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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미용에 신체건강을 더하다!” 한국전통피부관리 전문가 조군자 박사(2편)

김혜령 기자 승인 2017.07.12 17:10 의견 0

유주관힐링요법으로도 불리는 석션테라피로 국내 최초의 박사학위를 취득한 조군자 박사. 박사학위 취득 후에도 후진양성 뿐 아니라 운영의 어려움을 겪는 미용샵을 찾아다니며 유주관힐링요법을 응용한 실무기술의 전도사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현장에서 일을 하지 않으면 연구감각도 떨어진다는 조군자 박사. 그녀의 이야기를 3회에 걸쳐 전한다.(편집자 주)


¶ 늦깎이 학생, 공부에 열정을 품다.

20일간의 유럽연수는 조군자 박사가 다시 한 번 학구열을 불태우는 계기를 제공했다.

지금은 박사학위 소지자이지만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시절을 겪었다. 어린 시절을 보낸 전남 진도에서 아버지가 고깃배 3척을 갖고 있을 정도로 집안 살림이 넉넉했지만 갑자기 가세가 기울며 학업을 이어가지 못했다. 청년기에 가족들과 집 안에서 하는 작은 공장 일을 돕다 결혼을 한 뒤 살림하는 주부가 되었다. 하지만 가슴 속에는 늘 공부에 대한 열정을 품고 살았다.

“당시 막연하지만 최고 학부를 졸업하고, 책 3권 쓰고, 선생님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어요.”

그녀는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한 대신 책을 많이 읽었다. 당시에는 도서관이 흔치 않았기에 동네 사람들의 집에 있는 모든 책을 빌려 읽었다. 미용산업에 뛰어들기 전 잠시 책을 외판하는 주부사원을 한 적도 있었는데, 많은 책을 접할 수 있고 책을 싸게 살 수 이는 매력에 도전했고, 그 일이 자연스럽게 미용의 길을 열어주었다.

이후 화장품 판매에 뛰어들면서 학업의 꿈을 구체화했다. 당시 청량리에 있던 동원 미술학원에 등록해 2년간 미용기술을 구체적으로 배워나갔다. 하지만 여기서는 기술만 습득해 나갈 뿐 지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미용기술과 자료를 접하며 더 공부해야겠다는 열망을 품었다. 그러다 고등학교 다니던 아들과 함께 입시를 준비했고 수능시험을 통해 2년제 대학에 진학하는데 성공했다.

합격 이후 낮에는 미용샵 운영을, 저녁에는 학교를 다니며 주경야독 학구열을 불태웠다. 잠이 부족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그토록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한다는 즐거움에 피로를 잊어가며 공부재미에 빠졌다. 이후 실무를 통해 습득한 기술을 전문지식으로 해석해 나갈 수 있게되자 공부의 달콤함을 더욱 느끼게 되었고, 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연구하고자 했던 욕심이 4년제 대학진학과 석박사과정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2015년 제16회 중국 국제 다이어트미용전시회에서 우주관테라피를 시연중인 조군자 박사 <p class=(국제미용연합회 제공)" width="550" height="413" /> 2015년 제16회 중국 국제 다이어트미용전시회에서 우주관테라피를 시연중인 조군자 박사 (국제미용연합회 제공)

¶ 우리의 전통인 부항요법에 대한 비전을 보다

사실 조군자 박사가 깊은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오늘날 유주관힐링요법으로 자리잡게 된 부항요법이었다. 피부미용의 기술을 연구하며 오랜 시간동안 경락마사지를 통한 임상효과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이다.

피부미용에 부항요법을 응용함으로써 미용과 건강을 동시에 회복한 사람들을 보며 부항요법에 대한 무궁한 가능성을 엿보았다. 한의학에서 종종 사용되긴 하지만, 부항효과에 대한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이 부족했다. 원래 부항요법은 우리 전통의 요법이었으며 의료분야 뿐만 아니라 미용에도 활용되었다. 하지만, 제대로 전수되어 내려오는 체계적인 지식과 자료가 전무해 민간요법처럼 전승되어 내려올 뿐이었다.

