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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뮤지컬 디바 ‘펨케 소에텡아’와의 첫 만남 - 이안&펨케 소에텡아 뮤지컬 듀오 콘서트

윤준식 기자 승인 2019.03.26 14:40 | 최종 수정 2019.12.11 12:21 의견 0

지난 3월 22일 KT&G상상마당 대치아트홀에서 한국의 뮤지컬 배우 ‘이안(양정열)’과 독일의 정상급 뮤지컬 배우 ‘펨케 소에텡아’의 뮤지컬 듀오 콘서트가 열렸다.

얼마 전 우연히 팝페라 가수 이안(양정열)이 독일의 정상급 뮤지컬 가수와 특별한 무대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내심 큰 기대를 갖던 공연이었다. 단 한 번의 공연이기에 미리 일정을 조정해 관람했고, 나의 선택에 만족했다.

▲ 뮤지컬 배우 이안(양정열)과 뮤지컬 배우 펨케 소에텡아 ⓒ준씨어터

¶ 나와 이안의 첫 만남

필자가 이안의 공연을 직접 본 건 2016년 제작된 기독교 창작뮤지컬 <갈릴리로 가요>였다.

뮤지컬 <갈릴리로 가요>는 당시 기독교인들이 성탄절과 함께 큰 의미를 두고 있는 부활절을 맞아 기획된 대작이었다. 유명 탤런트인 한인수를 비롯, 기독교계에서는 높은 인기와 인지도를 가진 중견배우들이 캐스팅되었던 기대작이었다.

그러나 뮤지컬 넘버들이 지나치게 대중적인데만 치우쳐 아쉬움이 많았다. 캐스팅에 전문 뮤지컬 배우가 없어 난도가 높은 넘버를 소화할 배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군계일학(群鷄一鶴)으로 등장한 배우가 바로 ‘요한’ 역의 이안이었다. 극중 예수의 제자들의 고뇌와 감정을 전달하는 장면의 넘버였고 극의 흐름을 위해서도 중요한 장면이었다. 이 장면이 나에게 이안을 각인시켜 주었다.

▲ 공연 내내 넘치는 카리스마를 발산하면서도 부드러운 유머를 잃지 않았던 이안 ⓒ 준씨어터 제공

¶ 크로스오버를 위한 이안의 발걸음

그후 조금 시간이 지나 독일 쟁어아카데미와 함께하는 마스터클래스 소식을 기사화하며 양정열을 더욱 자세히 알게 되었다. (시사N라이프 기사 “[미니인터뷰] 준씨어터 양정열 대표 독일 쟁어아카데미 교수초청 마스터클래스 개최” http://sisa-n.com/13115)

이안은 모스크바예술종합학교 대학원, 로마AIDM아카데미아를 졸업한 후 불가리아 국제콩쿠르에서 입상한 경력을 갖고 있다. 국내에서 다수의 오페라에 출연하고 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며 성악가로서의 인지도가 높아졌지만, 클래식에만 머물지 않고 크로스오버를 시도하고자 했던 그의 열정은 뮤지컬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그 결과 2001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 ‘라울’역으로 데뷔한다. 이후 <지킬앤하이드>, <프린세스 낙랑>, <정조대왕>, <싱잉인더레인>, <겨울이야기>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관록있는 뮤지컬 배우로 자리매김한다.

크로스오버를 위한 발걸음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한국 최초의 남성 팝페라 그룹 <라 스페란자>를 결성했고 이때부터 ‘이안’이라는 예명을 함께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2019년 봄을 맞아 독일을 대표하는 뮤지컬 디바 ‘펨케 소에텡아’를 초청해 특별한 듀오 콘서트를 열게되었다.

¶ 독일의 정상급 뮤지컬 디바 ‘펨케 소에텡아’

한국의 뮤지컬 팬에게는 생소한 배우인 ‘펨케 소에텡아(Femke Soetenga)’. 이름을 발음하는 것 자체도 익숙지 않다. 로마자 표기법 대로 읽으면 ‘소에텡아’지만, 실제로는 ‘쉐텡아’에 가까운 발음이다.

