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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의시대(7)] 로컬크리에이터가 일으키는 스몰비즈니스 혁신

(기고) 비로컬 김혁주 대표 "통념은 깨졌다. 스몰 비즈니스도 스타트업으로 변신한다"

비로컬 김혁주 발행인 승인 2020.06.01 13:19 의견 0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대표적인 분야는 여행, 관광 분야다. 요즘은 자신들의 취향을 중심으로 한 테마여행을 즐기는 추세다. 테마여행의 일환으로 아기자기한 재미를 찾아 소도시 도보관광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다.

속초여행하면 흔히 바다를 구경하러 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은 책과 여행을 동시에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성지순례 삼아 들르는 장소가 있다. 맛집도 아니고 유명 포토스팟도 아닌데 수많은 여행자의 발길이 이곳을 향한다. 속초 <동아서점>과 <문우당서림> 이야기다. 두 서점이 걸어서 몇 분 안 되는 거리에 자리 잡고 있어 서점순례객의 발길을 재촉한다. <동아서점>은 3대째 이어오고 있다는 작은 동네서점이라는 자기만의 스토리가 있고, <문우당서림>은 대도시의 유명서점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답고 탁월한 공간조성으로 유명하다.

3대째 대를 이어 운영중인 속초 <동아서점>. 큐레이션 서점의 장점이 독서여행자를 유입시키고 있다.  (출처: 동아서점 페이스북)

◇밀레니얼은 서점찾아 속초간다

두 서점이 갖는 가치는 이뿐만이 아니다. <동아서점>은 탁월한 도서 큐레이션으로 더 유명하다. ‘의도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도서진열’이라는 정교한 고객여정 설계가 책을 더욱 읽고 싶게 만들고 사고 싶게 만든다. 또한 3대 김영건 매니저는 속초 로컬 로컬콘텐츠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고 있다. 지역에 위치한 서점의 의미를 재정의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쌓인 <동아서점>만의 오리지널 콘텐츠가 방문객을 이끄는 핵심역량으로 부상하고 있다.

<문우당서림>은 인류가 오랫동안 영위해 온 책이라는 창조물과 독서에 수반되는 미적 가치를 극대화했다. 서점인지, 전시장인지, 팝업스토어인지 딱히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책의 물성을 다루는 것뿐만 아니라 도서의 의미를 풀어낸 심미적 공간 구성을 연구하고 책 문화를 향유하는 지역주민을 위한 공간기반 프로그램을 적극 도입하는 한편, <문우당서림>만의 굿즈도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문우당서림>이라는 특별한 공간 자체에 머무는 순간을 즐길 수 있으면서, 책과 독서의 소중함을 인식하게 해준다. 이런 경험은 어디에서도 누릴 수 없는 특별함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처음엔 누군가가 속초 여행을 갔다가 서로 가까운 거리의 두 서점을 방문하게 되었을 것이다. 두 서점의 개성과 차이점을 통해 서점순례의 즐거움을 후기로 남겼을 것이다. 후기를 참고한 여행자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다가 어느 틈엔가 여행의 컨셉이 뒤바뀌는 상황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바다를 보기 위해 속초에 갔다가 <동아서점>과 <문우당서림>을 들르는 게 아니라, 두 서점에 가보고 싶어 여행지를 속초로 정하는 형태로 말이다.

책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콘텐츠로 만든 <문우당서림>  (beLocal)

◇‘창업’보다 ‘창직’의 경향이 강한 로컬크리에이터의 창업방식

이 두 서점의 사례는 ‘로컬크리에이터’가 기존의 소상공인과 다른 점을 명확히 나타내 보여준다. 기존의 소상공인들이 제품과 서비스라는 텍스트의 본질에 치중하고 있다면, ‘로컬크리에이터’는 콘텐츠라는 콘텍스트에 더 많은 신경을 쓴다. ‘로컬크리에이터’가 ‘로컬’의 자원을 자신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능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반 소상공인과 뚜렷한 차이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런 차이점은 어디에서 시작된 걸까? 극단적으로 단언한다면, 태어나면서부터 ‘로컬크리에이터’로 태어났기 때문에 삶을 영위하며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길을 선택한다고 볼 수 있다. ‘로컬크리에이터’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취향’으로 대변되는 자신만의 독특한 라이프스타일 그대로 살고 싶어 남과 다른 길을 나선 경우가 많다. 자기만의 ‘로컬’을 발견하거나 창조해내는 것도 자신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에서 기인한다.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맞는 지역을 찾아 정착하거나, 그런 곳을 찾을 수 없다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중심으로 한 생태계를 만들 수 있을 만큼 기회비용이 적은 곳에서 무언가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로컬크리에이터’의 활동이 변두리 골목길이나 지방의 중소도시, 공동화된 원도심에서 시작된다. 또한 ‘로컬크리에이터’가 원하는 삶이 기성 기업이나 일자리에서는 추구할 수 없다보니 ‘로컬크리에이터’ 스스로 창업과 창직에 나서지 않으면 딱히 스스로 생계를 도모할 방법도 없다. 생존을 위한 본능, 나다운 행동을 하고 싶은 욕구가 합쳐져 ‘로컬크리에이터’의 활동이 발현되고 남들에게 두드러져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1월 21~22일 강릉에서 개최된 <lit2020 새로운 국면:로컬 임팩트> 컨퍼런스는 로컬크리에이터가 각자의 로컬에서 파생시킬 수 있는 소셜임팩트에 중점을 두었다.  (beLocal)

◇활동가, 소셜벤처를 능가하는 소셜임팩트를 발생시키기도...

