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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모노드라마 '피에타' 3인3색의 마리아 - 최미선, 허은, 최아름

윤준식 기자 승인 2016.04.16 23:16 의견 0

성모가 아닌,평범한 여자이자 엄마인 인간 마리아 재조명

- 부조리한 세상에서 죄없는 아들의 죽음을 목격해야했고 남은 삶에서 증거해야했던 마리아

 


4월 들어 2편의 종교 모노드라마가 대학로 소극장에 올려졌다. ‘빌라도의 보고서’와 ‘피에타’가 그 두 작품이다. 이 두 작품에는 묘한 공통점과 대비점이 있다. 목격담으로써 역사적 범위에서 예수를 행적을 묘사하고 그 의미를 찾는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그 목격자가 로마의 총독과 생모라는 차이에서 예수를 바라보는 시각과 거리감이 다르다. ‘드라마교회’와 ‘약속의연극레퍼토리’가 공동제작한 모노드라마 ‘피에타’에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역으로 출연한 3인3색의 여배우들을 서울 혜화동 인근 카페에서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모노드라마 '피에타' - 3인3색의 마리아 <p class=(사진제공: 약속의연극레퍼토리)" width="550" height="413" /> 모노드라마 '피에타' - 3인3색의 마리아 (사진제공: 약속의연극레퍼토리)

 

¶ ‘피에타’라는 주제에 대한 생각은

 

최미선: 이태리어로 ‘애가(哀歌)’, 슬픈 노래라는 뜻이다.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을 보면서 마리아가 엄마의 눈으로 예수의 생애를 지켜보면서 그 삶을 함께 동반하고 말없이 지켜보는 아픔을 어떻게 애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슬픔 속에서 마리아는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일까 고민하게 했다.

 

허은: ‘다들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를 먼저 떠올린다. 종교적인 주제다보니 종교가 없는 분들은 “성모 마리아 나오고 예수 나오는 그거 아냐”라는 전형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올리는 ‘피에타’는 그런 전형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애가(哀歌)’라는 느낌이 주는 종교색이나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 같은 고정관념을 없애려고 노력했다. 포스터도 밝고 행복한 느낌을 담아 형형색색으로 했다. 성경에도 ‘마리아’라는 이름의 동명이인들이 등장하는데 ‘마리아’라는 이름이 흔했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평범한 여자를 뜻하기도 한다. 연기를 준비할 때도 ‘성녀 마리아’, ‘성모 마리아’, ‘동정녀 마리아’같은 종교적인 마리아가 아니라 ‘인간 마리아’, ‘엄마 마리아’,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여자 마리아’를 표현하는데 중심을 뒀다.

 

최아름: 개인적으로 기독교 신자가 아니다보니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성경을 읽어야 했을 때 굉장히 힘들었다. 그러다보니 “성경을 읽었기 때문에 이 작품이 이해되었다”는 결론이 나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다른 배우들과 연출님과 작품연구를 많이 했다. 그러면서 연습과정에서 ‘생모 마리아’라는 말로 마리아를 말하게 되었다. 성스러운 존재로 여겨지기까지 인간으로서 겪어야 했던 아픔과 고통의 과정이 있는데, 지금 우리가 예술작품을 통해 보는 ‘피에타’는 과정을 건너 뛴 결과인 ‘성모 마리아’만 보게 된다. ‘피에타’에 이르는 것이 얼마나 극한의 고통인지와는 멀다. 모노드라마 ‘피에타’ 속에는 기쁨도 있고 행복도 있으면서 고통이 함께 존재한다. 그래서 이 극을 보고 돌아가는 관객들은 성모 마리아를 만나고 가는 건지, 같은 인간 마리아를 만나고 가는 건지 들어보고 싶다.

 

¶ 배우분들이 모두 미혼인데 어머니 연기는 어떻게 준비했나

 

최아름: 미혼이라 어머니 연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아이를 낳아 길러본 경험이 있다고 해서 마리아의 역할을 잘 한다는 보장도 없다. 배우로서의 경험, 그동안의 훈련으로 마리아를 창조하려고 노력했다. 오히려 막연한 감정을 쫓기보다는 극을 더 객관적으로 보며 논리적으로 접근하려 노력했다.