문득 조군자 박사는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 전통의 유용한 자료들이 일본으로 건너갔을 것이라 보고 부항요법 연구를 위해 일본의 대학과 도서관을 뒤져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당시 잘 운영되던 미용샵을 접고 일본 유학을 결행하지만, 건강에 큰 문제가 생겨 1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어 버렸다.

일본 대학을 가기 위한 어학연수를 하는 동시에 지금은 요양지도사로 자리를 잡고 있지만 당시 한국에는 없던 조호서비스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에 매진했다. 그런데 한국보다 월등히 물가가 비싼 일본이다보니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까지 뛰어들었는데 너무 무리를 했던 것이다. 아쉽지만 한국에 돌아와 몸을 추스린 이후 한국에서 다른 곳에서 부항요법의 비결을 찾을 것이 아니라 직접 과학적 연구를 통해 전통을 이어나갈 것을 결심하게 된다.

이때 즈음 4년제 대학인 초당대학교에 들어가 학업을 이어가게 되었고, 마침 그간의 실무경력을 인정받아 동원대에서 피부미용 실습분야의 교원으로 임용되면서 부항요법 연구에 대한 결심을 이어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 이유는 반드시 논문을 써야 졸업을 시키는 초당대의 방침 덕분이었다. 논문을 쓰는 학생들을 지도하려다보니 연구방법론을 알아야 했고 당시 재직중이던 교수님들의 도움으로 연구방법론과 실험방법들을 터득하게 되었다.

¶ 부항요법을 계승발전한 유주관힐링요법

조군자 교수의 본격적인 부항요법도 이때 시작되었다. 조군자 교수의 지도를 받던 학생들의 힘도 컸다. 첫 연구는 여드름이 많은 학생, 혈뇨를 보는 학생, 갑상선이 있는 학생, 아토피가 있는 학생, 탈모가 심한 학생 5명을 통해 부항요법이 미용과 건강에 효과가 있음을 증명하는 실험이었다.

요법 적용 전후의 인터뷰, 신체사이즈 측정, 혈액검사 등을 통해 체험에 나선 학생들의 상태변화를 기록했다. 이 실험을 통해 조 박사는 부항요법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후에도 부항요법의 효능을 단계적으로 규명해 나간 것은 물론이다. 이외에도 이천보건소의 도움을 받아 비만치료 효과를 입증하는 양적 연구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부항요법을 발전시켜 현대적인 유주관힐링요법(테라피)로 발전시켜갔다.

유주관힐링요법은 인체의 70퍼센트를 구성하고 있는 물을 맑게하고 에너지화를 시키는 과정이다. 기본은 부항요법으로 체내에서 정체된 혈의 순환을 도와주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부항요법은 죽은 피를 한쪽으로 모아 몸을 좋아지게는 해줄 뿐, 체내순환을 돕지는 못했다.

유주관힐링요법은 부항과 경락마사지를 동시에 진행함으로써 혈액의 순환을 빠르게 돕는다. 동시에 림프의 흐름도 좋아지게 해 체내에 축적된 노폐물을 몸 밖으로 배출할 수 있도록 해주고 면역의 문제도 해결 할 수 있다.

연구가 거듭될수록 미용과 건강관리가 함께 이루어질 수 있음을 확신하며 미용분야에 머물러 있던 마사지를 건강분야와 접목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람은 유기체로 모든 것이 하나로 이어져있어요. 서로 떨어져있다고 손가락, 눈을 각각 따로 보면 안돼요. 신체 내 장기와 외면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요. 통합적으로 신체를 보는 것이 헬스케어에서 중요해요.”

그녀는 석박사과정을 통해 연구를 거듭한 끝에 국내 최로로 유주관힐링요법으로 박사학위 취득에 성공한다.

(3편에서 계속)

[취재: 윤준식 기자 / 정리: 김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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