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는 독일 통일(26)] 나치의 민족사회주의, 2차세계대전 불러일으키다

칼럼니스트 취송 | 기사입력 2019/05/06 [12:00]

[다시보는 독일 통일(26)] 나치의 민족사회주의, 2차세계대전 불러일으키다

칼럼니스트 취송 | 입력 : 2019/05/06 [12:00]

볼셰비키 혁명 후의 소련은 모든 면에서 취약한 혁명정부의 안정이 가장 시급한 과제였기 때문에 국제 문제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혁명 후 자본주의 국가들의 2년 여에 걸친 간섭전쟁과 같이 더 이상 자본주의 열강에 의한 무력 간섭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더구나 1924년 레닌 사후 권력을 장악한 스탈린은 트로츠키 등의 세계혁명론을 버리고 1국 사회주의, 결국 소련의 자립과 안전보장을 대내·외 국가정책의 기본으로 삼았다. 서부의 폴란드나 발칸반도의 그렇고 그런 국가의 창설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이들은 소련의 서남부 지역에 완충지대를 구축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1938년 3월 나치 정권은 오스트리아를 병합하였다. 독일민족의 생활권(Levensraum) 요구의 첫번째 성과였다. 이후 나치 정권은 독일계 주민이 다수인 체코슬로바키아 주데텐란트 할양을 요구하였다. 히틀러가 합병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함으로써 유럽에서는 전쟁 위험이 고조하였다.

 

결국 1938년 9월 24일 히틀러, 네빌 체임벌린 영국총리, 달라디에 프랑스 외무장관, 무솔리니 이태리 총통이 뮌헨에서 회담을 가졌다. 9월 28일 소위 뮌헨협정이 체결되고 주데텐에서 체코슬로바키아 군이 철수하고 독일군이 이 지역을 접수하였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주권 침해는 물론이고 국제법 위반이었다. 체임벌린은 확실한 시한폭탄에 불을 부쳐 놓고 런던으로 돌아와서 “이제 유럽에 전쟁은 없다”고 선언하였다.

 

이 과정에서 히틀러는 선거제도를 활용하여 독일의 허위 민족의식을 부채질하였다. 오스트리아와의 합병과 라인란트, 주데텐 병합은 말하자면 독일 민족의 이름으로 실시된 것이다. 1933년 11월 총선 이후 선거는 여타 모든 정당이 해산되고 나치당에 대한 일종의 찬반투표로 변질되었다.

 

1936년 3월 29일에 실시된 총선은 라인란트 비무장지대 합병에 대한 찬반을 묻는 투표와 함께 치러졌고, 1938년 4월에 실시된 총선은 오스트리아 합병, 주데텐 병합에 관한 국민투표와 함께 치러졌다. 이에 앞서 3월에 있었던 나치당 대회에서 히틀러는 주데텐의 독일계 주민에 대한 체코슬로바키아의 억압 중지를 요구하였다. 1936년 선거에서 나치당 찬성 98.8%, 1938년 총선에서는 나치당 득표 99.01%, 오스트리아 합병 찬성 99.73%, 주데텐 합병 찬성 98.68%였다.

 

1938년은 이후 독일과 유럽의 평화체제에서 중요한 시점이 된다. 1945년 2차대전 종전 후 그리고 1970년대 동방정책과 1990년 독일 통일에서 소련,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와의 국경 문제, 배상 문제와 단독 대표성 및 독일 국적 문제와 관련된 독일의 국가의 계속성 문제 등은 국경변경이 없던 1937년 12월 31일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이후 1939년 단치히 합병과 폴란드 침공에 이어 유럽의 분쟁이 2차대전으로 확대되면서 나치의 범죄적 전쟁은 역사에 유례가 없는 참혹한 결과를 인류에 남기고 1945년 5월 8일 독일의 무조건 항복으로 종결되었다.

 

*글쓴이: 취송(翠松) / 재야학자. 독일사회와 정치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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