먹을 만드는 기술, 제지술이 발달했습니다. 610년경에는 담징이라는 스님이자 화가가 일본에 건너가 동양의 3대 미술품이라 불리는 금당벽화를 그립니다. 또한 담징은 일본에 종이와 먹을 만드는 기술들을 전수합니다.

또 고구려에는 ‘서옥제’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혼인하기 전 남자가 여자 집 뒤에서 서옥이라는 집을 짓고 여자 아이가 자라날 때까지 열심히 일을 합니다. 아이가 자라 시집갈 나이가 되면 아이를 신랑의 집으로 데리고 가는 제도를 서옥제라고 합니다.

한편 죽은 사람을 매장할 때 금과 은과 책, 옷을 껴서 묻는 제도가 있었어요. 껴묻거리와 함께 고분문화가 발달했죠. 사후세계를 인정하는 게 유행했다고 볼 수 있겠죠

또 고구려는 중국의 위나라, 내몽고 지역, 일본과 동남아시아까지 무역교류를 하는 국제시장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무역이 발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상인문화가 발전했죠.

고구려의 특산물 중에는 과일나무 밑을 자유롭게 다닐수 있는 조랑말, 과하마가 있습니다. 고구려인들은 과하마를 타고 빠르게 활동하며 전쟁을 치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칼럼니스트 이민우 / 마곡 生글독서논술학원장 , 세상의벗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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