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울 강남권엔 로컬이 없다고 여긴다. 많은 기업이 밀집한 빌딩가와 높은 임대료의 상가를 비집고 새로운 로컬이라 부를만한 골목길을 찾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테헤란로의 유일한 녹지대인 선정릉을 끼고 빌딩 숲 사이에 숨겨진 3층짜리 구옥을 구해 리모델링해 강남의 로컬을 개척하고 있는 로컬크리에이터가 있다. 마침 <고독한 미식가-한국출장편>에서 주인공 ‘고로’씨가 푸드트럭에서 떡볶이를 먹던 그 골목이기도 하다. 멀티 페르소나의 시대에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 가치를 실현하는 공간 <알트탭스페이스>를 운영하고 있는 변소정 대표를 만났다.
<알트탭스페이스> 변소정 대표 (beLocal 제공)
▶<알트탭스페이스>이라는 회사명이 특이하다.
☞알트탭스페이스 변소정 대표: PC 화면 전환할 때 알트(Alt)와 탭(Tab) 키를 사용하는 걸 빗대어서 한 사람이 가진 여러 모습을 이 공간에서 다양하게 전환할 수 있다는 걸 표현했다. 우리가 지향하는 건 다양한 문화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건데 우리가 생각하는 방향을 하나만 정해두면 거기에 갇히지 않을까 생각해서 공간에 대한 콘셉트를 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름에도 다양한 활동이 이뤄지는 전환의 공간의 의미를 담았다.
우리가 운영하는 공간은 여러 개로 나뉘어 있다. 한 곳은 촬영, 한 곳은 강연, 한 곳은 파티... 이런 식으로 다양한 일이 한 주택 안에서 동시에 벌어진다. 찾아온 사람에 따라 공간의 성질이 바뀐다는 의미다. 또 우리 공간의 채광이 정말 좋아서 채광의 느낌에 따라 색이 매 시간마다 바뀌는 게 매력이다. 그래서 마치 다른 화면처럼 모습이 계속 바뀐다는 의미도 담았다.
각 층마다 다른 컨셉으로 펼쳐지는 <알트탭스페이스> 공간들 (beLocal 제공)
각 층마다 다른 컨셉으로 펼쳐지는 <알트탭스페이스> 공간들 (beLocal 제공)
각 층마다 다른 컨셉으로 펼쳐지는 <알트탭스페이스> 공간들 (beLocal 제공)
▶IT 업체에서 근무하다가 창업을 하게 되었다고 들었다. 창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알트탭스페이스 변소정 대표: 평소에 공간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건축이나 공간이 가진 권력과 매력을 좋아해 학습하고 즐기는 편이다 보니 어느 순간 공간을 운영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스몰 비즈니스 형태로 에어비앤비도 운영해 보고 작은 공간도 맡아 조금씩 운영해보다 회사를 그만두고 <알트탭스페이스>를 창업하게 됐다.
공간 운영이 IT와 달랐던 점은 고객을 바로 만난다는 점이다. IT에서는 사람을 데이터로 보고 평가하는 일들이 많다. 예를 들어 ‘20대 여성’을 놓고 비즈니스를 진행한다면 사람에 대한 고찰보다 데이터로 규정된 ‘20대 여성’의 특징이른 걸로 뭉뚱그려 사람을 판단하게 되는 경험을 하곤 했는데 그게 비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실제로 사람을 대면하고 공간을 꾸미고 운영하는 아날로그한 비즈니스가 좋아 매우 하고 싶었다.
빌딩숲 사이의 숨겨진 골목길에서 강남 로컬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beLocal 제공)
<알트탭스페이스>가 자리잡은 골목 어귀에도 주택을 개조한 특색있는 가게가 들어서 있다. (beLocal 제공)
바깥에서 본 <알트탭스페이스>. 평범한 빌라 한 동으로 보인다. (beLocal 제공)
▶<알트탭스페이스> 공간을 돌아보니 지하, 1층, 2층의 콘셉트가 모두 다르다. 보통 하나의 콘셉트를 딱 정해 특징을 준 공간들이 대부분이라 애매한 느낌이 드는데, 한편으론 그게 <알트탭>의 특징일 것 같다. 이런 공간 콘셉트를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알트탭스페이스 변소정 대표: 사실 처음에는 강남권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하려고 했었다. 강남에서 조금 넓은 공간을 찾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독립된 주택을 보게 됐는데, 이 주택이 강북에 있었다면 특별할 것 없겠지만 강남 빌딩 한가운데 있다 보니 새롭게 보였다. 또한 워낙 낡은 주택이라 다른 곳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계약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들어와 보니 생각보다 심각했다. 거의 폐가수준이어서 건물의 껍데기만 남기고 모든 걸 새로 해야 했다. 뭐랄까, 늙고 아픈 유기견을 떠안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시작했던 게스트하우스 공사가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공사가 엉망이 됐네, 어떡하지?” 싶었다. 결국 게스트하우스로의 형태로는 도저히 살릴 수가 없더라. 공간의 모든 것을 뜯어내고 보니 건물 자체가 규격화 돼 있지 않았다. 이 벽돌 쌓인 것도 울퉁불퉁하다고 해야 할까 조금씩 못생기고 낡은 부분들이 있는데 이게 오히려 매력으로 느껴졌다. 이런 느낌을 살려 자유로운 공간으로 재창조했다.