 

허은: 배우로서 내 안에서 완벽하게 설득되고 터득하지 못하면 손가락 움직이는 것도 안되는 성격이다. 무대에서 한 발짝 떼는 게 백퍼센트 타당하지 않으면 가짜라고 생각하는 편이기도 하다. 배우는 자신들이 겪어보지 않은 수많은 인물들을 연기한다. 오히려 어떤 상황에 대한 경험을 전부라고 착각하게 되면 그 상황에 대한 넓은 상상력을 제한하게 된다. 직접경험을 통해 상상력에 방해를 받을 것 같다면 간접경험이 더 확장된 상상력을 갖게할 수 있다. 이번에 마리아를 연기하기 위해서도 자료들을 수집해 공부하고 주위 사람들의 경험담을 들으며 마리아를 그려냈다. 뱃속에서 태동을 느꼈을 때부터 입덧을 시작할 때, 아이를 기르고 떠나보낼 때까지 이 여자의 인생을 머리 속으로 살아보았다. 그래서 내가 아들과 함께 살아온 것을 기본 베이스로 갖고 무대에 섰다.

 

마리아 역의 허은 배우. 연극 '러브 좀비 메모리', '라이겐', '그놈을 잡아라', 뮤지컬 '싱글즈', 영화 '플라워',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등에 출연했다. <p class=(사진: 윤준식 기자)" width="413" height="550" /> 배우 허은. 연극 '러브 좀비 메모리', '라이겐', '그놈을 잡아라', 뮤지컬 '싱글즈', 영화 '플라워',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등에 출연했다. (사진: 윤준식 기자)

 

¶ 마리아 역에 캐스팅 된 과정은

 

최아름: 연출님에게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제가요”라고 반문했다. “감히 제가요”라고 반문했다. 모노드라마라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었다. 대부분 경력이 많은 배우들이 모노드라마를 한다고 여겨서 배우가 성장해가는 과정으로 봐주지 않을 수 있어서다. 나의 나이가 어린 탓에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나의 연기를 보지 않을까 하는 부담이 컸다. 대본을 읽고 나서 도전의식이 생겼고, 워낙 비극을 좋아하기도 해 연습에 들어갔지만 혼자 주체할 수 없는 어려운 감정들로 많이 울었다. 집에서는 배역에 대한 공부와 감정을 잡고 연습실에 와서는 미친 듯이 연습했다. 나중에는 내가 실신하겠다 싶을 정도로 작품 자체가 무겁고 감당이 안 되었다. 그런 과정을 여러 번 겪으며 좋은 작업이 되었고 두 선배 배우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허은: 재작년에 “연기가 눈에 들어갈 때”라는 작품을 했는데, 연출님이 죽은 남편을 생각하며 혼자 대화하면서 감정을 꾹꾹 참다 마지막에 감정이 터지는 것을 보시고선 “배우로서의 내공을 펼칠만한 작품이 있어. 기다려봐”라고 하셨다. 나중에 대본을 주셨는데 모노드라마고 제목이 ‘피에타’였다. 이거는 여자의 인생에서 펼칠 수 있는 감정의 극한을 표현해야 하겠구나라는 각오를 갖게 되었고 ‘모 아니면 도’라고 생각했다.

 

최미선: 이대현 연출이 전부터 ‘인간 마리아’를 무대 위에 올려보고 싶어 했다. 이 연출과는 오래 전 미국에서 만나 알게 되었는데 내가 2010년에 귀국하면서 “모노드라마를 한 번 해보자. 마리아 어때”라고 했다. 그래서 “마리아 좋죠”라고 지나가는 말처럼 답했는데 작년에 대본 초안이 완성되자 보내주시며 “최 선생이 한 번 읽어보라”고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함께하게 되었다.

