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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_시대] 코로나 19시대, “반항”이 필요하다!

조인 작가 승인 2020.02.26 18:25 | 최종 수정 2020.03.27 14:31 의견 0
알베르 카뮈, <이방인> (예스24 제공)

알베르 카뮈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일찍 등졌지만, 꽤 많은 작품을 남겼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이방인>이 유명하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서 세상에 대한 ‘부정(否定)’을 말했다. 시비(是非)가 완벽하게 가려지기 어려운 시대, 실존주의가 유행했던 흐름 속에서 작가의 눈은 ‘부정’을 보는 게 익숙했을 것이다.

그런데 후에 그의 작품 성격이 달라졌다.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라는 공식과 같이 ‘부정’을 ‘부정’한다. 그런 대표적인 작품이 <페스트>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부정한 세상에 대한 부정으로 ‘반항’을 제시한다. 부정으로 끝내지 않고, 그대로 두고 보는 숙명론도 거부하면서 현상을 타파하기 위한 ‘반항’을 해결책으로 내놓는다.

◇ 세 가지 유형의 사람들

<페스트> 속에는 세 부류의 인간이 등장한다.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이 돌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인간, 그리고 모든 게 신의 뜻이라는 숙명론자, 마지막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든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반항’적인 인간.

대한민국 ‘코로나 19시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먼저 첫 번째 유형을 살펴보자. 대표적으로 자가격리 대상자임을 알면서도 “나는 괜찮아!” 자가 확신하며 돌아다니는 예비 확진자와 확진자들, 혹 생필품이 떨어질까 봐 사재기에 열심을 보이는 많은 시민, 책임질 생각은 하지 않고, ‘희생양’을 찾기에 혈안이 돼 있는 당국(정부, 지방자치제, 신천지 등) 등. ‘나’와 ‘내 조직’만 생각하는 부류가 첫 번째 이기적인 부류다.

두 번째 유형은 종교적 숙명론자들이다. 대표적인 집단으로 이 시국에 광화문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시위에 참석하면 하나님이 고쳐 주신다”라는 망언을 전파하는 것도 부족해 “혹시 걸리더라도 우리의 목적지는 이 세상이 아니다”라고 한다. 혹 발생할 감염으로 인한 사망까지 대비한다. 이 집단은 특이하게 첫 번째 유형의 성격을 함께 지닌 숙명론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명성 교회와 같은 대형 교회의 예배 운영자이다. 수많은 모임을 취소했다고 하면서 예배만큼은 취소하기 힘들다고 했다. 기독교인들에게 예배는 신성한 시공간이다. 이 시간은 병이 치료되는 시간이지, 병에 걸려서는 안 되는 시간이다. 혹, 걸리는 사람이 있다면, 영적인 것으로 돌리기도 한다. 좀 더 생각하면, 예배와 전염은 별개 문제이며, 혹 감염된다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아마, 많은 신도가 감염되면 그들을 죄인으로 몰든지, 대한민국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 역시 교묘하게 피해갈 구석을 만들어 놓고 진행한다.

세 번째 유형은 이 상황을 적극적으로 극복하려는 사람들이다. 대구의료진에 자원해서 많은 시민을 진료하려는 의료진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확진자들을 위해서 노력하는 봉사자들, 아울러 이 상황에서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웃들을 돌보는 많은 시민 등이 ‘코로나 19시대’의 ‘반항’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 대구에서는 한 달 치 임대료를 받지 않겠다고 전한 건물주도 등장했다. 어려움을 나누겠다는 좋은 씀씀이다.

◇ 현재 대구 분위기

대구에서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는 걸 막기 위해서 국무총리가 내려오더니, 어제(2월 25일)는 대통령이 직접 다녀갔다. ‘대구 봉쇄’에 대한 해명도 했고, 정부가 최선을 다해서 지원하겠다는 다짐이 있었다. 그런데 그 회의에는 대구 부시장도 참석했는데, 그의 비서가 확진자로 밝혀져서 자가 격리됐다고 한다. 그럼 대통령도 격리될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정치권은 두 패로 나뉘어 정부를 비판하는 세력과 이를 방어하는 세력이 계속 무의미한 논쟁을 이어가는 중이다. 하나가 돼 문제를 해결해도 모자를 판국에 그 책임을 따지고 명확히 하기 위해서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한다.

이 와중에 대구 분위기는 독특하다. 대체로 신천지에 대한 비난과 비판 여론이 광풍처럼 전역을 휩쓰는 가운데, 대구 시장은 대구 신천지 문제를 언급하기보다는 중국인 입국을 허용한 정부를 비판한다.