강남에 이런 공간이 없어서 그런지 촬영 장소를 필요로 하는 고객들이 대부분이고 재방문율이 정말 높다. 주택을 개조하면서 그때그때 튀어나오는 문제들을 해결하다보니 조금씩 부족하고 완벽하지 않은 것들이 쌓여서 <알트탭스페이스>라는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게 됐다.
나만의 은신처라는 느낌을 주는 <알트탭스페이스>의 지하공간 (beLocal 제공)
지하 공간으로 진입하는 건물 사이의 작은 샛길이 신비감을 연출한다. (beLocal 제공)
계단으로 이어지는 작은 복도. 벽돌이 돌출된 벽면이 특징이다. (beLocal 제공)
▶공간 운영 외에 포스트 코로나에 적합한 사이드 비즈니스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알트탭스페이스 변소정 대표: <알트탭클린>이라는 서비스로 소독, 해충방역, 클리닝 서비스를 같이 하고 있다. 처음부터 공간을 운영할 법인을 만들 때 이 주택 비즈니스를 하면서 우리가 얻은 노하우로 비즈니스 확장을 해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오래된 주택이나 건물의 클리닝 방법과 관리 방법에 대한 노하우를 판매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지면서 공간 비즈니스를 홍보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공간 운영을 먼저 시작하고 노하우 비즈니스를 시작하려 했는데 공간 홍보 자체가 어렵다보니 오픈하는 것부터 안됐다. 그래서 지금 위생이 중요한 시점이니 노하우를 얻는 게 아니라 미리 만들어보자 해서 관련 물품도 사고 건물위생관련 허가를 준비했다.
그 과정에서 소독 업무에 대해 알게 됐고 나를 포함한 4명의 팀원들이 모든 소독 약제를 취급할 수 있는 의무교육도 받았다. 지금은 정부에서도 소독 지원을 많이 하고 있고 덕분에 소독과 해충 방역 작업을 더 많이 하고 있다.
사실 모두가 마케터, 부동산 개발업, 개발자 출신들인데 갑자기 방진복 입고 현장에서 소독 작업을 하게 된 거다. 그러면서 매출도 늘고 일자리도 창출하며 사업을 넓힐 수 있게 됐다. <알트탭> 공간을 운영하면서 해충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이 부분을 해결하면서 얻은 노하우로 해충 방역 작업을 하고 있고, 클리닝 영역도 점차 넓혀가는 단계다.
▶로컬 창업의 동력은 뭐라고 생각하나?
☞알트탭스페이스 변소정 대표: 로컬 창업자에게 가장 중요한 동력은 ‘철학’과 ‘예술성’인 것 같다. 이 두 가지가 빠지면 과연 사람들이 브랜드를 필요로 할까? 대기업이라면 대중적인 것을 고민할 수 있겠지만, 로컬의 작은 기업은 다르다. 로컬에만 있고 운영자가 공간과 사람들을 연결하는 주체가 되기 때문에 그가 가진 철학에 따라 공간의 정체성도 바뀌게 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주택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모든 부분이 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갈 때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불가항력적인 일이라면 어쩔 수 없지! 이왕 이렇게 된 거 더 좋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찾는 고객의 대부분이 촬영을 목적으로 한다고 해서 새롭게 정체성을 확고하게 한다고 공간을 스튜디오로 공간을 바꾼다거나 하지 않았다. 조금 더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람들이 원하는 공간을 제공하고 싶다는 철학에 따라 공간을 운영했기 때문에 <알트탭스페이스>만의 매력을 살려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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