 

최미선 배우는 백석대 문화예술학부 연극영화전공 교수이다. <p class=(사진: 윤준식 기자)" width="413" height="550" /> 최미선 배우는 백석대 문화예술학부 연극영화전공 교수이다. (사진: 윤준식 기자)

 

¶ 최미선 배우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한데 무대에 서는 스케줄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최미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실전에 임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나 자신이 잘해서, 완벽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작업하며 성장해야 한다는 욕구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함께 출연하는 허은 배우나 최아름 배우와 비교해보면 같은 나이일 때의 나보다 훨씬 월등하다. 그런 면에서는 배우로서 존경하는 마음도 있고, 나또한 이들에게 도움받고 배우며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연기를 준비하며 많이 갈등했다. 미국에서 돌아와서 처음 시작하는 작품이 1인극이라 역할을 찾는 것도 그렇고 갖고 있는 역량에 대한 부담감도 컸다. 그래서 이 작품에 대한 애착도 크고 부담도 크다.

 

¶ 이대현 연출은 배우들에게 연기를 지시하기 보다는 자율성을 강조하는 것 같다. 오히려 이번 작품에서는 이런 면이 연기를 더 어렵지 않았나

 

허은: 이번 작품은 아무 것도 없는 무대 위에 조명과 건반 하나와 배우만 올라간다. 음향 이펙트도 없다. 배우 혼자서 70분을 끌고 간다는 것도 어려운데 감정은 사람의 극한까지 끌어내야 한다. 노래도 해야 하고 음악에 맞춰 움직여야 하는데 그냥 동작도 아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끌려가는 모습도 표현해야 하고 내 눈 앞에 꽃이 피고 냇물이 흐르는 것도 표현해야 했다. 그런데도 연출님은 “마음에서 느껴지는 자연스런 움직임들이 더 보여졌으면 좋겠다”고 주문하며 “관객이 ‘저건 춤이야, 저건 안무야’라고 여기게 하는 인위적인 동작은 보기 싫다”는 정도만 말씀하신다.

 

최미선: 연출이 정한 조명 위치에 들어오는 동선만 픽스하고 나머지는 배우에게 맡겼다. 배우가 더 상상력을 동원해서 자유롭게 역할을 품을 수 있도록 연기의 자유를 줬다. 사실 그러기도 쉽지 않다. 어떤 연출가들는 계산되고 짜여진 동선과 자신의 컨셉에 맞춰진 연기를 요구한다. 이대현 연출은 그런 부분은 없고 배우들에게 믿음을 갖고 맡기는 편이다.

 

최아름: 연출님이 풀어주니까 배우가 미학적인 부분까지도 다 생각해야 해서 어렵다. 무대 위에서의 거리감이나 방향성을 너무 잡아주지 않으니 오케이 사인 받을 때까지 미친 듯이 반복해서 연기를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연출님 나름대로는 ‘저거 좋은데’ 하면서도 아무 말 안하고 넘어간다. 그렇게 돌고 돌며 오는게 재밌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다른 공연은 다른 배우들과 주고 받는 것이 있는데 이번에는 모노드라마다보니 혼자서 보이지 않는 아기(예수)와의 관계를 형성하고, 친밀감을 표현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궁금하게 만들고 믿게하는 작업이 유난히 힘들었다. 한번은 연출님이 “느껴지는게 아무것도 없다. 무대 위에서 너 혼자 느끼지 마라”고 충고하셨다.

 

배우 최아름. 연극 '나의 이야기 극장', '꽃상여', '첼로와 케찹', 뮤지컬 '스트릿 라이프', '여리고의 봄', 영화 '아빠의 휴일', 'Day's'에 출연했다. <p class=(사진: 윤준식 기자)" width="550" height="413" /> 배우 최아름. 연극 '나의 이야기 극장', '꽃상여', '첼로와 케찹', 뮤지컬 '스트릿 라이프', '여리고의 봄', 영화 '아빠의 휴일', 'Day's'에 출연했다. (사진: 윤준식 기자)

 

¶ 그렇다면 각각의 배우들을 통해 서로 다른 마리아가 나타날 것 같다. 그래도 일치하는 부분이 있지 않았을까 각각 어떤 마리아를 그려내려고 노력했고 어떤 차이가 있나

 

최아름: 셋 다 다르지만, 묘하게 비슷하다. 마리아라는 같은 인물로 같은 상황을 겪고 있어서인 듯.

