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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의시대(2)] 어느 때보다 '로컬'의 의미가 복잡한 시대

(기고) 비로컬 김혁주 대표 "시간과 공간의 복합적 의미가 담긴 복층적 의미의 로컬"

비로컬 김혁주 대표 승인 2020.01.23 03:25 | 최종 수정 2020.05.21 20:51 의견 0
2019년 10월 11일 개최된 <로컬크리에이터페스타>  (사진: 윤준식 기자)

2019년 들어서며 ‘로컬크리에이터’에 대한 질문과 강연요청을 많이 받게 되었다. 이유는 필자가 이 분야의 마당발이라는 입소문 덕분이다. ‘로컬크리에이터’라는 말은 ‘로컬+크리에이터’로 각각의 단어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개념이지만, ‘로컬크리에이터’라는 신조어로 등장하며 새로운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우선 ‘로컬’이라는 단어가 사람들 사이에서 적극성을 갖게 된 건 20여년 된 것 같다. ‘글로컬(글로벌+로컬)’로 정리된 메가트렌드 덕분이다. 혹시 인간문화재 故 이동진 판소리 명인이 등장해 “우리의 것이 좋은 것이여!”라고 말하는 광고를 기억하는가? 우리만의 문화로 알고있던 판소리에 세계인이 관심 갖기 시작하고, 그 예술성을 높게 평가한데서 착안한 광고다. 이 시기 이후로 ‘로컬’은 새로운 인식을 갖기 시작한다. 그 전에는 ‘지방=촌구석’이라며 스스로 보잘 것 없게 여기던 것에서 자랑스러운 것, 보존하고 계승, 발전시켜야하는 것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한편 ‘글로컬’이라는 메가트렌드를 성립하게 한 세계화 추세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접하도록 했고, 이는 우리의 대중문화 속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대중들은 단순히 즐기고 영위하는데 머무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카피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창의적 수용의 형태로 빠른 속도로 발전해 나가기 시작했다.

‘힙합’이나 ‘아이돌’ 대중문화는 이젠 우리 나라가 세계 정상급의 실력을 자랑하고 있으며, 그 종주국보다 더 큰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 ‘BTS’의 빌보드 석권은 ‘BTS’의 몸값만 높인 것이 아니었다. ‘BTS’ 팬을 비롯 수많은 ‘K-Pop’ 매니아들이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하고 한국의 역사와 전통을 배우려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과 ‘로컬’이 연결되는 사례로 이야기할 수 있다.

‘퓨전푸드’로 대변되는 음식문화도 ‘글로컬’ 현상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다른 음식문화를 선보이는데서 시작했지만 대중성을 얻어가는 과정에서 우리의 음식과 접목되는 ‘퓨전푸드’로 재창조되었다. 이는 2가지 긍정적 평가를 해볼 수 있는데 첫째로 우리의 고유한 음식문화가 해외에서 들어온 음식문화보다 부족하지 않기 때문에 해외에서 전래된 음식에 쉽게 휩쓸리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고, 둘째로 이런 음식문화의 우수성은 우리의 고유 음식과 전래된 음식 2가지를 재해석한 제3의 새로운 음식을 창조하는 능력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지금 현재 ‘로컬크리에이터’가 주목받는 것은 ‘글로컬’이라는 메가트렌드 속에서 ‘로컬’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생겨났으며 ‘로컬트렌드’의 형태로 가속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한편 이런 ‘로컬트렌드’는 앞에서 설명한 문화적 다양성을 수용하는 과정 속에 문화적 창조성이 덧붙여지며 재해석되는 ‘로컬’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고 있다.

‘로컬크리에이터’, ‘로컬트렌드’를 일컬을 때 말하는 ‘로컬’은 영단어 ‘local’을 직역한 ‘지역’, ‘지방’과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진, 재해석된 의미의 ‘로컬’이다.

이에 대해 연세대학교 모종린 교수님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창의적 소상공인”, 좀 더 구체적으로는 “골목 상권 등 지역 시장에서 지역 자원, 문화, 커뮤니티를 연결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창의적 소상공인”이라 정의하고 있다. 모종린 교수님의 정의는 지금까지 등장한 ‘로컬크리에이터’에 대해 가장 객관적이고도 종합적이면서 가장 축약된 설명이다. 이 정의 속에는 앞으로 등장할 수 있는 더 많은, 미래의 ‘로컬크리에이터’ 유형까지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포괄적인 정의 탓에 염려되는 것은 새롭게 등장한 ‘로컬크리에이터’나 ‘로컬트렌드’를 제대로 이해하고 경험해 보지 못한 상태에서 ‘로컬콘텐츠’의 일부분만을 대하게 된다면 이와 같은 모종린 교수의 정의만 보고 ‘로컬크리에이터’를 잘못 인식할 수 있다. 모 교수님의 정의 속에 ‘지역’과 ‘소상공인’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데, 지금까지 알고 있던 사전적 정의를 생각의 틀로 놓고 바라보면 뭔가 문화적 감수성 충만한 동네 장사치에 불과하다고 과소평가할 수 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왜 굳이 힘들여 ‘로컬크리에이터’라는 영어로 된 신조어를 사용하고 있는가?”, “굳이 꼭 집어서 ‘로컬’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다. ‘지역’, ‘지방’, ‘골목’ 등 ‘local’에 해당하는 다양한 표현이 이미 존재하는데 ‘로컬’이라는 단어를 넣어 낯설게 보고자 하는 이유 말이다.

