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_이야기(2)] 나쁜 일은 멀리 좋은 일은 가깝게 - 닭 그림

박태숙 작가 | 기사입력 2019/01/11 [11:24]

[민화_이야기(2)] 나쁜 일은 멀리 좋은 일은 가깝게 - 닭 그림

박태숙 작가 | 입력 : 2019/01/11 [11:24]

▲ 계도(鷄圖)     ©박태숙 작가

 

민화에서 닭 그림(계도(鷄圖))은 호랑이 그림만큼이나 인기 있는 소재 중 하나입니다. 닭이 액운을 막아준다고 믿어서인데요.

 

그 믿음의 이유는 중국 고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한나라 때 한영(韓瓔)은 『시경(詩經)』의 해설서 『한시외전(韓詩外傳)』에서 닭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닭은 머리에 관을 썼으니 문(文)이요, 다리에 발톱이 있으니 무(武)요, 적 앞에서는 물러나지 않고 싸우니 용(勇)이요, 모이를 서로 나눠 먹으니 인(仁)이요, 밤을 지키며 때를 어기지 않고 알리니 신(信)이라."
=>韓詩外傳 『故事成語事典』,학원사, 1982. / 정형호.『12띠의 민속과 상징(닭띠)』p.61참조, 국학자료원, 1999.

 

무속신앙에서 닭은 인간의 좋지 못한 운수나 운명을 대신해 죽음으로써 인간을 원상태로 복귀하게 하거나 회생시킨다고 믿었습니다. 닭이 인간을 대신해 죽음을 당하는 것입니다. 닭을 매개로 액운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희생물을 바쳐서 신을 달래는 일종의 타협적 의례로 진행됐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닭 (한국민속신앙사전: 마을신앙 편, 2009. 11. 12, 국립민속박물관)

 

닭 피는 부적을 쓸 때 사용하기도 했는데, 진한 붉은빛을 띠는 닭 피는 정화력, 귀신을 쫓는 축귀력, 생명력을 상징해 부적의 효험이 크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을에 돌림병이 돌 때 대문이나 벽에 닭 피를 바르거나 닭 머리를 걸어두는 풍속이 생겼습니다. 영화나 방송에서 맹수나 무덤에서 나온 잡귀들이 인간들을 해치려다가 수탉이 길게 홰치는 소리를 듣고 놀라 도망가는 장면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면 됩니다.
=>김용권.『관화/민화 백한가지 뜻풀이』 p.60참조, 예서원, 2012.

 

조선시대에도 정초에 액(厄)을 없애고 복(福)을 부르는 벽사적 의도로 닭 그림을 대문이나 집안 곳곳에 붙였습니다.

 

▲ 계도(鷄圖)     © 박태숙 작가

 

또한 닭 그림은 길상적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유일한 출세길은 관직에 올라 이름을 떨치는 것이었는데요. 닭 벼슬은 관직에 오를 때 쓰는 관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닭이 입신출세와 부귀공명을 상징하게 됐습니다. 이런 이유로 닭 그림이 학문과 벼슬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귀천을 막론하고 좋아하는 그림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벼슬을 뜻하는 소재로 닭 벼슬 하나 가지고는 만족이 안 됐던 모양입니다. 민화 중에 닭과 맨드라미를 같이 그린 그림이 있는데요. 맨드라미가 마치 닭 벼슬과 비슷하게 생겨 입신출세의 최고 경지를 뜻하는 관상가관(冠上加冠: 관 위에 관을 더하다)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또 암탉의 경우 매일 알을 낳습니다. 때문에 암탉 그림엔 자손번창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사람들은 닭 울음소리가 적당한 때와 미래를 알려주는 예지력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때문에 희망찬 출발이나 한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불교에서는 닭 울음소리를 무지한 인간에 대한 깨우침의 소리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선인들에게 닭은 단순한 가축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다양한 닭 그림으로 표현됐습니다.

 

 

우림 박태숙은 동대문구에서 우림화실을 운영하고 있는 젊은 민화작가 입니다.
민화로 시작해 동양화, 서양화 등 다양한 분야를 배워나가며 민화에 새로운 색감, 기법 등을 도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시민들이 민화를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민화를 다양한 공예에 접목하는 새로운 시도를 모색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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