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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을 매개로 벌어지는 세 사람의 모노드라마 - 연극 '킬롤로지'

김혜령 기자 승인 2018.06.07 00:28 의견 0
“이건 게임입니다. 사람들은 게임할 때 자기가 게임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요.”

 

어두운 무대 위의 세 사람은 각각 자신들의 이야기를 읊는다. 관객은 세 편의 모노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떨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는 이내 하나로 연결된다. ‘킬롤로지’. 잔인한 게임을 개발한 개발자와 그 게임으로 인해 인생을 달리하게 된 소년, 그리고 그 소년을 위해 복수를 꿈꾸는 아버지. 세 사람의 이야기는 연극을 보는 내내 관객들의 마음을 심적으로 무겁게 짓누른 채 전개된다.

 

연극 '킬롤로지'의 포스터

(연극열전 제공)

 

폭력적 성향의 게임 <킬롤로지>를 만들어낸 '폴'

 

극중 등장하는 게임 <킬롤로지>는 상대를 죽이는 온라인 게임이다. 상대를 얼마만큼 잔인하게 죽이느냐에 따라 게임의 포인트가 변화한다. 평생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기대가 부담으로 작용해 아버지를 학대하고, 죽이고 싶은 내재적 폭력성이 <킬롤로지>라는 게임을 개발하게 했다.

 

게임을 묘사하는 주인공의 심리는 ‘희열’이라는 감정으로 표현된다. 폴은 이 게임을 통해 부자로 거듭나며 더욱 게임을 잔혹하게 개발한다. 킬롤로지라는 게임의 잔혹성은 ‘폴’을 통해 세밀하게 묘사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 모두 굶주린 채 힘들게 자라온 소년 '데이비'

 

주변에 그를 사랑한 친구들도 없이 외롭게 자라난다. 데이비는 아버지에게 선물받은 강아지를 기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강아지는 이내 사건을 통해 죽임을 당한다. 이후 데이비는 폭력적 성향으로 변화한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킬롤로지>라는 게임과 동일한 방법으로 살해당한다. 평범한 소년이 폭력의 가해자로, 다시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데에는 ‘방관’이라는 사회적 시선이 작용했다.

 

가스점검을 위해 한 남자의 집에 잠입한 중년 남성 '알 란'

 

그 남성은 집에 있는 남자를 살해하기 위해 집에 잠입한다. 아들에게 강아지만 남겨둔 채 무심히 떠난 남자는 장례식장에서 다시 아들과 조우한 중년남성의 이름은 ‘알 란’. 그의 아들은 <킬롤로지>라는 게임에 등장하는 방식과 동일한 방법으로 살해당했다.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게임개발자를 같은 방법으로 살해하려 하는 ‘알 란’. 그의 모습에서는 어쩐지 모를 처연함도 느껴진다. 하지만 자기 아들의 죽음에는 아버지인 그의 ‘방관’이 작용했다.

 

연극 '킬롤로지'의 한 장면

(연극열전 제공)

연극 <킬롤로지>는 폭력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다뤄낸 작품이다. <킬롤로지>에는 선한 사람, 악한사람의 경계가 애매모호하다. 완전한 피해자도, 완전한 가해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폭력이라는 이름 아래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이건 게임입니다. 사람들은 게임할 때 자기가 게임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요.”이런 폴의 대사는 우리를 주목하게 한다.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폭력적인 게임이 사람들의 폭력성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논쟁은 현재도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혹자는 게임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게임이 인간의 가학성을 자극한다고 말한다. 중요한 건 게임이 폭력을 자극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폭력에 노출되는 인간의 모습이다. 자극에 쉽게 노출되는 인간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태도를 가져야할 것인가 연극 <킬롤로지>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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