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공연 리뷰] 모호함이 가진 매력을 한껏 느끼고 싶다면? - 연극 '성'

김혜령 기자 승인 2018.04.11 07:20 의견 0
“대체 어디까지 (극을) 이해한 건지 모르겠어!” 연극이 끝나고 관객석 여기저기에서 웅성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온다. 관객들은 완벽하게 맺어진 결말 대신 찜찜한 기분을 안고 극장을 나선다.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끝나는지 모르는 모호함이 연극 전체를 이끌어 간다. 오히려 어디까지 이해했는지 알 수 없다고 느꼈다면, 이 극과 카프카를 제대로 이해한 셈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대표소설인 <성>에는 카프카 특유의 정체성의 모호함이 잘 녹아있기 때문이다.

 

카프카는 유태인가정에서 태어났다. 카프카는 독일인들에게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유대인들에게는 시온주의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배척받았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그의 모습은 성에 고용되었지만 성으로 들어갈 수 없어 헤매는 ‘K’와 닮았다.

 

눈내리는 배경으로 시작되는 연극. 주인공은 성으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눈보라를 헤치고 헤맨다.

(국립극단 제공)

 

이야기를 중심에서 끌어 가는 인물 ‘K’는 시골에서 올라온 토지측량기사다. 성에 있는 클람 국장에게 고용되어 오게 되었지만, 성에 다가갈 수 없는 이방인 취급을 받게 된다. 성에 고용된 인물이면서도 자신의 직분을 다하지 못하는 ‘K’는 성을 찾아 몇 날 며칠을 헤맨다. 그러나 성으로 들어가는 길은 찾을 수 없고 성 근처 마을에 머물게 된다.

 

성 근처 마을에 사는 인물들 역시 독특한 성격의 인물들이다. 다들 성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성은 아무나 갈 수 없는 공간으로 분리시킨다. 이들은 성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치리만큼 성 내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는 충성하려 노력한다.

 

사람들은 어디가 성인지, 그리고 성에서 무슨 일이 이루어지는지 모르는 채 성에 가고 싶어 한다. 성에 간다는 것은 권력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그 성에 대한 환상만을 가진다.

 

성으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해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아무도 그에게 도움을 주려하지 않는다.

(국립극단 제공)

 

‘K’역시 마을 사람들과 마찬가지다. 마을의 일원으로 소속되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성을 찾아 나서지만 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고통 그 자체다. 아무도 성에 가도록 도와주지 않음에도 끊임없이 성을 향해 다가간다. 성에 가면 안정된 지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희망만을 보며 어둠 속을 헤맨다. 혹 그 성이 허상은 아닌지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연극 <성>의 무대는 강렬했다. 극 초반부터 매섭게 몰아치는 눈보라를 표현한 장치와 파티션을 이용한 성의 공간배치는 무대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거기에 무겁게 깔리는 배경음악은 성의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한껏 살려준다. 모호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펼쳐내는 데는 모든 배우들의 연기 역시 극을 이끌어가는 핵심요소로 작용했다. 특히 박윤희 배우는 내부자도 이방인도 아닌 애매모호한 ‘K’의 역할을 잘 소화해 냈다.

 

연극 <성>에는 다양한 메시지가 혼재되어 있다. 주인공은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성을 찾아 나서지만 성의 존재는 커녕,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다. 유일하게 성의 존재를 알 수 있게 하는 것은 하루에 한 번 들려오는 종소리뿐.

 

성에서 일하는 수석비서관과 연락이 닿은 K. 그러나 성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는 생기지 않고 좌절하게 된다.

(국립극단 제공)

 

이 종소리는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의문을 담고 있다. 어떤 점이, 그리고 어디서부터 실존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 실존한다고 인식하는 무언가가 정말로 실재하는 것일까라는 궁금증을 갖게 한다. 연극을 끝까지 본 관객조차 “과연 성이 실제로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품으며 극장을 나서게 할 정도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점이 카프카가 현대인에게 주는 철학적 사유의 메시지로 다가온다.

 

‘K’가 성을 찾아 헤메듯 우리 역시 돈, 명예, 권력이라는 성을 찾으면 행복할 것이라 여긴다. 그러나 이런 물욕이 채워진다고 해서 인간의 본질적 고독함이 충족되지는 않는다. ‘성’은 이런 본질적인 인간 고독을 꼬집는 작품인지도 모르겠다.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