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민_이야기(37)] 또 한 번의 사직

칼럼니스트 봉달 | 기사입력 2019/05/12 [16:34]

[미국이민_이야기(37)] 또 한 번의 사직

칼럼니스트 봉달 | 입력 : 2019/05/12 [16:34]

2년 정도 그렇게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본사에서 이상한 얘기가 들려왔다. 사장이 AP 갖고 장난을 치면서 돈을 빼돌리고 회사를 빈껍데기 나아가 빚더미로 만들고 있다는 거다. 내가 사부로 모시던 J부장은 낌새를 채고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한다고 했다.

 

안 좋은 소식이 계속됐지만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내가 담당하던 시카고 지점은 내 월급보다 적으면 3~4배, 많으면 10배까지 수익이 남았기 때문이다. 일도 끊이지 않고 계속 들어왔다. 나는 내 할 일이나 잘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본사 사장님으로부터 이메일이 와 시카고 지점을 닫는다고 했다. 수익은 계속 나고 있었고 내가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만나서 얘기는 못할망정 전화 한 통 없이 이메일로 통지하는 건 납득하기 어려웠다. 내가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고 메시지를 남겼으나 회신도 없었다.

 

나중 일이지만 회사는 그로부터 얼마 후 한국 부산 소재 중대형 포워딩 업체에 인수됐다. 꽤 비싸게 팔아넘겼는데 막상 인수해보니 껍데기에 빚 밖에 없어 인수자가 사기를 당했다며 길길 뛰었다고 한다. 시카고 지점의 업무는 본사 사장과 관련이 있는 이쪽 다른 포워딩 회사가 담당하게 됐는데 내 추측이지만 그것도 아마 그냥 넘긴 것 같진 않다.

 

아닌 밤중에 날벼락 식으로 직장이 없어졌으니 실업 급여를 타먹게 됐다. 이것저것 서류를 준비하고 있던 중 소식을 들은 다른 포워딩 업체에서 연락을 받았다. 전에 있던 회사에서도 다시 오라는 제의가 있었지만 짐쟁이 업무의 꽃, 컨테이너 짜기를 해보고 싶어 사정을 말씀 드리고 거절했다.

 

며칠 쉬지도 못하고 바로 새 회사에 출근해 업무 인수인계를 했다. 일 자체는 별 게 아닌데 직원들간 업무의 경계가 불분명하게 겹쳐있었다. 또 짐을 하나라도 더 받으려고 밤늦게까지 기다려 컨테이너를 채웠다. 다른 회사들은 보통 선사 cutoff 전날 정오까지 물건을 받고 컨테이너를 짜는데 이 회사는 오후 6시까지 기다렸다 일을 시작하는 식이다.

 

컨테이너 작업 자체도 완벽주의 무슨 집을 짓듯 해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담당자는 이르면 오후 9시 늦으면 10시 퇴근을 해야 했다. 낮동안엔 뭘 하나 봤더니 자기 일은 안 하고 다른 직원들 일도 해주며 부산하게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자부심이 굉장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열심히 짐을 모아 컨테이너를 몇 개씩 짜게 됐다며 나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거다.

 

아내가 주중 3일 정도는 밤에 일을 해서 나 혼자 애들을 봐야 했기 때문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다. 사내 다른 직원들도 이 담당자가 없는 데서는 우려 반 불만 반 말들이 많았다. 자기 혼자 밤늦게 일을 하는 것도 회사 방침에 어긋나는데다 컨테이너를 직접 짜는 라틴계 직원이 착해서 그렇지 다른 사람 같았음 벌써 오버타임 청구에 회사에 소송을 걸었을 수도 있다는 거다.

 

1주일만에 결심을 하고 회사 지점장에게 사의를 표했다. 지점장은 자기도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실적이 줄어도 좋으니 그런 식으로 일을 하지 말라고 전에도 수차례 얘기했고, 내가 인수인계를 하면 업무를 정상화하겠으니 남아달라고 했다. 그 담당자가 간섭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다짐도 받았다.

 

좀 망설여졌으나 그래도 떠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들어와 업무를 제시간에 끝내 매출이 떨어지면 모양새가 좋지 않을 뿐더러 직급이 있는 담당자 입장에서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듯 일시에 변화를 주는 것도 불쾌하지 않을까 해서다. 만류를 고사하고 사표를 제출했다.

 

*글쓴이: 봉달(필명)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한국에서 상사 근무 후 도미, 시카고에서 신문기자 생활. 물류업체 취업 후 관세사 자격증 따고 현재 캐터필러 기차사업부 Progress Rail의 통관부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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