비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음을 보자. 경기도, 서울, 울산 등 신천지 신도 확진자가 등장한 곳의 지자체장들은 공권력을 동원해서라도 신천지 명단을 입수하고 폐쇄 조치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대구는 가장 많은 확진자가 나오고, 그중 대다수가 신천지와 관련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한 공권력’을 언급하지 않는다. 신천지 이만희 교주의 고향이 대구 근처 청도고, 따라서 대구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리라 추측이 커지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신천지의 독특한 신앙과 집회 방식의 문제가 코로나 19 확산의 주요 요인이라 하더라도 ‘마녀사냥’을 방불케 하는 현 상황은 옳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 시장의 발언과 신천지에 대한 조치는 신천지와 대구시와의 관계를 의심하게 만들고 이미, “고위직에 신천지 신도가 있어서 대구시와 신천지와의 협력관계가 있을 가능성도 있는 것 아닐까?” 합리적 의심을 가능하게 한다.

아울러 교사, 공무원, 경찰 등 여러 공공기관 담당자들이 ‘신밍(*신천지 신도임을 밝히는 것)’하고, 대구시가 대구 신천지에 여러 번 표창했다고 한다. 이 부분도 그냥 대구에서의 일만 다뤄도 될 것을 서울시에서도 표창했다는 부분을 함께 언급했다. 그러나 서울시의 강경한 태도를 보면, 그 표창의 객관성이 대구와 비교돼 보이지 않는가?

전국에 24만 명이 넘는 신천지 신도가 있다고 할 때, 각계각층에 신도들이 종사하는 건 당연하다. 특히 이런 시국에서 ‘신밍’하는 건 수많은 질타와 다양한 폭력적 위험에 스스로 노출 시키는 것이어서 절대 쉬운 결단이 아니다. 그런데도 많은 시민은 “신상을 공개하라!”고 윽박지른다.

이런 부분은 신천지만의 문제가 아니다. 재력과 신도 수가 상당한 종교기관이라면, 정부와 지자체와 우호 관계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다만, 신천지가 개신교로부터 ‘이단’으로 선포됐고 폐쇄성이 심각한 수준이다. 아울러 그들이 믿는 교리와 교리 전파 방법도 합리적이지 않아서 일반인들에게 색안경을 신천지가 제공한 셈이니 자업자득이라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 코로나 19시대의 ‘반항’

이 시대의 ‘반항’은 뭘까? 일단, 누구를 막론하고, 똑같은 인류로 인정해야 한다. 중국인들 출입을 막는 거 이미 포기했다면, 입국한 그들을 ‘우리’로 받아줘야 한다. 다음으로 ‘마녀사냥’, ‘희생양’ 찾기를 그만하고 감염 전파를 막고, 치료를 위해 합심해야 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병에 걸리고 싶어 일부러 걸리는 사람은 없다. 또, 그 병을 일부러 전파하려는 사람도 없다.

현재 유언비어처럼 전해지는 메시지가 있는데, 신천지 신도들이 지령을 받아 기존 교회까지 감염시키려 했다는 내용이다. 교주의 언행과 그들의 폐쇄성을 생각하면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그들을 ‘우리 국민’, ‘우리 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 전국적으로도 말도 안 되는 ‘대구 코로나’, ‘대구 봉쇄’와 같은 담을 쌓지 말고, ‘우리 대구’라고 생각해서 물품을 지원하고 의료진도 적극적으로 보내줘야 한다.

다음으로 ‘높은 수준의 시민 의식’이다. 마스크, 생필품 등을 사재기하는 ‘나’만을 위한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공동체 의식’을 갖지 못하면, 코로나 19시대는 더 길어질 것이다. 힘든 시기를 남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내 문제처럼 생각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책임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부는 안이한 대책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여야 하며, 대구시도 정부 탓만 할 게 아니라 현황을 인정하고 조기에 수습하지 못한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신천지도 그들로 인한 감염확산과 관련해 당연히 사죄해야 한다. 책임을 회피한 다음 시간이 흐르면 해결되리라 생각하지만, 코로나 19시대를 보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좋지 않은 이미지로 남게 될 것이다.

◇ <페스트>에는 영웅이 있었다

소설에는 영웅이 존재한다. 소설이기에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에는 영웅이 등장하기 힘들다. 영웅의 등장을 바라서도 안 된다. 한 명의 영웅보다는 수백만 명이 공동체 의식을 갖는 게 더 중요하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지도자를 바라기보다는 시민 의식이 진일보(進一步)되는 게 더 낫다. 과거 어느 천주교 신자와 이야기를 나눈 적 있다. “개신교에서는 ‘오병이어’를 예수님의 기적으로 이해하죠? 하지만, 천주교에서는 적은 양의 음식이었지만, 나눔의 미덕으로 가능한 공동체 사건으로 이해한답니다.”

지금 ‘코로나 19시대’는 신이 아니라, 공동체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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