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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포용"의 4차 산업혁명 시대(3) 정치가 답이다!(1)

4차 산업혁명과 자치분권 시대(56)

조연호 작가 승인 2018.12.26 11:19 의견 0

답은 정치에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웰빙-포용 사회로 만들 수 있을까 답은 정치에 있다. 많은 저자가 정부의 역할과 정치에 관심 두기를 호소하였다. 그래서 2018 지방선거가 중요하고, 지방분권에 관련한 논의가 중요했다.

정치와 관련한 관심의 회복이 필요하다. 필자가 정치학을 전공해서 정치를 부르짖는 것이 아니다. 가깝게 생각해 볼 때 2017년 촛불 항쟁은 정권을 변화시켰고, 그 덕분에 시급도 오르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었지 않은가

더 근본적으로는 도덕과 윤리를 말한다. 도덕과 윤리는 인간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원칙과 생각을 다루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렬하고 구체화하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한다. 각 부처의 장관들 임명과 관련한 청문회가 살벌하게 진행되고 고성이 오가는 현장이 되는 이유도 정치에 있어서 도덕성이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의 주인공은 ‘사람’이다. 관련 책들이 인간을 핵심에 놓는 이유는 인간의 복지와 행복을 위해 세상은 변화되어야 한다는 사고가 근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혹은 ‘4차 산업혁명은 사람을 지원해야 한다. 이것이 절대적인 가치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당장은 새로운 과학기술이 주인공 대접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구를 위한 것인가 라는 질문에 할 수 있는 답은 ‘사람’밖에 없다.

그리고 여기서 조금 더 확장해서 생각하면, 살아 있는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복리만을 생각했던 인류의 역사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또 한 번의 거대한 과학기술의 혁신을 예측하게 했지만, 기후 문제 등과 같은 어두운 미래도 예상하게 한다.『제6의 물결』에서는 ‘디지털 네이티브’를 넘어서 ‘에코 네이티브’가 나올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누구를 위한 것인가대부분 사람을 위한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사람을 위한 것이다.”

적어도 그렇게 시작했다. 경제적인 생산력을 위한 것, 부를 창출하기 위한 것 등으로 나열할 수도 있겠지만, 이 모든 것은 사람을 위한 것이다. 여기서 사람은 ‘대부분 사람’을 의미한다. 항상 정치인들은 모든 사람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공표한다. 물론, 그 본심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애쓴다. 적어도 선거기간에는 그렇게 한다.

현실은 부익부 빈익빈이 가시적으로 보일 만큼 벌어졌고, 소외 계층은 줄어들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기계와의 전쟁』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무리 민주적이며 다원주의적인 사회라 할지라도 정치적 권력은 경제적 힘에 만들어지곤 한다.’ 즉, 가진 자의 편에서 정치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고령화된 인구, 그리고 생산 활동 인구의 감소로 인한 생산력 저하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인구가 증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생산력을 유지, 증대시킬 방법은 기술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이러한 기술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를 돌봐주는 로봇이 생기는 것은 즐겁지만, 누가 이 로봇을 나에게 공급해 줄 것인가 국가에서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런 복지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국가는 많지 않다. 아예 없을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부자들만의 것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많은 저항이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발생했던 2017 촛불집회는 혁명과도 같았다. 헌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통해 현직 대통령을 물러나게 했다. 그러나 혁명은 체제를 완전히 바꾸는 것인데, 체제는 변함이 없다.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해서 가난한 사람이 살만해지고, 중간계층이 상위계층으로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2017년 2월 닐슨코리아가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 사회 공정성에 대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19 - 29세의 청년층의 ‘계층 역전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19.3%로 전 연령층에서 가장 낮았다고 한다.

대부분 사람이라고 할 때 필자는 경제적 약자, 정치적 약자를 포함한다. 롤스는 그의 대표 저서 『정의론』에서 무지의 베일(the veil of ignorance)을 말했다. 그리고 약자에 대한 배려를 강조했다. 기회의 평등만을 가지고 평등을 말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볼 때 불평등과 같다는 것이다. 필자도 롤스의 철학에 동의한다. 물론, 그의 사고 실험적인 요소의 한계는 인정한다. 어차피 현실은 너무 다양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과 같아서 많은 부분을 제한하지 않고서는 이론을 만들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약자에 대한 배려가 ‘정의(正義)’라고 한 그의 철학은 옳다고 생각한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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