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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대‘한심(寒心)’국] 44편: 대한민국 군대(4)

조인 작가 승인 2021.02.20 14:05 의견 0

그의 역 기피의 파장은 승승장구하는 남자 연예인들을 군대로 몰아 넣었다. 겉으로는 자진 입대였지만, 마음속은 대부분 그렇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빠져나가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게 정상이었다.

그나마 인가가 많은 스타급 연예인들은 연예병사로 빠질 수 있었고, 잦은 포상으로 휴가를 자주 나올 수 있었다. 그들의 활동이 연예인에게 미친 세상에서 군대로 자리로 옮긴 장병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주고, 사기진작에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과 헌신이 대단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들에게 주어지는 포상은 분명 과도했다. 물론, 사회에서 벌어들였을 돈을 따져본다면 결국, 휴가도 유전유포상 무전무포상이라고 해도 절대 이상할 게 없었다. 모두 평등하게 입대하고, 똑같이 머리를 짧게 깍지만 생활 자체가 다르고, 휴가가 다르다면 평등한 군 생활이 아닐 것이다.

“대표님 저 오늘 나가요. 잘 준비해주세요.”
“응? 또? 너 지난주에 나왔잖아?”
“사단장이 주관하는 파티에서 노래 한 번 했더니 3박 4일 포상 휴가를 바로 주던데요.”
“연예병사 참 좋네. 알았다. 잘 준비해놓을게”

장군들은 유명한 연예인들을 자신이 필요할 때 마음껏 활용하고 연예인은 그 대가로 휴가를 제공하는 상황이었다. 상부상조라고 해야 할까? 이런 불평등한 상황을 모르는 것 아니었으나, 군대라는 곳 자체가 워낙 답답한 곳이어서 불만이 있어도 표출하기도 힘들었고, 혹 불만을 입 밖으로 냈을 때의 여파는 일개 사병으로 감당하기 힘들 때가 대부분이었다. 결국 본인이 신의 아들이 아니고 금수저가 아님을 자괴하고 말 뿐이다.

“김 상병 이번에 또 휴가 나간다는 거 들었어?”
“응? 또?”
“알고 보니, 김 상병 아버지가 쓰리 스타래.”
“응? 어쩐지 대대장이 종종 찾아오더니만.”
“군 생활이 완전히 야영장인 거 같아.”
“빽도 없고, 돈도 없는 우리만 죽어나는 거지 뭐.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아무리 생각해도 불평등한 게 맞지만, 그런 정의를 외칠만한 용기도 없었고, 그저 수동적으로 주는 짬밥 잘 먹고 시간을 보내면 된다는 생각이 정신을 지배해 버린다. 그러다 보면, 불만조차도 매일 아침 제대로 발기하지 않는 페니스처럼 수그러들기 마련이었다.

물론, 가끔 고충을 털어놓을 수 있는 면담 시간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면담 이후, 장병의 고충은 고충의 처리보다는 뜻밖의 이자를 더해서 돌아오기 마련이었다.

“오늘은 대대장이 다 들어 줄 테니, 힘든 점 있으면 다 말할 수 있도록 해!”

대대장은 선한 웃음을 지으면서 신입 병사들의 마음을 열려고 했다. 그래야 부대 간부들의 상황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좋은 병영문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거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들 눈치만 보고 말을 하지 않자, 대대장이 직접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 보면서 묻는다.

“그렇게 불만이 없어? 그러면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할 수 있도록 해.”

대대장을 지켜보는 인사장교는 신입 병사들을 째려보면서 ‘어서 말하란 말이야!’라고 눈으로 윽박지르고 있었다. 그런데도 다들 입을 닫고 아무 말 하지 않고 있는데, 한 병사가 어디서 나온 용기를 내서 입을 뗀다.

“사실, 대대장님 지난 위병 근무 시에 탄창을 받으러 갔는데, 당직 사령이었던 정보장교가 윽박지르면서 폭언을 했습니다.”
“응? 정보장교가?”
“네.”

대대장 뒤에서 지켜보던 인사장교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진다. ‘왜 하필이면?’이라는 표정이다. 하지만, 한 번 입을 연 병사는 계속 정보장교와 관련한 이야기를 한다.

“당시, 너무 무서워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습니다.”
“허허. 정보장교가 아주 잘못했구먼. 대대장이 잘 조치 할 테니 앞으로는 그런 일 없을 거야. 다른 장병들은 없나?”
“예!”

다들 이제 해방이라는 듯이 큰 목소리로 대답한다.

신병들이 중대로 복귀하는 중에 인사장교가 불만을 토로한 장병에게 다가간다.

“야, 너 어쩌려고 그런 고자질을 하나?”
“네? 대대장님께서 고충 사항을 말씀하라고 하셔서.”
“휴~ 개념이 없구먼. 난 잘 모르겠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정보장교가 네 중대 선임 소대장이었던 거 몰라?”
“네? 그게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습니다.”
“알았다. 가 봐!”

인사장교는 답답한 마음을 등에 지고 한걸음에 지휘통제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퉁퉁 부어 있는 정보장교에게 다가간다.

