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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고전에 새로운 색채를 입히다 ? 광대극 ‘리차드 3세’

김혜령 기자 승인 2018.07.05 17:49 의견 0

셰익스피어의 작품 ‘리차드 3세’가 광대극으로 재탄생했다.

‘리차드 3세’는 실존 인물로 장미전쟁 당시 영국의 국왕으로 재위했던 에드워드 4세의 동생이다. 조카들이었던 에드워드 5세와 당시 권력자였던 요크 공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섭정을 하다 조카를 폐위시키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인 폭군이었다.

셰익스피어의 초기작품인 ‘리차드 3세’ 속에는 곳곳에서 폭력성이 묻어난다. 리차드 3세는 자신의 형, 국왕, 자신의 반대세력까지 자신이 왕위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제거하고 왕의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그 권력은 오래가지 않는다. 결국 전쟁에서 패배하고 자신에게 반대하는 세력들이 반기를 들면서 리차드 3세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우스꽝 스러운 분장으로 등장하는 리차드 3세의 등장 첫 모습 (국립극단 제공)

이처럼 원작은 권력을 향한 야욕이 주는 비참함에 대해 묵직한 직구를 관객에게 던진다. 그러나 이번에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난 광대극 ‘리차드 3세’는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리차드 3세가 교활하고 잔인하게 그려진 것은 같지만 희화화된 캐릭터로 등장한다. 얼굴엔 흰 분칠을, 정제된 의관이 아닌 잠옷을 입은 전형적인 피에로의 모습으로 웃음을 전달한다. 그러나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 속에는 냉혹하며 잔인한 칼날이 숨겨져 대사로 표현된다. 이런 이중적인 괴리가 리차드 3세에 대한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극 중에는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그러나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는 단 둘 뿐. “40명을 두 배우가 모두 연기하려면 인물 캐릭터가 겹치고 지루해지지 않을까” 생각을 했지만 기우였다.

두 명의 배우로 우리는 무대에서 수많은 배역을 만난다. (국립극단 제공)

두 배우의 폭넓은 연기력과 무대활용이 40명의 극중 인물들을 만나게 했다. 무대를 넓게 사용하는 배우들의 몸짓과 에너지 때문인지 큰 무대가 굉장히 좁아보일 정도였다.

화려한 무대장치와 소품들도 한 몫을 했다. 풍선이 가득한 방에 흰 풍선을 두어 등장인물을 대신했고, 등장인물을 처형하는 장면에서 풍선을 터뜨리는 등 무거운 극의 이야기에 코믹적 요소를 더했다.

관객들과의 호흡 역시 극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배우가 극의 중간에 관객들을 무대로 부르고, 지명당한 관객은 어안이 벙벙한 채포 무대로 올라가 배우가 주문한 사항들을 해내며 극의 일부가 된다.

바닥을 닦던 배우가 갑자기 세신사로 변해 관객의 몸을 구석구석 닦아주지 않나, 자신에게 충성하지 않는 이들을 숙청하는 잔인한 장면에서는 똑같이 생긴 가면들을 향해 기합을 잔뜩 준 채 콩주머니를 던지게 한다. 뇌물로 사람들의 입을 막겠다고 하는 장면에서는 과자와 젤리를 객석에 던져주는 등 관객들에게 작은 이벤트들을 선사했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사람을 처형하는 장면을 희화화 해
무대에서 보여준다. (국립극단 제공)

셰익스피어의 ‘리차드 3세’는 올해에도 연극계에서 주목받은 작품이다. 올해 초 황정민의 주연작품으로, 지난 6월 초에는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의 연출로 두 번째, 이번 공연이 세 번째다.

특히 2인 광대극이라는 옷을 입은 이번 공연은 셰익스피어가 가진 원작의 힘 외에도 새로운 형식과 연출이라는 다양한 색채가 덧입혀지면서 새롭게 생명력을 보여주는 고전의 소중함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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