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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 사건 특별기고(1)] 입양 가족이 본 정인이 사건에 대한 분노와 답답함

윤준식 기자 승인 2021.01.19 14:43 | 최종 수정 2021.01.23 12:52 의견 0

최근 정인이 사건으로 네티즌 사이의 공분이 하늘을 찌르는 듯했습니다. 심지어 신년을 맞아 진행된 대통령 기자회견에서도 정인이 문제가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입양에 대한 인식과 방법론 모두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현실입니다.

때마침 <시사N라이프>는 의미있는 투고를 받았습니다. 입양 경험을 가진 한 아버지로부터 입양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사연이었습니다. 정인이 사건을 시청률과 조회수를 높이는 데 활용하는 언론에 대한 불신도 토로했습니다.

이에 독립언론을 지향하는 <시사N라이프>에 무명으로 투고한다는 당부를 남겼습니다. 총 3회에 나누어 연재되는 솔직한 심정과 사연을 통해 독자 여러분께서 정인이 사건과 입양에 대한 생각의 범위를 넓히시는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 정인이 양부모보다 무지한 언론에 더 분노한다

답답한 심정, 그리고 분노로 어렵게 글을 써 투고합니다.

이 글을 쓰기까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굳이 인터넷 신문에까지 이런 글을 투고할 이유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글을 씁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정인이 양부모에 대한 분노지만, 다른 하나는 입양에 대한경험도 없고, 심정적으로도 전혀 무감각한 무지한 언론에 대한 분노감 때문입니다.

정인이 양부모의 만행은 그들이 계획적이지 않았다 아무리 변명하더라도 여러 정황을 고려해볼 때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부모는 정인이를 자기 만족을 위한 도구로 입양한 게 분명합니다. 정인이 자체의 인격을 존중했고 인권을 조금이라도 고려했다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언론이 행하고 있는 입양기관에 대한 비판? 타당합니다. 그러나 ‘형식적인 절차’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입양하기 전 진행되는 오랜 절차를 경험한 입양 부모들에게 ‘형식적인 절차’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면, 그 자체가 모욕입니다. 순수한 마음을 지닌 대부분의 입양 부모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한다면, 입양부모들이 모멸적인 말투로 육두문자를 쏟아내며 거칠게 항변할 지도 모릅니다.

특히 TV를 보면 변호사, 기자, 게다가 육아 경험도 없어 보이는 패널 들을 앞세워 정인이 사건을 다루는데,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극적인 사건을 통해 시청률만 올리려는 수단으로 사용됨에 실망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 정인이 양부모에게 정인이는 도구였습니다

저의 경우, 결혼 후 첫째는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때 감격은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처음 만나는 순간, 시공간이 정지했습니다. 아이의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은 10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후 한동안 둘째 생각을 하지 않다가 3년이 지나 아내와 둘째를 만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첫째와 달리 둘째는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입양’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때까지 입양은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정말 좋은 일이라는 생각에 고민 없이 쉽게 동의했습니다. 그때는 정말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좋은 일이니까 부부 중 누군가 원하면 뜻을 따르는 게 좋겠다고...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아내는 결혼 이전부터 입양에 대한 고민을 심각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입양의 목적은 가정마다 다르고, 부부 안에서도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정인이 양부모에겐 달랐습니다. 먼저 태어난 첫째에게 동성(同姓)의 동생을 붙여주기 위한 목적이 있었고, 양모의 ‘관종’ 성격도 한몫했습니다. 아울러 아파트 대출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입양 후 바로 추가 대출을 받았으니까요. 어떤 의도로 입양했든 여기에는 정인이를 위한 입양이 우선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입양에 대해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입양은 아이를 친자녀처럼 키우겠다는 다짐”이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 말은 절대 맞는 말이 아닙니다. “아이의 인격을 존중하고, 아이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일정 기간 돌봐주겠다는 약속”이라 하는 게 적절합니다. 그래서 내 자녀보다 더 귀하게 돌봐야 합니다. 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말입니다.