‘펨케 소에텡아’.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알고 보면 독일의 정상급 뮤지컬 배우다.

독일 슈타인하임 출신으로 네덜란드에서 성장한 후 다시 독일로 돌아와 배우 생활을 하고 있다.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미스 사이공>, <캣츠>, <레미제라블>, <헤어>의 앙상블로 무대에 서기 시작해 <선셋대로>의 베티역으로 첫 주연을 맡았고 지금은 <지킬 앤 하이드>, <삼총사>, <체스>, <크레이지 포 유>, <지저스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레베카>, <드라큘라> 등 대작 뮤지컬의 주연을 맡고 있다.

내한은 이번이 처음으로, 함부르크 스테이지스쿨 초빙교수 등 독일뮤지컬 계와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는 이안과의 인연으로 오게 되었다. 정상급 배우답게 빡빡한 공연스케줄이 계속되고 있고, 현재도 독일 메클렌부르크 슈베린 시극장에서 <지킬 앤 하이드>의 루시 역으로 공연중지만 이안과 맺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출연스케줄을 조정해 한국에 왔다.

단 한 번의 공연으로 판단해선 안 되겠지만, 한국 관객과의 첫 만남은 경이로움에 가까웠다. 전반적으로 단촐한 무대였지만, 그녀가 연기하는 뮤지컬의 하이라이트를 옮겨온 듯한 환상 속에 머물게 했기 때문이다.

▲ 이안과 펨케 소에텡아의 듀엣 ⓒ 준씨어터 제공씨

¶ 이안을 위한 첫 무대 <오페라의 유령>

무대를 연 사람은 최근 예능 프로그램 <너의 목보리가 보여>에서 ‘유학파 이태리 돌고래’로 출연하기도 했던 소프라노 유성녀였다. 공연의 호스트인 이안에게 헌정하듯, 그가 처음 ‘라울’역으로 출연한 작품인 <오페라의 유령>의 ‘Think of me’로 시작했다. 연주 후반 ‘라울’의 목소리로 자연스럽게 이안이 무대에 올랐고 이어 듀엣곡으로 ‘The Phantom of the Opera’, 이안의 솔로로 팬텀의 아리아 ‘The Music of the Night’로 공연은 서서히 달아올랐다.

이밖에도 이안은 <맨 오브 라만차>의 ‘The Impossible Dream’, <지킬 앤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 <레미제라블>의 ‘Bring him Home’, <노트르담 드 파리>의 ‘대성당들의 시대’를 독창으로 선보였다. 특유의 바리톤 음색은 클라이막스를 힘있게 질주하며 관객들을 흥분시켰고 이안만의 개성있는 몸짓과 연기는 관객들을 무대로 인도했다.

무엇보다 공연의 호스트로서 유머러스하면서도 격조높은 이안의 진행이 돋보였으며, 듀엣곡을 할 때마다 상대를 배려하는 가창과 무대 매너를 선보여 부드러운 분위기를 이끌었다.

¶ 부드럽고 친숙한 목소리의 ‘펨케 소에텡아’

‘펨케 소에텡아(이하 펨케)’의 첫 곡은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I Don’t Know How to Love Him’이었다. 바로 전 무대에서 이안이 <오페라의 유령>의 ‘The Music of the Night’으로 굵직한 선을 그은 직후라 ‘I Don’t Know How to Love Him’의 차분한 흐름은 잠깐 들뜬 마음 한 쪽을 잡으며 잔잔한 감동으로 이끌었다.

