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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희 작가의 “사진 잘 찍는 법”(51)] 촬영 상황과 상황의 선점

김홍희 사진작가 승인 2018.05.09 17:17 의견 0

길거리 스냅촬영을 할 때 자주 발생하는 문제 중 하나가 촬영자와 피촬영자 사이의 트러블입니다. 피 촬영자가 사진을 지우라고 하면 촬영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사진을 지워야 하지요. 별 볼 일없는 사진이면 지워도 되지만 정말 잘 찍힌 사진의 경우 지우기가 너무 아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피 촬영자가 지워달라고 하면 지워야 합니다.

이런 경우 대개 촬영자가 촬영하려는 모습을 피 촬영자가 먼저 본 경우가 많습니다. 촬영자와 피촬영자가 이미 눈이 맞고 난 뒤에 촬영자가 카메라를 들이대면 피 촬영자는 불쾌해하며 사진을 지우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련한 촬영자는 상황을 선점합니다. 촬영을 할 때 결정적인 상황이 오기 전에 상황을 예지하고 카메라를 든 채 기다립니다. 그러면 1~2초 후에 그런 상황과 자연스레 조우하게 됩니다.

김홍희 사진작가 제공

이런 것을 ‘상황 선점’이라고 합니다. 촬영자가 카메라를 들고 어떤 상황을 선점하고 있는 경우에는 자신이 촬영을 방해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진을 지우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촬영자가 카메라를 들고 앞을 보고 있는데 그 화각 속으로 들어 온 피 촬영자는 대개 자신이 촬영을 방해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우라는 요구를 잘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촬영할 때의 팁입니다만, 카메라들 들이대고 촬영이 끝난 뒤 카메라를 바로 내리지 않고 상대가 지나 갈 때까지 카메라 뒤에 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피 촬영자는 ‘자신을 촬영하지 않고 다른 대상을 찍으려 하는구나’ 하고 지나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취재 현장이나 축제 현장에서 촬영하는 경우는 다릅니다. 취재현장에서 사진을 잘 찍는 기자는 항상 상황을 선점 합니다.

유명한 라이프 기자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TV가 나오기 전까지는 라이프지가 세상의 TV 역할을 했습니다. 라이프지 사진가들은 모든 사진가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라이프 기자가 가는 곳 뒤를 따라가 그 기자가 찍는 것을 함께 찍으려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 만큼 사진을 촬영하는 특별한 해석 능력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45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서거 한 후 관련 취재를 위해 사진 가지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을 때 라이프 기자 한 사람이 다른 기자들을 따돌리고 어떤 마을 회관 앞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거기서 ‘고잉 홈(Going Home)'이라는 아코디언 연주를 듣고 흑인 해군 상사를 촬영하게 됩니다.

백인 대통령의 죽음에 흑인 해군 상사 ‘그레이엄 잭슨’은 복받쳐 오르는 슬픔을 어금니를 악물고 참아내며 아코디언을 연주 합니다. 그의 얼굴에는 굵은 눈물이 흘러내리지요. 여러분이 잘 아시는 그 유명한 사진입니다.

이런 사진은 상황의 선점이라고 보다는 ‘해석 능력’의 선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상황의 선점뿐만이 아니라 해석 능력의 월등한 차이가 바로 이런 사진을 만들어 냅니다.

축제 사진의 경우는 또 약간 다릅니다.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은 누구나 들떠 있습니다. 사진을 찍기도 좋고 찍혀도 좋은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는 카메라를 들고 자신이 찍고 싶어 하는 피 촬영자에게 카메라를 보이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촬영이 가능 합니다.

이와 비슷한 경우는 해외에 갔을 경우입니다. 해외에서 자신과 다른 인종의 사람이 카메라를 들이대면 대개 카메라에 대해 호의적입니다. 그렇지만 인종이 다른 사람이 카메라를 들이대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상황을 선점해서 촬영을 해야겠지요.

상황 선점, 해석 능력의 선점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카메라를 손의 연장, 눈의 연장으로 자유자재로 순식간에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는 언제가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카메라에 달려 있는 다이얼과 단추들의 역할을 충분히 숙지하고 눈을 감고도 조작 가능하도록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통상 ‘갑돌이도 이제 투명 인간이 되었다’라는 말을 씁니다. 이 말은 카메라를 들고 찍는데도 상대가 별로 의식을 하지 않는 상태를 말 합니다. 움직임이 고요하고 카메라 파인더를 들여다보는 것과 셔터를 끊어 내리는 것이 순식간에 일어나서 피촬영자가 촬영을 했는지 카메라 파인더만을 촬영자가 들여다보았는지 잘 알지 못하는 상태를 말 합니다.

손의 연장, 눈의 연장이 되면 카메라가 피촬영자의 눈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런 숙련을 여러분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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