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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골목은살아있다(3)] 소득주도 성장의 거점은 골목, 즉 마을이다

윤준식 기자 승인 2018.05.31 19:08 | 최종 수정 2020.05.21 20:46 의견 0

2회에서 임금문제를 다뤘는데, 때마침 최근 이 문제가 큰 이슈로 불거지고 있다. 쏟아지는 각종 지표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론을 문제제기하고 있고, 며칠 전 국회 본회의에서 실제로는 개악이나 나름없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정안>이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각종 경제지표들은 문재인 정부 1년간 고용사정이 나빠지고, 소상공인의 폐업은 늘고, 심지어 차상위 계층의 소득이 줄었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이번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정안>은 최저임금에 각종 수단과 상여금을 포함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져 노동계의 거센 반발이 일어나고 있다.

현실-1: 항상 어려운 처지에 놓이는 자들만 소외된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벌어진다. 노조에 속한 노동자들은 단결투쟁으로 궐기할 수 있고, 극빈층은 수급을 받으면 된다. 그러나 기초수급조차 받지 못하는 차상위 계층은 어떻게 해야 하나 ‘송파 세모녀 사건’이 그 대표적인 케이스다. 사실 소득주도 성장은 이런 이들을 돕기 위함인데 왜 이렇게 꼬여만 가는 걸까

사실 이는 소득주도 성장론의 문제가 아니다. 현 정부가 ‘임금’에만 초점을 맞춘 게 적절한 해법을 찾지 못한 것이다. 최저임금에 손을 댄 이유가 저소득층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를 돕기 위함인데 정부 스스로가 정책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적용될지 몰랐던 것이다. 임금을 건드려 고용이 위축되는 상황, 법안의 적용이 노동을 우대하기보다 홀대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소득주도 성장론을 채택한 현 정부가 책임감을 갖고 개선해내야 할 할 것이다.

현실-2: 소상공인은 고용을 포기할수록 유리해진다

대부분의 소상공인들은 최저임금 인상에 부응해가며 고용을 유지하려 하기보다는 고용을 줄이고 객단가를 높여 혼자 일하기 적합한 노동강도를 유지하면서 자기자신의 수익률을 지키려한다. 이런 1인기업형 구조조정이 앞으로의 생존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고용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반대로 고용이 창출되는 쪽에는 구직수요자가 몰린다. 그런데 이런 구조에서 노동이 가치있게 취급될 수 있을까 해고해도 얼마든지 노동력을 구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누가 노동과 노동자를 가치있게 취급할 것인가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의 기준이 된 채 강도 높은 노동을 요구당할 뿐인 것이다.

현실-3: 결국 부메랑은 소외된 노동에게 돌아온다

결국엔 사람을 고용하는 쪽의 손을 들어주고 힘을 실어주게 된다. 이번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정안>이 필연적 개악으로 간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일자리를 요구하는 노동이 많고 더 많은 고용을 하겠다는 고용 측의 말을 들어주자면 이런 개악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번 개정안을 주도한 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인데,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한정애 의원에 대한 비난이 일기도 했다. 실은 한정애 의원은 노동전문가로 알려진 인물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노동친화적인 여당 간사가 개정안 추진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노동의 현실을 아는 사람으로서 노동 밖으로 밀려나는 노동을 구제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물론 필자가 한정애 의원에게 직접 물어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 펼쳐지고 있는 상황은 어떤 전문가라도 쉽게 풀어갈 수 없는 상황인 것은 확실하다.

현실-4: 늑대를 피하니 호랑이가 “고용 탈출구가 창업”

한편 5월 29일자로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되었다. 이는 어떤 업종이든 다른 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4차산업혁명에 맞는 업종으로 변신하게 되면 벤처기업으로 인정받는다는 내용이다. 고용과 노동에서의 해법이 나오지 않으니 창업, 특히 기술창업에 희망을 거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정부시책에 따라 동네 작은 가게가 이종 업종과 융합을 시도해 4차산업혁명을 주도할 수 있을까 치킨집들이 배달앱을 개발하고, 부동산이 중개앱을 개발하고, 미용실이 포인트 적립앱을 개발해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결국 이 또한 기술개발을 기반으로 하는 스타트업과 벤처들, 그들만의 리그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정보약자’도 산업세계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는 현실임을 보여주는 셈이다.

정부는 움직일 수 없어도 마을은 움직일 수 있다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독자 여러분의 마음은 우울감에 사로잡힐 것 같다. 우리의 현실에 대한 대안을 거시적인 것에서 찾으려하니 더더욱 답을 내기 어려운 것이다. 서구사회의 발전양상을 보면 거시세계를 미시세계로 축소하며 대안을 찾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정부의 문제는 마을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로비 문화’를 예로 들어 거시세계와 미시세계의 관련성을 설명해 보겠다.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오는 시대는 절대왕정이 발전하는 시대였다. 왕의 권한은 절대적이어서 생사와 이권 모두가 왕의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했다. 그러나 누구도 함부로 왕 앞에 나아갈 수 없었다. 따라서 왕의 앞에 나가기 전 교섭과 조정이 중요했는데, 채널 역할을 해주던게 왕비를 중심으로 한 인간관계였다. 그래서 왕비가 주최하는 파티는 단순한 사교의 장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서로 만나고 타협하는 자리였다.

