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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_이야기(41)] 대복상회

이정환 기자 승인 2018.04.04 13:17 의견 0
1974년까지 미아4동 5번지 자리에는 중동고등학교 축구부의 운동장이 있었다. 지금은 경남아너스빌 아파트 자리다. 운동장 구석에 허름한 축구부원의 숙소가 있었는데 당시 중동고 축구부 형들은 시내에 위치한 중동고등학교에 다니질 않고 미아리에 위치한 축구부 숙소에서 기거하며 하루 종일 운동만 했다.

 

그 즈음에 아버지 어머니는 맞벌이로 쌀집과 잡화점을 겸한 가게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우리집은 가세가 조금씩 피기 시작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슈퍼마켓인 셈이다. 부지런한 아버지는 새벽 5시면 잠에서 깨어 아버지는 경동시장이나 제기동으로 물건을 떼러 가셨고, 어머니는 우리 삼형제 챙기랴 축구부원들의 아침식사 준비하랴 무척이나 바쁜 하루 하루를 보냈다. 가게 문은 새벽 두시나 되어야 닫았다.

 

중동축구부 형들은 어찌나 먹성이 좋은지 한 사람당 삼양라면을 네댓 개씩은 뚝딱 먹어 치웠다. 그 당시 중동고등학교 운동장 부근 지역은 무척 황량하여 간이식당조차 없었고, 그땐 분식집이란 개념도 없던 시절이었는데 그걸 우리 가게가 대신해 주었던 거다.

 

우리 가게 바로 옆엔 경쟁관계인 잡화점이 있었다. 그 잡화점은 부엌이 따로 없어서 라면을 끓여 팔 수도 없었다. 게다가 그 가게 아저씨가 건강하질 못해서 밤에 일찍 문을 닫고 아침 늦게야 문을 열었다. 우리 아버지처럼 부지런하게 여기저기 다니며 좋은 물건을 싸게 사올 입장이 되질 못했다. 자연히 도태될 수 밖에 없었고 동네 사람들이나 축구부 형들은 우리 가게를 단골로 삼을 수 밖에 없었다.

 

중동축구장 옆에는 채석장이 있는 돌산이 있었다, 중동축구장과 더불어 돌산은 동네꼬마들의 놀이터였다. 돌산에서 우리집 삼형제를 큰 외삼촌이 찍어줬다.

(사진: 이정환)

 

중동축구장은 토요일 오후부터는 동네주민에게 개방이 되었다. 토요일 오후엔 주로 동네 꼬마녀석들이나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형들이 축구시합이나 야구경기를 했다. 물론 당시엔 축구나 야구 장비가 형편 없었다. 축구공도 제대로 된 가죽공이 아닌 고무공이 대부분이었고 야구글러브는 아예 없어서 신문지로 글러브를 만들어 사용하곤 했다.

 

중동축구장에서 거의 매주 일요일이면 신나는 축구시합이 열렸다. 일요일의 미아삼거리 잔칫날인 셈인데, 유명한 연예인들이 모여서 하루 종일 축구시합을 했다.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 남진, 코미디언 땅딸이 이기동, 희극배우 구봉서 등 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는 스타들이 우리동네에 살고 있었는데, 그들이 거의 매주 일요일이면 중동축구장에서 축구시합을 한 거다. 경제적인 여유가 많은 그들은 과자나 음식을 잔뜩 준비해 먹고 마시며 시합을 벌였다. 그들이 즐겨 마시던 음료수가 코카콜라인데, 몇 상자를 쌓아두고 마시며 경기를 했었다. 그때 그 코카콜라를 대주던 가게가 우리 가게였다.

 

아버지는 매일 일찍 일어나 제기동이나 청량리를 다니며 코카콜라를 사다가 우리 가게 창고에 쟁여놓으셨다. 즉 매점매석이었던 거다. 그 연예인들은 인심이 후해서 그들의 경기를 구경하며 응원하는 주민이나 꼬마들에게 코카콜라를 나눠주곤 했다. 옆 가게에선 코카콜라를 살 수가 없었지만 우리 가게엔 언제나 코카콜라가 넘쳐났다.

 

우리 가게가 코카콜라 하나로만 돈을 번 건 아니지만 그것이 큰 몫을 한 것은 사실이다. 이 모든 건 아버지 어머니의 부지런함에서 나온 거다. 아버지 어머니가 맞벌이로 일을 시작 한 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여름 즈음에 드디어 우리집이 생겼다.

 

어머니는 처음 장만한 우리집에 나를 데려가서는 “정환아, 저게 우리집이다. 어때 보기 좋지 마당에 목련나무도 예쁘지” 라며 감격스레 눈물을 글썽였다..

 

아마 그때부터 우리집은 미아삼거리 안 동네에서 알부자라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동축구장 자리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미아아파트’ 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콘크리트조립식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쌀집인 우리 가게는 돈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그때 우리 가게 이름이 대복상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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