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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는 보수일까?

4차 산업혁명 시대와 한국 교회(17)

조연호 작가 승인 2019.06.20 13:45 의견 0

한국 교회는 보수일까

한국 교회 이미지는 보수다. 실제로 교회는 보수적이다. 그런데 현재 사용하는 보수의 의미는 진정한 보수가 아니라 ‘폐쇄’, ‘수구’, ‘꼰대’의 다른 말이다.

과연 보수의 의미를 이렇게 사용하는 것이 옳을까 지난 대선에 진짜 보수 논쟁을 시작하면서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그 운명은 대선 이후 ‘바른미래당’에 통합됐다. 정치권에서 논하는 ‘보수’의 의미는 그저 정치공학적이고 야합 수준임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미국에서도 보수와 관련한 이미지는 좋지 않다. 그런데도 새로운 미국 대통령은 공화당에서 선출됐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등과 같은 베스트셀러를 저술한 레이코프는 ‘프레임’이라는 개념을 활용해서 보수와 진보를 하나의 틀로 정의하고 보수를 ‘엄격한 아버지’, 진보를 ‘자상한 아버지’로 이미지화했다. 저자에 동의하는 지지자들은 당연히 고개를 끄덕일만한 주장이고 분석이지만, 반대편에서는 편견이라고 생각하고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보수 이미지를 강하고 억압하는 이미지로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레이코프가 만들어 낸 두 이미지를 일반화할 수 있는지도 검증하지 않은 상태다.

“한국의 보수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가 핵심 질문이다. 그리고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보수의 역사를 훑어보기로 했다. 단, 서양의 역사적 기원을 간략하게 훑어보면서, 보수의 의미를 생각하기로 했다.

현재 맡을 수 있는 보수(保守)의 향기

‘보수’의 사전적 의미는 ‘보전하여 지킴’이다. 흔히, 지킨다는 표현을 사용하면, 가치 있는 것을 지킨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하지만 가치는 시공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시공간에 따라 지켜야 할 대상도 다르다.

예를 들어 조선 시대의 왕은 곧 국가였고, 전부였지만 대한제국이 아닌, 대한민국으로 새롭게 탄생한 우리나라는 왕이 존재할 수 없고, 왕조가 추구했던 가치를 지킬 이유도 없다.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을 국부(國父)로 여기면서 숭배했었던 과거도 있고,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할 당시 깊은 상실감에 빠져 눈물 흘린 국민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자는 국민의 거센 저항으로 물러났고 후자는 공과(功過)에 대한 논쟁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후로도 정치적 권위주의는 오랜 기간 이어졌다. 하지만 그 수준은 약해져서 과거 왕처럼 절대 권력을 행사하기 힘들었다. 아무리 극단적 보수 주의를 옹호하는 사람이더라도 현재 정치체제에 왕을 옹립하자는 사람은 없으며, 대통령 권한의 증대를 옹호하는 세력도 별로 없다.

하지만 모든 현상에는 예외가 있는데(나심 탈레브와 같은 사람은 『블랙 스완』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대구에서 탄생한 대한애국당의 출마자들은 전 박근혜 대통령을 대한민국과 등치 시키는 ‘웃픈’ 현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실제로 선거 기간 동안 전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이라고 하면서 선거 운동하기도 했고, 현재까지도 주요 거리에서 무죄 석방 서명을 받고 있다.

그래서일까 한국에서 보수를 떠올리면 거부감이 느껴진다. ‘수구꼴통’과 ‘보수’가 거의 같은 이미지로 인식되는데, 진보를 빨갱이로 인식하는 논리와 유사하다. 그러나 원래‘보수’의 의미와 뜻은 한국에서 느끼는 파리지옥과 같은 이미지가 아니었고, 변화를 무조건 거부하는 폐쇄적인 의미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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