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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희 작가의 “사진 잘 찍는 법”(61)] 작가와 편집자

김홍희 사진작가 승인 2018.06.04 14:55 의견 0

옛날 라이프지를 장식하던 사진가 중에 ‘유진 스미스’라고 있었습니다. 그는 스페인 촌, 시골의사, 슈바이처, 미나마타병 뿐만 아니라 전쟁 사진까지 섭렵한 위대한 사진가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위대한 작품들은 라이프지를 통해 세상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본 작가 중에 ‘미끼 준’이라고 하는 사진가가 있습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사진가 중의 한 사람으로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전쟁터에서 철수 하는 배를 탄 간호사들과 병사들의 행복한 뒷모습을 찍어 전쟁이 끝난 상황을 표현한 사진으로 유명 합니다. 그는 이 사진 때문에 일본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라이프 지에 사진을 실은 적이 있습니다.

그가 쓴 라이프지의 탐방기 중에 유진 스미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도 오래 전에 일본어로 읽은 것이라 기억이 정확하기를 바랍니다. 그가 라이프지 본사에 갔을 때 여러 명의 라이프지 사진가들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중 한 명이 유진 스미스였습니다. 유진 스미스는 일본에서 온 미키 준에게 자신의 사무실에 데리고 가, 자물쇠를 채워 놓은 큰 상자를 열어보여 주었다고 합니다.

(김홍희 작가 제공)

그 상자 안에는 아직 발표되지 않은 작품들이 수두룩하게 있었다고 합니다. 왜 이 좋은 작품을 발표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유진 스미스의 말이 편집자와 마찰이 심해서 라이프지에 싣지 않고 그냥 들고 왔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합니다. 천하의 라이프지에 얼마든지 실을 수 있는 작품들이 그대로 큰 상자 안에서 잠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미키 준씨는 유진 스미스의 작품에 대한 애착과 사진가와 편집자 사이의 필요불가결한 마찰에 대해 언급한 글을 읽었습니다.

편집자는 촬영 현장을 가 본 적이 없고 오직 사진으로만 그 때의 상황을 재현하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진가는 현장감과 그 때의 공기의 느낌과 냄새, 바람의 방향과 세기 등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두 사람 사이에 편집을 위한 사진의 선택에는 당연히 차이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위대한 사진가인 유진 스미스와 내놓으라는 라이프지의 편집자 사이에서 이 간격을 좁히지 못해 유진 스미스의 작품이 발표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모양입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은 독자를 안다고 생각하고, 사진을 찍는 사람은 현장을 안다고 생각하는 이 간격이 잘 좁혀지지 않습니다. 잡지나 저널리즘에서 일 하는 사진가의 숙명이기도 하지요.

이와는 달리 우리에게 ‘노인과 바다’로 잘 알려진 ‘헤밍웨이’의 경우는 다릅니다. 그는 노인과 바다의 60프로는 자신이 쓰고 40프로는 편집자가 썼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편집자가 노인과 바다의 40프로를 썼다는 이야기가 아닌 것은 여러분이 아실 것입니다. 그만큼 편집자는 작가를 키우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헤밍웨이가 말하던 편집자는 ‘맥스 퍼킨스’라고 하는 편집자입니다. 그는 이야기의 흐름과 독자의 바램. 그리면서 예술성과 독창성의 유지를 위한 작가에게 최고의 조언자이자 독자와 작가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헤밍웨이를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도 그의 천재적 업적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헤밍웨이가 "글의 40프로는 ‘맥스 퍼킨스’가 쓴 것"이라 말 할 때도 빙긋이 웃으면서 이 모든 것은 작가의 역량이라고 말 했다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작가에게 편집자는 이렇게 중요 합니다. 편집자는 작가의 제 1 독자이자 조언자입니다. 그는 작가의 독자인 역할과 동시에 명철한 어드바이저이자 선생이기도 합니다. 이런 훌륭한 편집자는 아무나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세기의 작가는 세기의 사진가가 촬영 한다’라고.

당연히 좋은 편집자를 만나려고 하면 실력을 키워야 합니다. 사진판도 예술판도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작품을 준비하고 있을 때, 때에 이르러 이런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의 조언과 어드바이스를 잘 받아들여 자신의 작가 정신과 시대의 흐름을 잘 반죽해 내는 능력의 배양으로 더욱 성장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소수의 작가들이 갤러니 소속 작가로 활동하면서 소위 시쳇말로 피를 빨리는 경험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소속 기한이 끝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작가들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이 피를 빨리는 경험을 넘어서 소속이 끝난 뒤 재성장하기. 이것이야 말로 편집자을 잘 만난 경우가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편집자만 탓할 일은 아니지요. 위대한 편집자 ‘맥스 퍼킨스’의 말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은 헤밍웨이가 썼다고 했으니까요.

피를 빨리고 나락으로 떨어지던 재성장해서 천국으로 직행을 하던 그건 모두 작가의 몫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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