‘I Don’t Know How to Love Him’를 감상하는 동안 펨케의 목소리가 어딘가 친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기억의 저편을 더듬어보니 올드 팝 매니아라면 잘 알고 있을 <카펜터스>의 카렌 카펜터의 부드러운 음색과 닮았다. 객석을 살짝 둘러보니 역시나 장년층 관객들이 유난히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자신의 첫 곡을 마친 펨케.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와 미소로 한국 관객을 마주했다. 통역을 통해 이번 공연은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컬 넘버들로 선곡했다면서 자신이 불렀던 곡과 부를 곡에 대해 친절히 설명했다. 이어 두 번째 곡을 선보였는데, 여기서 공연의 대반전이 일어났다.

▲ 펨케 소에텡아가 출연한 다양한 뮤지컬 작품들 ⓒ 펨케 소에텡아 공식홈페이지

¶ 무대를 장악한 디바, 한국 관객과의 소통하는 공연

두 번째 곡으로 뮤지컬 <아이다>의 넘버 ‘My Strongest Suit’를 가벼운 율동과 함께 부르다가 무대를 좌우로 누비기 시작했다. 곡 자체가 지닌 에너지도 있었지만, 만면에 미소를 띄고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움직임에 객석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박수로 시작했지만, 점점 엉덩이와 어깨를 들썩였다. 급기야 앞줄에 앉아계시던 초로의 여성관객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를 놓칠세라 펨케는 손을 뻗어 흥을 돋웠고, 자연스럽게 무대로 불러내 함께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필자의 기억에 과장이 있었을 수 있지만, 이 한 곡으로 한국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2분밖에 들지 않았고, 필자는 이 순간 팬이 되어 버렸다.

공연이 흘러갈수록 펨케의 매력은 더욱 돋보였다. 영어 가사가 아닌 자신의 모국어인 독일어 가사로 불러서일까, 더욱 호소력있는 표정과 목소리를 만날 수 있었다.

¶ 가벼운 퍼포먼스와 큰 감동

뮤지컬 <에비타>의 넘버 ‘Don’t Cry for Me Argentina’로 재등장할 때는 전주가 흐르는 동안 무대 뒤쪽에 서있다 무대 앞으로 걸어 나오는 자연스런 퍼포먼스로 노래를 시작했다. 노래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관객 모두 숨을 죽였고, 에바 페론으로 분한 펨케에게 빠져들었다. 후반간주부분에서 돌아 선 그녀의 뒷모습, 후주를 마칠 때까지 두 팔을 들어 하늘을 응시하는 장면을 바라보며 객석엔 정적이 감돌았고 관객 모두는 누구도 뭐라 말할 수 없는 감동을 공유했다.

이런 감동은 펨케의 마지막 독창인 뮤지컬 <캣츠>의 넘버 ‘Memory’에서도 또 한 번 재현되었다. 이안이 펨케를 부르자 한 마리 고양이처럼 얼굴만 쏙 내놓으며 유머러스하게 등장해 사뿐사뿐 맨발로 나와 노래를 시작했다. 점점 곡이 진행되는 동안 그녀의 눈동자가 아주 조금씩 빛나기 시작했고 클라이막스 부분에선 눈물을 흘리며 열창했다. 누구보다 음악을 사랑하고 무대에 대한 열정을 가진 그녀를 발견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 공연을 다시 보고픈 아쉬움이...

솔로로는 다섯 곡, 이안과의 듀엣으로는 두 곡 뿐인 아쉬운 공연이었고, 그녀의 진면목을 보기에는 좁은 무대였다는 생각이다. 여러 차례 “감사합니다”란 한국말로 관객들에게 말을 건네고, 객석 뒷부분까지 넘어가 자신의 사인이 담긴 그림엽서를 전하는 팬서비스로 소통하는 모습에서 그녀와 한국과의 첫 만남은 서로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심을 내자면 한국의 뮤지컬 무대에서 펨케를 만날 수 있으면 하는 바램도 생겼다.

펨케 소에텡아의 무대를 보지못한 독자 여러분을 위해 유튜브에 올라온 공연 장면을 아래에서 소개한다. 이번 공연은 기독교 음악 케이블채널인 CMTV를 통해 녹화방송으로 볼 수 있다고 하니 관심있는 분들은 CMTV를 지켜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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