이들이 형성한 점포, 제품과 서비스는 평범한 이들 입장에서는 매우 독특하며,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형태를 띠다보니 ‘힙’한 가게로 입소문을 낳게 된다. 그 결과 의도하지 않았지만 낙후된 골목 안쪽까지 고객을 끌어들이는 앵커스토어의 역할을 하게 되고 골목을 부흥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좀 더 본질을 들여다보면, ‘로컬크리에이터’ 본인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중심으로 한 생태계를 구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고객과의 소통이 빈번해질수록 이 생태계는 더 커지며, 주위에 영향력을 끼치며 자기만의 ‘로컬’을 확장해 나간다. 앞서 “제품과 서비스라는 텍스트가 아닌 콘텐츠라는 콘텍스트”라 설명했는데,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통해 재해석된 로컬’이라는 표현으로도 정리할 수 있겠다.

같은 이야기를 또 반복하는 듯하지만, 요즘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도시재생 측면에서 살펴보자. ‘로컬크리에이터’가 생계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낙후된 지역을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소셜미션을 가진 활동가나 소셜벤처와는 그 동기가 전혀 다르다.

활동가들은 낙후지역의 결핍, 빈부격차의 문제 등을 해결해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데 목적을 둔다. 소셜벤처는 사회적 문제가 해결되는 임팩트가 연속될 수 있도록 스스로 지속가능한 방법을 찾는다. ‘로컬크리에이터’의 경우도 자신이 자청해 소셜미션을 갖고 활동할 수는 있지만 원래 목적은 생계를 위한 영업활동에서 출발한다. 이런 점은 ‘로컬크리에이터’와 일반 자영업자와 사이의 공통점이라 볼 수 있다.

어반플레이가 운영하는 <연남방앗간>에 전시된 전국 대표 참기름. <더로컬프로젝트> 이희준 대표의 작품이다.  (beLocal)

◇‘참기름 소믈리에‘라고 들어보셨나요?

<더로컬프로젝트> 이희준 대표의 사례는 기존의 소상공인과 ‘로컬크리에이터‘의 차이를 뚜렷하게 대비해준다. 이희준 대표는 전통시장 전문가다. 전통시장의 매력에 빠져 전통시장 활성화라는 소셜미션을 가진 소셜벤처 ‘아이디액션’의 공동창업자로 비즈니스에 뛰어들었다. 전통시장 44군데의 이야기를 담은 <시장이 두근두근 1,2>를 펴내며 ‘전통시장 도슨트’라는 직종을 창직했다. 2016년에는 구로시장에서 ‘청춘주유소’라는 특이한 이름으로 국내 최초의 참기름 편집숍을 열었다. 그간 전국의 전통시장을 돌며 발굴한 지역의 참기름을 수집해 마치 세계 유명와인을 판매하듯 진열하고 판매했다. ‘참기름 소믈리에’란 별명이 붙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아마 이 기사를 대하는 분들은 ‘전통시장 도슨트’, ‘참기름 소믈리에’와 같은 명칭이 생소하게 여겨지실 거다. 아예 이런 직종 자체를 들어보는 것이 처음인 분도 많을 것이다. 이희준 대표는 자신의 가치관을 새로운 직업의 형태로 풀어낸 창직형 ‘로컬크리에이터’라 칭할 수 있다.

요즘 창업과 더불어 ‘창직(創職;Job Creation)’이 함께 이야기되고 있는데, 자신이 사장이 되어 사업체를 시작한다는 ‘창업’과는 다른 개념이다. 창직은 새로운 직업이나 직무를 만들어낸다는 개념으로 변화되는 세상 속에서 자신의 적성, 재능, 역량에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보태 새로운 직업이나 직무를 발굴하는 구체적인 행동을 의미한다.

앞에서 태어날 때부터 ‘로컬크리에이터’로 태어난다고 했던 의미가 이희준 대표에게 따라붙는 ‘전통시장 도슨트’나 ‘참기름 소믈리에’와 같은 창직을 통해 충분히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로컬크리에이터’로서의 발현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희준 대표는 자기가 관심 갖는 분야, 해보고 싶은 일이 소도시 도보여행을 즐기는 라이프스타일, 로컬푸드를 통해 건강해지고 싶은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하는 존재로 설명된다.

