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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_이야기(3)] 욕쟁이 탱자씨

이정환 기자 승인 2018.01.16 09:23 의견 0
그날도 외삼촌과 소주 한잔 마시려고 동네 어귀 조그만 실내포장마차에 들렸다. 욕 잘하는 탱자 씨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질 않는다.

 

“씨벌, 뭐가 그리 바쁜 겨 조카, 오늘은 삼촌 안 만나”

 

탱자 씨는 나보다 열 살 위다.

 

전라도 김제가 고향인 그녀는 젊은 나이에 남편과 헤어지고, 중학교에 갓 입학한 아들 하나를 데리고 미아리로 흘러 들어왔다. 나이보다는 젊어 보이고 걸진 입담 때문에 동네에선 꽤나 인기가 많은 실내포장마차 주인이다.

 

“삼촌 저 지금 포장마차에 있어요. 동태찌개에 한잔해요.” 외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외삼촌과 동갑내기인 탱자 씨는 외삼촌과는 친구처럼 격의 없이 지낸다. 그러다 보니 내 호칭도 그녀에겐 조카다.

 

“씨벌, 조카 지금 포장마차라고 했어 아 씨벌, 그렇게 얘길 해도 안 고치네. 포장마차가 아니라 오징어회집이라니까. 얼마나 더 욕을 쳐 먹어야 제대로 말할 겨” 그녀의 걸진 입담이 불쾌한 적은 없다.

 

처음 포차를 열 때 중학교 2학년이던 탱자씨의 아들이 이제는 다 커서 군 입대를 앞두고 있으니 그녀도 미아리사람이 다 됐다.

 

실내포차 문을 빼꼼 열고 외삼촌과 뭔가 얘기를 나누는 욕쟁이 탱자씨 <p class=(사진 : 이정환)" width="550" height="365" /> 실내포차 문을 빼꼼 열고 외삼촌과 뭔가 얘기를 나누는 욕쟁이 탱자씨 (사진 : 이정환)

 

예전 강남이 개발되기 전엔 미아리는 나름대로 중산층이 사는 동네였다. 서울에서 제일 가난하다는 옆 동네 하월곡동도 개발이 거의 다 끝난 지금 이제 미아리는 하류민이 모여 사는 서울에서 몇 안 되는 지역사회이다.

 

이 동네엔 옆집 숟가락, 젓가락 개수까지 알고 지내는 이들이 많다. 탱자 씨네 가게는 테이블 고작 다섯 개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조그만 실내포장마차다. 전라도 출신 탱자 씨는 음식솜씨가 제법 뛰어나서 항상 단골손님들이 꽉 차있다. 처음 이 집에 들렀을 때 어리바리하고 숫기 없던 이 촌 아지매가 이젠 미아리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잡은 걸 보면 웃음이 절로 난다.

 

“씨벌, 조카, 삼촌은 안 오는 겨” 탱자씨는 내가 혼자 소주 마시는 게 심심해 보였는지 괜한 시비를 한번 건다.

 

‘말동무나 해주려는 거겠지.’ 생각하며 대꾸를 하려는데 뒤 테이블이 소란스럽다. 슬며시 고개를 돌려보니 꺽수가 동네건달 몇 명과 소주를 마시고 있다.

 

‘오늘 운세 별로군. 시끄러워 술 맛 나긴 글렀겠는걸...’ 하고 중얼거리며 소주 한 잔을 들이키는데 마침 외삼촌이 들어온다.

 

“아따, 형님 올만이요. 지난번 진돗개 전람회 때 뵙고 처음인갑네.” 꺽수가 호들갑을 떨며 일어나 외삼촌에게 꾸벅 인사를 한다.외삼촌은 형식적으로 "그려"라고 짧게 대꾸만 하고 자리에 앉았다.

 

뒷자리가 또 소란스러워진다.“아, 그러니까 이 씨벌놈아 언제까지 기다리란 말이여. 너 내가 챔피온 출신이란 말 안 했냐 나는 스포츠정신으로 똘똘 뭉친 놈이여. 약속은 칼같이 지키는 놈들을 좋아허니께. 그렇게 알고. 너네 사장한테 전해라잉. 나 꺽수한테 전화 좀 하라고잉!.”

 

오늘 이 집에선 씨벌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외삼촌이 내 귀에 대고 조용히 한마디 하신다. “꺽수저 씨벌놈 때문에 술 맛 떨어지니 우리 딴 데 가서 마시자.”

 

조용히 자리를 뜨는데 탱자 씨가 또 한마디 한다. “아 씨벌, 왜 술을 마시다 말고 꺼지는 겨 저 꺽수 씨벌 인간 때문에 손님 다 놓치네.”

 

오늘 이 집은 씨벌놈들 투성이다.나도 씨벌놈이고, 꺽수도 씨벌놈이고, 꺽수한테 협박당하는 놈도 씨벌놈이고. 미아리 방천시장 골목길 실내포장마차, 아니 탱자 씨네 오징어 회집은 오늘도 씨벌놈들이 술 마신다.

 

“에이 씨벌놈의 세상, 술이나 마셔 조지자.”는 외삼촌의 한 마디에 걸지게 웃으며 외삼촌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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