입양하면서 “내 자녀인데, 체벌이나 혼도 못 내냐?”라고 하면서 언성을 높이는 입양대기 부모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항상 “그렇게 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먹어도 아이한테 언성도 높일 때가 있고, 적절하지 못한 체벌을 실행할 수도 있어서입니다.

말로는 “친자녀보다 더 소중하게”라 표현하지만, 그거야말로 정말 쉽지 않습니다. 막상 친자녀보다 더 소중하게 대하라는 말이 쉽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 없이 입양을 실행한다면, 어느 순간 친자녀에게 중심을 내준 입양아가 집 안 구석 어딘가에서 웅크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정인이의 입양은 철저하게 정인이를 위한 입양이어야 했고, 양육도 그랬어야 했습니다. 이들에 따르면 이들의 입양 전 태도는 꽤 진지했습니다. “첫째보다 더 많은 기도로 정인이를 기다렸다”는 표현을 서슴없이 사용했을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그 마음을 가식이라고 치부하고 싶진 않습니다. 문제는 그 마음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이런 모습은 그들의 부모–목회자 부부–들의 모습을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적어도 호적상 외손녀가 사망한 지 이틀 만에 와인파티를 했다는 것 자체가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모습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는 일입니다.

다시 제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내는 저에게 입양에 대한 소망을 나타냈고, 저는 소극적으로 긍정의 끄덕임으로 대답했습니다. 이후 아내는 발 빠르게 입양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국내 사설 입양기관은 몇 군데 없습니다. 최근에 문제가 된 ‘홀트아동복지회’, ‘대한사회복지회’, ‘동방사회복지회’가 대표적인 시설입니다.

아내는 당시 직장에서 가까운 ‘대한사회복지회’에 문의를 했고, 입양을 위한 절차가 어느 정도 진행되던 중에 저를 동반해 기관에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담당자 면담 후 개인적인 느낌이 좋지 않아 기관을 바꾸자고 말했습니다.

당시 ‘대한사회복지회’에서 입양을 신청했다면, 좀 더 빠르게 둘째를 만났을지 모릅니다. 제가 적극적이지 않고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여주는 바람에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아내는 섭섭한 마음이 있던 때였습니다. 솔직히, 첫째가 어느 정도 성장했기에 육아의 부담에서 서서히 해방되고 있었는데, 둘째가 생기면 한동안 육아에 전념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저에게 썩 달가운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다시 정인이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정인이 양모는 첫째를 키웠던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인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첫째도 제대로 육아한 경험이 별로 없었다고 추측합니다. 다만, 친자녀였기에 정인이한테 가한 것같은 가학행위를 하지 않았을 뿐이라 봅니다.

육아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부모는 다시 시작한 육아의 힘든 상황을 제대로 이겨내지 못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양부모의 조부모의 태도를 볼 때 친손녀의 육아에는 도움을 줬겠지만, 정인이를 돌보는 데는 그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결국, 양모는 육아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게 분명합니다. 즉, 육아에 대한 경험도 없고, 자신도 없으면서 입양을 결정한 것은 아이를 위한 처사가 아니라 다른 목적이 더 컸다는 것을 강하게 의미합니다.

육아를 하다보면 종종 힘들어 신세 한탄을 합니다. 그러면서 “나 혼자 살았더다면?”, 혹은 “아이가 없었더라면?” 이런 생각 등을 하기도 합니다(솔직히 저는 그랬습니다). 그러나 자녀를 대하면 사랑하는 마음이 샘솟아 괴로운 생각이 사라집니다. 새근새근 잠든 모습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감동돼 눈물도 흘리고, 또 흐뭇하게 웃기도 합니다. 이런 경험을 정인이 양모가 경험했을까요? 저는 없었다고 확신합니다. 결국 정인이 양모는 서서히 정인이 입양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을테고, 후회에 찬 마음으로 정인이를 대했을 것입니다.

◆ 입양 절차는 절대 형식적이지 않습니다. 형식적이라 판단하는 언론에 외칩니다!