이는 ‘로컬’이 지정학적 위치나 행정구역 등의 구획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는 이야기다. 서울-수도권-지방으로 구분되는 구조적인 것이 아니는 점이다. 문화적 차별의 의미로 도시와 시골을 구분하기 위한 의미도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문화, 라이프스타일, 경제적 생태계를 포괄하며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추세를 더하자면 당장 대체할 수 있는 단어가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로컬’이라는 말로 기존의 의미를 탈피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새롭게 대두된 의미의 ‘로컬’에 발을 딛고 있는 ‘로컬크리에이터’는 “지역의 자원, 문화, 커뮤니티를 연결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문화지향적 창업가”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만 정리한다면 ‘로컬크리에이터’는 예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 사람들인데, 최근 ‘로컬크리에이터’가 각광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문화적 도시재생과 더불어 지역을 혁신하는 존재로서 ‘로컬크리에이터’가 인정받고 있어서다.

또한 ‘로컬크리에이터’의 일부는 스타트업 영역으로 더 크게 발전하며 혁신기업으로 주목받으며 좋은 사례가 되어 주고 있다. 이에 ‘로컬크리에이터’로서 창업을 꾀하려는 사람들도 나타나고 있고, 지역혁신창업의 일환으로 보고 지원하려는 정부기관의 움직임도 많아지고 있다.

글 서두에서 필자가 ‘로컬크리에이터’ 분야의 마당발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는데, 이는 필자가 ‘로컬트렌드’에 관심을 갖고 집중적으로 ‘로컬’ 구석구석을 탐방한 것이 여기저기 알려지면서다. 필자가 ‘로컬트렌드’와 ‘로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주 개인적인 관심과 경험에서 출발했다.

필자는 2000년대 초반까지 웹 기획과 에이전시 업무를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해외경험을 쌓아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그동안 해오던 일들을 모두 접고 이스라엘로 유학을 떠났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자연환경과 지리적, 역사적 특성은 필자에게 ‘로컬’을 발견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이스라엘은 지형적인 특성상 도시와 도시가 이어지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도시를 벗어나면 자연 그대로의 환경이 펼쳐진다. 인간에겐 황폐한 환경뿐인 광야와 광야 사이에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도시들이 띄엄띄엄 떨어지며 각자 자급자족 구조를 보이고 있다.

이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와도 관련이 있다. 민족의 이동과 정착과정에서 인간이 머무를 수 있는 장소에 도시가 하나씩 형성되었다고 보면 된다. 그러다보니 도시의 한 부분인 동네, 골목 또한 도시가 가진 자급자족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행태를 자연스럽게 갖고 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동네 중심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다보니 모든 사람들이 동네 친구로 지낸다.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을 가도 머리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근황에 대한 이야기가 우선이다. 식당을 가더라도 가게 주인과 점원, 손님이 친구처럼 지낸다. 주문을 따로 한다기보다 안부인사와 더불어 대화가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주인이나 점원이 손님이 평소 선호하던 메뉴를 선뜻 챙겨주는 식이다. 짧은 글로는 제대로 표현이 되지 않는데 단순한 공동체성을 넘어 ‘골목’, ‘동네’를 중심으로 하는 생태계로서의 생활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활권에 대한 경험의 깊이는 유럽을 여러 차례 오가며 더 심화되었다. 이스라엘과 유럽은 역사적 사건들로 인해 매우 자주 왕래하며 상대적으로 가까운 곳이다. 이스라엘에서 비행기를 타면 3시간 만에 이탈리아나 스위스 등지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유럽도 역사적인 이유인 봉건제도와 분권적 전통으로 인해 ‘지역’, ‘골목’, ‘동네’가 일상의 주무대로 자리잡고 있었다. 이런 경험들은 필자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귀국한 이후 필자는 ‘로컬’에 대한 더 많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로컬’에 대해 재인식해가며 ‘로컬’, ‘로컬트렌드’, ‘로컬크리에이터’에 대한 다양한 사례를 수집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전통문화 속에도 지역과 커뮤니티를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가 있었다. 그러나 빠른 도시화와 더불어 농촌에서 도시로 인구의 이동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도시도 빠른 인구유입으로 인해 확장과 건축을 경험하며 예전의 농촌만큼 지역주민들이 강한 응집력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여기에 신도시개발과 재건축 등으로 지역주민들도 서로를 모르는 게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렸다.

이에 따라 지금 현재 한국사회에 대두되는 ‘로컬’의 의미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다양한 의미가 혼재된 복층 레이어 구조를 띄고 있다. 간략히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 또한 하나의 트렌드이기 때문에 변화하는 라이프스타일에 의해 언젠가는 쉽게 이해되는 때가 올 것이다.

▲위 기사는 로컬트렌드 미디어 <비로컬>과 인터넷신문 <시사N라이프>가 공동기획·취재를 통해 독자 여러분께 제공하는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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