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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_이야기(24)] 15년 전 어느 날 칼로 물 베기

이정환 기자 승인 2018.02.20 21:29 의견 0
아내와 냉전 중이었다. 냉전을 끝내볼 요량으로 아내에게 점순이네 세꼬시집으로 나오라고 전화를 걸었다.

 

"돈도 많아...그냥 맥주나 사가지고 집으로 와....." 하지만 아내의 목소리에 싫지만은 않은 듯한 뉘앙스가 풍기기에 ."우리 없이 살아도 오늘은 분위기 좀 잡아보자. 생새우 횟감 죽이네. 빨리 나오셔" 라고 재차 말을 꺼냈다.

 

생새우회를 워낙 좋아하는 아내는 못이기는 체 나왔고, 내가 새우껍질을 까주는 대로 새끼 새가 어미 새에게서 먹이를 받아먹듯 날름 받아먹는다.

 

세꼬시집 사장은 덩달아 신이 났는지 서비스로 산낙지도 한 마리 올려주고 새우회를 먹고 난 후 남은 새우대가리는 튀김으로 내왔다.

 

아내는 생새우회와 맥주 한잔에 홍조를 띄며 배시시 웃는다.

(사진: 이정환)

 

기백엄마는 4대가 같이 사는 집의 맏며느리다. 남편을 잘못 선택해서 고생을 무지 한다.

 

기백엄마는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내 모습에 반해서 내게 프러포즈를 했다. 여자가 남자에게 프러포즈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말이다.

 

기백엄마는 가끔 후배들을 만나면 "절대로 노래 잘 부르는 남자랑 결혼 하지 마라"고 말린다.

 

기백엄마와 나는 같은 영화사 <신씨네>에서 근무하다 결혼한 사내 커플이다. 아내는 정말 유능한 재원이었다. 일도 독종이라 부를만큼 잘 해서 웬만한 남자직원들은 그녀의 카리스마에 꼼짝을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평범한 대한민국 아줌마다. 아내의 재능을 잘 살려주지 못하는 나는 늘 미안한 마음이 크다.. 하지만 마음만 그럴 뿐 겉으론 그저 무뚝뚝하기만 하다. 어떨 땐 그런 내가 짜증난다.

 

그래서 오늘은 아내의 기분을 풀어줄 생각으로 점순이네 세꼬시집으로 부른 거다. 마침 아내가 좋아하는 싱싱한 대하가 들어와있고 생새우회와 맥주 몇 잔에 얼굴이 발그랗게 상기된 아내가 배시시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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