이젠 약을 사러 영월로 여행에 가게될까? <약사세요, 약국>  (beLocal)

◇창업준비 과정부터 독특했던 <약사세요, 약국>

또 다른 사례는 강원도 영월에 있는 ‘약사세요, 약국’ 정초롱 약사다. 정초롱 약사는 약대 졸업 후 병원 처방을 주 업무로 하는 약국에 근무약사로 취업했다. 2년 반 가량 일하다보니 처방조제만 하는 일에서 한계를 느꼈다. 약사의 역할은 약의 조제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처방전을 들고 온 환자를 대면하며 복약지도를 하는 일도 약사의 일이고, 생활에 필요한 약품이 필요해서 약국을 들르거나 건강에 대한 염려로 약국을 찾는 사람들을 마주 대하는 일도 약사의 일이다. 원래는 환자들과 상담하는 약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약사세요, 약국>을 창업하게 되었다.

<약사세요, 약국>은 창업 전부터 화제가 되었다. 그건 정초롱 약사가 그린 웹툰 때문이었다. 약국이 하루 아침에 뚝딱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약국 자리를 찾고 준비하는 약국 기획과정을 웹툰 형식으로 그린 것이다. 웹툰 작가가 그린 세련된 그림체도 아니고 특별한 내용은 아니지만, 약사가 그린 웹툰, 그것도 약국 기획의 과정이라는 내용이 SNS에서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실제로 영월의 <약사세요, 약국>을 가보면 웹툰에 등장한 내용이 약국 속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한쪽 벽면에는 정초롱 약사를 닮은 만화 캐릭터가 장식되어 있는데, 인체의 장기가 있는 위치에 해당 장기가 아플 때 복용하는 약이 놓여있다. 약국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는 유쾌한 소재이면서 자연스럽게 건강상담, 복약상담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매개체다. 약국 내부도 팬시점을 연상케하는 아기자기한 재미로 가득 차 있다. 뽀로로 등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요소요소마다 등장하는데, 단순한 눈요기 거리가 아니다. 연령대별로 고민하는 건강문제나 이상증상과 관련된 약품들 사이에서 캐릭터들이 의약품 큐레이터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밖에 약국을 찾은 환자들이 편히 머무를 수 있는 공간구성은 환자를 마주 대하고 싶은 정초롱 약사의 가치관과 철학을 담고 있다. <약사세요, 약국>은 로컬 커뮤니티를 형성한다는 측면에서 색다른 사례가 된다. 지금까지 알려진 로컬 커뮤니티들은 독립서점, 공방, 카페, 코워킹스페이스 등에서 발전된 라운지 형태를 띠고 있었다. 약국이 커뮤니티의 중심이 된다는 점은 특이한 사례이기도 하지만, 커뮤니티를 중요시 여기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공간에 대한 고정관념을 초월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정초롱 약사는 건강과 커뮤니티를 동시에 중시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하는 ‘로컬크리에이터’인 셈이다.

<청년장사꾼>이 만든 서울의 로컬 ‘열정도’  (beLocal)

◇생존을 위해 로컬크리에이터로 트랜스포메이션하는 경우도...

이희준 대표, 정초롱 약사의 사례는 ‘로컬크리에이터’ 스스로 타고난 DNA로 인해 새로운 일을 창업거나 창직에 나선 이들을 대표한다. 그러나 기존의 소상공인이 새롭게 변화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로컬크리에이터’로 변신하는 사례도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서울 남영역 근처의 골목상권을 발전시켜 ‘열정도’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만든 <청년장사꾼>의 이야기다.

<청년장사꾼>은 청년 창업을 돕고 지역활성화를 모토로 하는 기업이다. 경복궁역 금천교시장에 열었던 4평짜리 스몰비어 <감자집>이 대박을 치며 급성장했지만, 빠른 확장에 따른 진통과 어려움을 겪었다. 각종 민원과 신고가 들어가 여러 차례 단속대상이 되며 영업정지를 당하기도 했고, 언론을 탔다가 방송을 본 다른 업주가 상표권을 선점하는 바람에 브랜드를 잃었고, 건물주가 바뀌며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일들을 모두 겪는 와중에 발견한 곳이 지금의 ‘열정도’ 자리인 남영역 근처 원효로1가의 어느 골목이었다.

이곳은 원래 대형 인쇄공장들이 있었지만, 파주출판단지가 조성되며 하나 둘 이전했고 주변지역이 재개발되며 공동화되고 있던 골목이었다. 여러 개의 공실과 저렴한 임대비용은 창업교육과 문화프로젝트를 추구하며 청년창업을 활성화하고 싶었던 <청년장사꾼>에게는 새로운 기회로 다가왔다. 동시에 6개나 되는 개성있는 매장을 오픈하는 ‘열정도’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오픈 직후인 2014년 겨울, 소셜 액티비티 플랫폼 프랜트립과 함께 100명의 러너가 열정도 주변을 달리고 뒷풀이를 하는 ‘열정런 프로젝트’를 통해 ‘열정도’를 알리기 시작했고, 박원순 시장 방문, 야시장 운영 등이 이어지며 낙후된 골목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런 일련의 노력들은 ‘열정도’만의 풍경과 문화를 형성하며 새로운 ‘로컬’을 창조해 냈다. 이렇게 기존의 소상공인들도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로컬’을 경험하고 있고, ‘로컬크리에이터’로 변신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계속)

 

▲위 기사는 로컬트렌드 미디어 <비로컬>과 인터넷신문 <시사N라이프>가 공동기획·취재를 통해 독자 여러분께 제공하는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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