궁정의 파티문화는 중심귀족들의 저택으로 옮겨졌고, 저택 내 살롱문화로 이어졌다. 그러나 살롱도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19세기로 넘어오며 살롱은 카페로 대체된다. 이에 따라 궁정의 긴 복도를 의미하던 ‘로비’의 개념이 자연스럽게 사람을 만나는 ‘소통채널’을 뜻하는 것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즉 거시사회의 문제를 미시사회에서 해결하고 미시사회에서의 소통이 거시사회를 움직이는 오랜 전통을 형성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 국가와 정부 또한 마을과 마을공동체(거버넌스)라는 미시사회와 밀접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을은 ‘희망’이 되는 것이다.

중랑구 달팽이마을학교가 심는 희망의 씨앗

중랑구에 있는 마을공동체 ‘달팽이마을학교’는 공교육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활동을 수년째 전개하고 있다. 자칫 방과후학교나 대안학교를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달팽이마을학교’가 표방하는 교육은 기성 교육과 완전히 다르다. 지역의 고교생들을 ‘마을교사’로 발굴해 지역의 초등학생들과의 그룹활동을 장려한다. 활동 또한 이색적이다. ‘마을학교’라는 명목으로 만나지만 교육이라 할 수 없는 독특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학습과 놀이를 병행한다.

특기할만한 것은 이들의 교육행위나 교육 프로그램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육의 과정에서 형성되는 ‘인간관계’가 기성 공교육과 사교육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장점이다. 특히 ‘마을학교’ 활동 중 교사로 참여하는 청소년과 학생으로 참여하는 어린이(및 학부모)들의 결연관계가 그 핵심이다.

우선 핵가족시대, 외동아이라는 사회적 틀을 ‘마을학교’, ‘마을교사’라는 시스템이 확대가족의 형태로 탈바꿈해간다. ‘부모-자식’ 관계로 고립되었던 틀에 이웃, 동네 형, 언니, 동네삼촌, 이모들이 결합하고 관계로 확장시키며 사람과 사람을, 골목과 골목을, 나아가 마을전체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나간다.

관계 형성에서 힘을 다져가는 마을공동체

관계형성으로 인한 교육효과도 상당하다. 형에게 배우고 동생에게 가르치는 행동이 구체적인 자기주도학습으로 변화되어 간다. 물론 이는 중랑구 일부 지역에서만 국한된 움직임이지만, 이런 작은 씨앗이 입시제도와 교육제도를 능가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누가 단정할 수 있겠는가

나아가 이런 마을공동체는 소득주도 성장론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있다. 실질소득은 늘리지 못해도, 실질소비를 줄일 수 있으면 소득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마을이 생산과 소비의 공동체가 된다면 극복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 도시서민층이 힘들어하는 문제가 무엇인가 주거문체를 빼고 나면 교육과 육아 문제가 아니가 적어도 마을공동체를 통한 공동육아, 공동교육은 마을공동체의 구성원들의 수고와 비용을 줄여줄 수 있고 그 효과는 상당할 수밖에 없다.

 
마을의 공방문화가 사랑방을 복원할 수 있다

‘달팽이마을학교’의 사례는 매우 독특한 케이스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보다 더 보편적으로 마을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없을까 동네를 거닐다 보면 간혹 공방을 마주치곤 하는데, 이 공방들은 충분히 마을 허브로 발전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

사실 겉보기엔 별거 아닌 것 같아보여도 공방 자체는 어려운 비즈니스다. 공간과 자재와 장비 3가지에 적지않은 자금투자를 요구한다. 이 3가지가 준비되어도 일감이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미리 일감을 확보하지 않으면 비즈니스가 유지되지 않는 구조다.

그러나 마을에는 늘 공방공간에 대한 수요가 있다. 집집마다 부수고 고치고 만들어야 하는 기본적인 수요가 있다. 그러나 각 가정들은 충분히 넓은 작업공간이 없고 좋은 공구나 장비를 보유하기엔 부담이 크다. 무엇보다 전문성을 가지고 작업을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즉, 마을에는 공유공간으로서 공방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만일 마을 속에 공방이 자리 잡을 수 있다면 은퇴 후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파워시니어들에게는 일거리, 일자리를 제공하는 한편, 이들이 마을공동체의 일원으로 활약할 수 있는 구심점이 되어줄 수 있다. 이후 공방은 협업공간이면서도 기술의 전수와 창작이 이루어지는 교육공간, 창작공간으로 거듭나며 세대간의 교량이 되는 한편, 마을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어갈 것이다.

▲위 기사는 로컬트렌드 미디어 <비로컬>과 인터넷신문 <시사N라이프>가 공동기획·취재를 통해 독자 여러분께 제공하는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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