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김홍희 작가의 “사진 잘 찍는 법”(49)] 말과 사진

김홍희 사진작가 승인 2018.05.07 11:47 의견 0

우리는 상대가 말을 시작했을 때 그가 할 다음 말의 갈래를 이미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외국어를 배울 때 이런 경험을 많이 합니다.

예를 들어 “나, 어제 영숙이 봤다. 내가 어제 영숙이를 서울역”이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합시다. 여러분은 “에서 만났어” 또는 “에서 봤어”라는 하지도 않은 말을 먼저 머릿속에 그리고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의 자체가 영숙이를 보았는데 그 장소가 서울역이라는 것을 전제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의 전체를 듣지 않고도 이해를 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은 ‘구조’라는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은 한국말을 쓰고 미국 사람은 미국말을 쓰며 일본 사람은 일본말을 쓰는 이유는 언어의 구조가 가족과 학교와 사회로부터 아이들의 머릿속에 그대로 이입되기 때문입니다.

김홍희 사진작가 제공

일반적인 미의식도 말과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민족에게는 민족특유의 미의식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가지는 특별한 미의식이 있을 수 있고 이런 것들이 사진에도 영향을 미치지요. 일반적으로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대개 구성이 비슷하거나 사진을 찍는 주제가 비슷한 것이 바로 이런 예입니다.

다른 사람과 다르게 사진을 찍고 싶다면 단순한 미적 수준을 탈피하고 시적인 압축을 통해 운율을 주고 리듬을 심어야 합니다. 사진은 시의 압축과 비슷합니다. 일반인들이 논술적인 이야기가 있는 구성의 사진을 찍을 때, 노련한 사진가는 그 상황을 한 편의 시처럼 압축해서 이미지를 만들어 내지요.

일반적인 미의식을 떠나 보다 높은 미적 감각과 의식의 세계를 표현하는 것이 사진가가 해야 할 일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언어를 가지고 압축과 절제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시처럼, 우리도 사진 이미지를 통해 시의 영역 이상으로 발전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희곡을 쓰기 위해 새로운 언어를 창조해서 썼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진은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새로운 화각과 이미지를 창조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 되겠지요.

미의식이 구조화 되어 뇌에 자리를 잡는다는 이야기는 소통을 위해서는 필요불가결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세상을 만들거나 창작을 하는 데에는 한계를 느낍니다. 하지만 이런 한계 상황 속에서 우리는 돌파구를 찾고 자신만의 세계를 꾸려야 하는 사명 속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