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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_이야기(33)] 뉴스킨 코리아

이정환 기자 승인 2018.03.15 11:06 의견 0
“정환아 나 다음 달에 서울로 이사 간다. 좋은 사업 아이템 하나 가져가니 나랑 돈 좀 벌자.”

 

친구 병석이의 쌩뚱맞은 전화를 받았다. 나는 신혼여행을 하와이로 다녀왔고 숙소를 병석이네 집을 이용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말이 없던 병석이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밤늦은 시간에 내게 그런 전화를 건 거다.

 

고등학교 동창인 병석이는 하와이 버밍엄대학에서 컴퓨터학과의 교수다. 그런 좋은 직장과 천국 같은 하와이생활을 버리고 지옥인 서울로 온다니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런데 정말 한 달 뒤에 병석이는 서울로 왔다. 집 정리를 마치고 친구들 중에 제일 먼저 연락한다며 나와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신혼여행 때 신세 진 것도 있고 도대체 어떤 사업이기에 그리 급하게 한국에 왔나 궁금하기도 해서 전화를 받자마자 병석이를 만나러 나갔다. 커피숍으로 들어서니 병석이가 정장차림의 신사 몇 명과 함께 앉아있다. 그 중엔 외국인도 한 명 섞여있었다.

 

“야! 나 그런 거 안 해!”병석이의 설명을 다 듣기도 전에 중간에 말을 자르면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뉴스킨이라는 다단계사업이었던 거다. 영화 일을 하던 나는 이미 뉴스킨을 알고 있었다. 당시에 여배우들 사이에서 꽤나 유행처럼 번지던 화장품제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당시 우리나라에선 다단계사업 때문에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많았고 그 피해사례들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던 시기였다. 보원자석요 사건도 그때 터졌었다. 또한 그 당시에 나는 영화계에서 꽤나 잘 나가던 인물 중에 하나였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신혼여행 신세를 진 병석이한테 미안했지만 도무지 끌리지 않았을 뿐더러 그런 일을 사업이랍시고 교수직과 하와이를 버리고 귀국한 병석이가 측은해서 화가 났다. 그 날 이후 몇 번 더 병석이의 제안을 받았지만 번번히 강경하게 거부를 하니까 어느 때부터 연락이 오질 않았다.

 

“정환아 병석이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대. 고대 안암병원이 장례식장인데 같이 가자.”영석이의 전화를 받았다. 병석이가 한국에 온 지 일년쯤 뒤였을 거다. 영석이와 장례식장엘 들어가니 동창들 여러 명이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자리엔 병석이도 앉아있었다.

 

화이트데이 미아삼거리 먹자골목, 불야성이다.

(사진: 이정환)

 

“병석아 잘 지냈어”“어! 정환아 어서 와. 넌 어때 잘 지냈지”나한테 꽤나 서운했을 텐데도 병석이는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사는 얘기를 나누는데 잠시 자리를 비웠던 병석이가 끼어들며 말을 꺼낸다.“얘들아 니들 사는 건 좀 어떠냐 먹고 살만 하냐”라며 또 뉴스킨 사업 얘기를 꺼내는 거다.“야! 유병석! 너 지금 제 정신이냐 지금 어떤 자리인데 그 얘길 꺼내 네 어머니 장레식장이야!”버럭 소리를 지른 건 아마 영석이다.그렇지 않아도 장례식장에 오는 차 안에서 얼마 전에 병석이를 만나서 뉴스킨 사업을 권유 받았는데 바로 거절했다는 얘길 들었던 차다. 물론 다른 친구들도 관심을 가지질 않고 건성으로 듣고 있었다. 그 자리는 그렇게 끝났다. 일어나서 2차를 가자는 친구의 제안에 다들 그러자며 일어섰다.

 

“그 놈 미친 거 아니야 하와이에서 잘 살다가 뭐 하러 서울에 와서 고생이냐 그리고 하필이면 왠 다단계” 화제는 자연히 병석이 얘기로 시작됐다. 그 날 이후로 병석이와 거의 연락이 두절됐다.

 

그 후로 십 년쯤 후에 그 친구를 우연히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났다.“정환아, 정환이 맞지” 귀에 익은 톤이 굵은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 돌아보니 병석이다“반갑다 병석아. 여긴 웬일이야”“이 건물에 내 사무실이 있어. 잠깐 차 한 잔 마시러 갈까”병석이 사무실을 들어서는데 내부도 꽤 큰 편이고 비서까지 딸려있는 거다. 병석이는 뉴스킨 코리아의 사장이 됐다고 한다. 한달 수입이 얼마 라는 둥 그때 자기랑 같이 시작을 했어야 한다는 둥 그런 얘길 듣다가 다음에 또 만나자며 헤어졌다. 그 후로 몇 번 전화통화를 했던 건 같았는데 아무튼 그러다가 별반 공통 관심사가 없고 병석이가 술을 마시는 편이 아니어선지 그러다가 연락이 또 끝났다.

 

병석이는 동문회에도 거의 나오질 않기 때문에 그 후로 다른 친구들과도 소식도 두절됐다. 그러다가 그렇게 5년이 더 지난 후에 내가 동문회에서 동기회장을 맡게 됐다. 동기회장으로서 동기 주소록을 만들기 위해 뉴스킨코리아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비서가 '일본 출장 중인데 며칠 후에 돌아온다' 기에 오면 꼭 전화를 달라고 부탁을 하고 끊었다. 하지만 연락은 오질 않았다.

 

그 후 서너 달쯤 지났나 핸드폰에 모르는 번호가 찍혔다. 그 번호로 전화를 거니 병석이가 반갑게 전화를 받는다. “정환아 병석이야. 지난 번에 연락 못해서 미안하다. 네가 동기회장이라면서 너 영석이 전화번호 알지 전화번호 좀 알려주라. 삼성동에 올 일 있으면 점심이나 같이 먹자.”

 

며칠 후에 만난 병석이는 몇 년 전의 모습과는 또 달랐다. 새 명함이 나왔다며 건네주는데 완전히 거물급 인사가 되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새로 시작한 일이 보험영업이었는데 명함을 건네주니까 ‘힘들겠구나 내가 보험 하나 가입해주마’ 라며 내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시원스레 말을 꺼내는데 그게 어찌나 고맙던지 모른다.

 

하지만 그 후로 병석이와는 통화가 되질 않았고 병석이의 보험가입 약속은 공수표가 되었다. 가끔 암웨이나 뉴스킨, 하이리빙 등 다단계사업을 하는 분들로부터 사업을 같이 하자는 권유를 받을 때 마다 뉴스킨코리아의 유병석 회장이 생각난다.

 

며칠 전에도 생각이 나서 문자로 안부를 남겼는데 아직까지 답장을 못 받았다.하지만 그 친구 소식은 이제는 공식적으로 뉴스나 뉴스킨을 하는 지인들한테 듣곤 한다.'병석아 네가 자랑스럽다! 하지만 뉴스킨사업은 나와 안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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