다시 또 제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아내의 섭섭한 표정을 몸과 마음으로 느낀 저는 입양에 대해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내가 다른 기관 알아볼게”라고 말하고 발빠르게 다른 기관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홀트아동복지회’에 가서 면담을 신청했습니다.

사실, 아내와 저는 학벌도 나쁘지 않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이 아니어서 입양을 신청하면 어렵지 않게 답을 얻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 오판이었습니다. 기본적인 서류를 작성하고, 입양을 위한 에세이도 작성하고, 재산 현황, 범죄전력 등 개인이 뗄 수 있는 모든 서류와 자료를 챙겨서 입양신청을 접수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부부관계의 만족도까지 조사했습니다. 심리검사 시에는 제 친아버지 사이에서 있었던 좋지 않은 사건에 대해서도 고백해야 했습니다.

입양 절차에 대해서 형식적이라고 비판하는 언론도 있고 패널도 있는데,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서류를 떼서 제출하고, 얼마나 더 많은 절차를 거쳐야 형식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입양절차가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제대로 알아보기라도 하고 그런 주장을 하는 걸까요? 언론에서는 주로 입양과 관련없는 자들이 전문가라고 자처하며 나와서 떠드는데, 솔직히 묻고 싶습니다. “입양 해보셨나요? 입양 절차가 쉽다고 생각하시나요? 입양하는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아시나요?” 참 무책임하게 떠듭니다. 절차가 형식적이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고 사용합니다. 아마, 그 말을 한 분이 실제 입양 과정을 겪어봤다면, 그따위의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으리라 확신합니다.

최근 정인이 사건으로 ‘홀트아동복지회’의 입양 절차와 사후관리를 비판하는 여론과 언론이 팽배합니다. 하지만, 입양을 경험한 부모 입장에서 매뉴얼대로만 사후 관리를 해도 쉽지 않은 경험이라고 느낄 겁니다. 물론,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관리 소홀도 있었을 겁니다. 정인이의 입양을 담당했던 관리자가 정인이 상태를 좀 더 챙겼다면, 이런 비극은 막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절차 문제가 아니라, 관리자마다의 개인차이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아무리 복잡하고 정교한 시스템을 만들어도 실제로 일하는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담당 관리자분한테는 죄송한 이야기지만, 좀 더 세심한 관리자였다면 이와 같은 비극이 예방되었을지 모릅니다.

여튼 저는 입양 서류를 빨리 준비해서 제출했습니다. 숙제하듯 열심히 준비해서 빠르게 제출했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입양 부모 교육에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입양 부모 교육은 양부모 모두가 참석해야만 합니다. 저와 아내는 하루 일정을 모두 비워야 했습니다. 교육 내용이 좋았다고 평가할 수 없지만, 입양을 담당하는 분의 입장에선 그날이 입양신청 부부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날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부부가 같이 왔음에도 따로 떨어져 앉아있는 부부를 관찰하기도 했고, 질문하는 부모를 보면서 자녀에 대한 마음을 살피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정인이 양부모도 똑같은 과정을 거쳤습니다. 부부는 일심동체니 아마도 크게 다를 바 없는 둘은 다정한 부부로 보였을 거 같습니다. 아울러 ‘홀트’가 기독교와 관련한 기관이다 보니, 기독교 신자인 양부모와 기독교 목회자인 조부모의 조건은 신뢰할 수 있었던 조건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울러 양부모의 대학교도 한동대학교라는 국내 유명 미션스쿨이었으니, 정말 최적의 입양가정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정인이 양부모의 첫째 아이가 딸이라는 측면도 긍정적으로 작용했음이 분명합니다. 동성 자녀를 양육한 경험이 있으니, 정인이를 더 능숙하게 돌볼 거로 생각했겠죠. 게다가 외조모는 어린이집 원장이었으니, 더더욱 금상첨화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겉으로만 보이는 조건이었습니다. 저는 예상컨대 양모는 첫째를 제대로 키워 본 경험도 없었을 것이고, 밖으로 도는 양부도 육아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그런 내막을 기관 담당자분이 알아챌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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