“정보장교님?”
“응? 왜?”
“3중대 이병 한 명이 대대장님께 고충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래? 그런데?”
“그게 지난주 정보장교님이 폭언했다고…….”
“응? 게가 미쳤나?”
“개념이 없었던 거 같습니다.”
“휴~ 대대장님의 호출이 있겠구먼.”

그날이 끝날 때쯤, 정보장교가 예상했던 대로 대대장은 정보장교를 호출했다.

“충성!”
“그래, 여기 앉아 봐!”

대대장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지난주에 한 병사에게 폭언했다며?”
“예.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같은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리 내가 정보장교를 아껴도 이런 일은 앞으로 없도록. 다시 한번 반복되면 나도 어쩔 수 없으니.”
“예!”
“나가 봐!”
“충성!”

문을 열고 돌아서자마자, 마침 3중대 소대장이 보였다.

“김 소위!”
“충성!”
“김 이병 몇 소대야?”
“저희 소대입니다.”
“야, 그 새끼가 대대장님 면담 시간에 내가 폭언했다고 말한 거 알아?”“네? 그런 일이…….”
“너 소대원 그렇게 관리할 거야?”
“죄송합니다.”
“씨발, 죄송하면 다냐고? 어떻게 할 거야?”
“제대로 교육 시키겠습니다.”
“난 모르겠다. 그 새끼한테 아무 말 안 할 테니 알아서 하라고!”

김 소위는 갑자기 짜증이 난다. 지난달까지 중대 선임 소대장이었고, 정보장교로 내려가서는 더 큰 힘을 가진 정보장교여서 제대로 조치하지 않으면, 일이 꼬일 게 분명했다.

‘하필이면, 성질도 더러운 정보장교를 건드려서….’

그 길로 김 소위는 짜증이 드러나는 걸음으로 중대로 복귀해서 분대장을 부른다.

“야, 김 이병 도대체 어떻게 관리한 거야?”
“예? 무슨 말씀인지?”
“그 새끼가 대대장님 면담 시간에 정보장교가 폭언한다고 고자질했대!”
“네? 미쳤네요. 원래 좀 개념 없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그게 문제 아니야. 정보장교 마음에 들게 조치하지 않으면, 우리 중대 박살 날 수도 있어.”
“네. 알겠습니다. 그 새끼 때문에 참 많이 힘듭니다.”

1주일이 지나자, 김 이병이 부대에서 가장 두려워한 존재는 대대장이 아니라 정보장교였다. 감히 눈을 쳐다볼 수도 없을 만큼 높게 보였다. 그리고 그 공포감이 굉장해서 정보장교가 지나갈 때마다 공포감에 못으로 철판을 그을 때 들리는 “끼이익~~”소리에 느껴지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러나 정보장교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가 직접적으로 그에게 위해를 가한 것도 아니었다. 고충 면담 시간에 한 마디 잘못해서 김 이병의 군 생활은 상병이 될 때까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의 선임은 그를 대놓고 무시했고, 그러다 보니 후임들도 그를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았다.

이런 군 시절의 경험은 그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김 이병의 개념을 어떻게 잡아줬는지는 몰라도 사회에 나가서는 많던 말수가 줄고, 윗사람의 눈치를 살필 수 있었다.

그러나 금수저들의 군 생활은 달랐다.

“아버지, 저 부대 좀 바꿔 주세요. 여기 너무 힘들어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래? 그냥 얼마 안 되면 버티지?”“그러지 않아도 할 것도 많은데 여기서는 군 복무 이외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음, 그러면, 안 되지. 알았어. 조금 기다려 봐!”

임관해서 자대배치를 받은 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은 김 소위는 전방의 혹한 만큼이나 군 생활이 싫었다. 처음부터 좋은 성적을 받았다면, 조금 더 편한 병과를 선택할 수 있었겠지만, 굳이 군에서까지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대충 생활하다 보니, 군번도 좋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보병 병과를 받았고, 그나마 출신 대학교가 상위권이어서 신병교육대대에 배치됐다.

“후방 부대도 있는데, 하필이면 전방이야. 짜증 나 죽겠네.”

하지만, 갓 부대에 도착한 소위는 이병과 다를 바 없는 게 군대였다.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 인사하고 눈치를 봐야만 했다. 마치 내복 바람으로 눈 내리는 연병장에 놓인 듯한 싸늘한 병영문화에 도저히 적응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단단히 결심하고 아버지한테 전화를 날린 것이다.

“아버지, 어떻게 됐어요?”
“아마, 곧 조치가 있을 거다. 네가 편하게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기로 했으니까.”
“네? 그러면 좋죠. 전방만 아니어도 좋을 거 같아요. 여긴 도대체 매서운 추위만큼 사람들도 차가운 거 같아요.”
“그래? 그러면 안 되지. 조금만 참고 견디거라.”

2달 후 김 소위는 후방 부대로 전출 가게 됐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았지만, 누구도 허투루 소리 낼 수 없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공명정대한 군대였기 때문이다. 그저 김 소위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간부들은 부러워할 뿐이었다.

‘역시 금수저 집안이라서 다르구먼. 나도 아래로 가고 싶은데.’

속으로 타오르는 좌절감을 아무리 꾹꾹 눌러 보려 해도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저 아무 빽도 없는 본인의 상황을 원망할 뿐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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