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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희 작가의 “사진 잘 찍는 법”(52)] 흉내와 훔치기

김홍희 사진작가 승인 2018.05.10 17:36 의견 0

‘훌륭한 작가는 흉내를 내고 위대한 작가는 훔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피카소가 한 명언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누가 먼저 말 했는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했으니, 흉내를 낸다는 것은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고전적인 과정이라고 말 할 수 있죠.

우리는 모두 흉내를 내거나 모방을 하면서 작품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익힙니다. 이 과정은 누가 뭐라고 해도 중요합니다. 문학에서는 필사, 회화에서는 모사를 합니다.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를 모방하는 행위는 일종의 즐거움이면서 자신의 우상을 파괴하는 가장 중요한 첫걸음입니다.

제가 일본에서 사진을 공부할 때 두 사람의 사진가의 작품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로버트 프랭크’였고 또 한 사람은 ‘윌리엄 클라인’이었습니다. 첫 눈에는 윌리엄 클라인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거칠고 드라마틱하게 다룬 화면은 저를 압도하기에 충분했었지요.

처음에는 윌리엄 클라인에게 매료 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로버트 프랭크가 저를 끌더군요. 'The Americans'를 보면서 그가 하는 말을 알아듣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가 일본 유학시절 초기에 살던 곳은 분쿄쿠(文京區)였습니다.

저는 일본 유학 시절 집 옆 구청 도서관에 찾아가 시간이 날 때마다 사진집과 전문 서적을 읽으면서 일본어를 독파했습니다. 전문 서적의 기가 찬 문구를 보면 대학 노트에 베끼는 일도 잊지 않았습니다. 벌써 30년도 넘는 옛날 일이지만 그 때 베꼈던 사진에 대한 지식들이 저를 지탱하는 중요한 자원이 되었습니다.

사진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를 때 마치 그 지식들은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제가 흡수 했던 기억이 납니다. 로버트 프랑크와 윌리엄 클라인도 책을 통해 알게 되었고 그들이 세계의 사진 흐름을 바꾸게 되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저는 로버트 프랑크의 'The Americans'를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것은 그냥 보아서는 잘 읽히지 않는 아주 어려운 사진 이미지였지요. 속 시원하게 답을 알려주는 선생도 없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오직 전문 서적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전시를 보면서 사진을 읽어내는 눈이 열렸습니다.

김홍희 사진작가 제공

물론 사진을 보는 원리가 깨어날 수 있었던 데에는 그 동안 읽었던 사진전문서적과 사진전과 사진집의 지식이 축적되면서 일어난 일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던 장님과 같던 눈이 한 번에 세상이 밝아지는 경험을 했지요. 그 때 작품이 저희 학교에 일주일에 한 번 특강을 하러 오셨던 일본 최고 선생 중의 한 분이었던 ‘후카세 마사히사(深懶昌久)’의 ‘아버지’라는 작품이었습니다.

한국에도 가끔 까마귀 사진이 등장 하는데 이 분의 까마귀 사진은 이미 오래 전에 발표 되었고, 정말이지 가슴 징 하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후카세 선생의 사진은 정말 징그러울 정도로 우리를 침묵 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이 촬영한 가족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마에 침을 꽃아 우리를 놀라게 했습니다.

저는 로버트 프랑크와 학교에서 강의를 하셨던 모리야마 다이도(森山大道)선생과 후카세 마사히사 선생. 그리고 아라마사 타쿠와 쥬몬지 비신, 그리고 후지와라 신야 등 수많은 마음 속 사진가들을 흉내 내고 모방하고 훔치면서 오늘의 제가 있게 되었습니다.

피카소는 자신의 화풍인 큐비즘을 아프리카에서 훔쳐 왔습니다. 아프리카의 조각들을 보면서 그의 그림에 훔쳐 넣엇죠. 이후 우리가 만나는 피카소의 위대한 작품들이 탄생했습니다.

여러분도 지금은 흉내를 내거나 모방을 통해서 자신의 사진세계를 구축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언젠가 ‘이것이다’라고 생각 되는 것이 있으면 훔쳐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그래야만 자신을 가르친 선생을 넘어, 작가의 길로, 온전히 자신의 길로 들어 설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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