 

허은: 무대에서 걸어가는 방향같은 것은 약속한 듯 맞아떨어지는데 디테일한 손가락 하나하나의 움직임, 고개를 떨구는 순간은 미묘하게 다르다. 그래서 3인3색의 마리아로 표현된 듯 하다. 그러나 모노드라마 ‘피에타’는 성경에 있는 구절을 가지고 확장은 하되, 성경에 없는 이야기, 허구는 없다. 그것도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최미선: 최아름 배우는 굉장히 사랑스러운 마리아를 보여준다. 노래하거나 연기하는 모습이 따스하게 다가온다. 허은 배우는 씩씩한 느낌, 통통 튀면서 당찬 느낌이다. 나의 경우는 좀 더 나이든 여자의 느낌 중후함이 풍기는 느낌이 아닐까 모노드라마 ‘피에타’ 속에는 아주 어린 10대의 마리아부터 50대 마리아의 폭넓은 나이 차이를 연기해야 하다보니까 배우 혼자 커버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세 배우의 연령대가 다르기 때문에 각각 보여줄 수 있는 마리아도 있다.

 

초연 첫 공연이 있었던 4월 12일 커튼콜 <p class=(사진: 윤준식 기자)" width="550" height="413" /> 초연 첫 공연이 있었던 4월 12일. 최아름 배우 커튼콜 (사진: 윤준식 기자)

 

¶ 이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마리아의 의미와 메시지가 있다면

 

허은: 마리아의 마지막 노래에서 아들이 죽는 모습을 보며 “이 어미가 할 수 있는 것,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대목이 있다. 연습과정에서는 이 부분을 할 때 원망이 가득해 이를 악물며 ‘감사합니다’를 부르곤 했다. 어느 순간 “그래도 저 아들이 내 아들로 있게 해주셔서, 나랑 30년 동안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셔서, 저 아이가 내 아이라서, 그 시간 시간 한순간이 감사하다”라는 마리아의 모성이 확 잡히면서 목이 메이는 것을 경험했다.

 

성녀 마리아에 대한 전형적인 상상을 했던 사람들이 공연을 통해 인간 마리아를 공감했으면 한다. 아마도 인간 엄마와 인간 아들로서 모든 이들과 같은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해서 나자마자 대소변을 가리고 말을 하고 걸어다녔을까 아들이 처형되는 순간에도 이 여자 마리아가 성녀라서 순순히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니까 데려가세요”라고 했을까

 

첫공연부터 전석매진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모노드라마 '피에타'.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공연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p class=(사진: 윤준식 기자)" width="550" height="413" /> 첫 공연부터 전석매진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모노드라마 '피에타'.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공연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윤준식 기자)

 

아무 죄 없는 아들이 누명을 쓰고 같은 민족에게 몰려서 처형을 당하는데, 아들은 그걸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드리겠다 한다. 그것을 “할렐루야!”하며 받아들였을 것인가 여기에서 모노드라마 ‘피에타’가 출발한다. 내 목숨과 바꿔도 아깝지 않을 아들이 두드려 맞고 생살을 못으로 뚫고 찢기는걸 보며 이 여자가 그걸 보며 미치지 않고 그걸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여기에서 전형적인 성녀 마리아와 동정녀 마리아가 아닌 ‘피에타’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인 인간 마리아가 나타난다.

 

최아름: 종교적인 주제를 떠나서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답게살아가는게 무엇인지에 대해 포괄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이 믿고 나아가는 자기만의 신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것으로 이어지면 좋겠다. 한 인물 마리아가 저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을 보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은 사랑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바라보아야 하는가, 또 생을 마감할 때까지 가지고 가야할 믿음이 심어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최미선: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인간적인 마리아는 나와 얼마만큼 비슷한 존재였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자기 몸에서 낳은 아들이 죽는 것을 보았을 때 어땠을까 세월호 사건으로 아직도 가슴 아픈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나라의 엄마들이 있다. 예수의 엄마인 마리아도 슬픔과 고뇌를 마음 한켠에 계속 갖고 가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는 관객들이 이 공연을 통해 ‘엄마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생각해보고 자식의 입장에서 엄마라는 존재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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