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시각을 30분 앞둔 금요일의 일이다. 일선 실무를 책임지는 팀의 서브 리더와 회의실에 마주앉아 한 주간의 업무를 매듭짓고 돌아오는 주의 일을 상의한 후 퇴근을 준비해야 겠다고 있던 생각하던 상황 속에 벌어진 일이었다.
갑자기 화난 얼굴의 부하가 회의실 문을 두드렸다. “잠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먼저 미팅하던 서브 리더에게 잠시 자리를 비켜달라 부탁하고 문을 두드린 부하와 둘만 남았다.
처음에는 뭔가 풀리지 않은 문제가 있거나 리더인 나와의 갈등 때문에 따지러 온 줄 알았다. 그러나 그가 던진 첫 마디는 “퇴사하겠습니다!”였다. 뜻밖의 말이었다.
순간 누군가 뒤에서 머리를 세게 때린 듯했다. 머리가 멍해졌다. 나름대로 산전수전을 겪어온 터라 여간해선 당황하지 않는 터다. 당황스런 상황에 처하더라도 바로 상황을 수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나다. 그런데 바로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이후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조건반사적으로만 행동했던 것 같다. 15분 정도 대화를 나눴지만 치고받는 공방전만 했던 것 같다.
사실 내가 대화를 이어간 의도는 퇴사를 만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화를 내며 퇴사하겠다고 말하는 건 퇴사가 목적이라서가 아니라 불만이 있어서가 뻔해서다. 그러나 결국 그는 나와의 대화 후 최종적으로 퇴사를 결심하고 말았다.
나의 사회생활 경력은 20년이 되어 간다. 결코 짧은 경력은 아니다. 밑바닥 기는 생활만 몇 년을 했던가? 팀을 구성하고 팀원들을 챙겼던 일은 또 몇 년이었나? 실무자로서의 리더십은 어느 정도 훈련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터라 자신감이 넘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던 나다. 그런데 “퇴사하겠습니다!”라니...
"도비는 자유예요!"는 일에서 해방되었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주말을 보낸 후 퇴사하려는 부하와 차분하게 짧은 대화를 나눴다. 주말이 지나는 사이 퇴사는 기정 사실이 되었다. 원인은 재고의 여지없이 나의 리더십 문제였다. 퇴사를 결심한 그와 이 문제로 오랜 토론을 할 수는 없었다. 곧바로 서브 리더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문제의 원인을 짚어보고 싶었다. 서브 리더를 통해 확인한 진실의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퇴사를 선언한 부하는 그간 나와의 관계를 많이 힘들어했다. 일의 진척이 안 되는 문제가 아니라 함께 일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감정이 소모되는 경우가 많아 힘들어 했다. 나는 팀 내에서 이런 문제가 잘 해결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중간에서 팀을 지탱해주는 서브 리더가 역할을 잘 해주고 있었고, 계속해서 나타나는 업무성과를 통해 성취감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 확신했고 관계도 잘 봉합될 것이라 낙관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계점이 왔던 것이다.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팀이었다. 서로가 상호보완적인 관계였고 충분한 시너지가 나는 팀이었다. 지금까지 반년 동안 수많은 역경을 함께 거쳐 왔고 작은 승리를 여러 번 거머쥐었다. 그런데 퇴사라니, 그것도 리더십의 문제로 퇴사하겠다니?
그렇게 따지면 나도 억울함을 금할 길이 없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날마다 새로운 동기부여, 비전제시를 해왔다. 성장을 돕기 위해 준비한 수많은 크고 작은 장치들, 때때로 격려를 위해 준비한 조촐한 회식... 아니 그런 것보다 내가 사준 밥이 몇 끼며, 내가 사준 커피는 몇 잔인지 세보라고 하고 싶었다.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는 월급쟁이들 대부분이 회사의 비전에 반해 입사해 사람에게 실망해 퇴사한다. 나도 여러 번 그랬다. 그때마다 “나는 부하를 실망시키지 않는 상사가 되겠다”, “부하를 끝까지 신뢰하고 밀어주는 상사가 되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나 스스로도 비판해마지 않았던 ‘나쁜 상사 새끼’가 되어버린 것이다.
리더십의 위기는 이렇게 찾아온다. 스스로 괜찮은 리더라고 생각하는 순간 기다리며 매복해 있던 복병처럼 꼼짝할 새 없이 뒤에서 덮쳐 온다.
전통적 리더십인 ‘카리스마적 리더’는 이미 이야기되지 않은 지 오래다. 어느 틈엔가 ‘섬기는 리더’가 리더십 세계의 유행이 되었지만, 부하와 팀을 열심히 섬긴다고 해서 좋은 리더라 인정받지도 못한다. 리더십도 일종의 서비스라 서비스를 제공받는 ‘부하’ 스스로가 좋은 서비스를 받았다고 인정한 후에라야 좋은 리더십이 성립된다.
리더십 문제는 상사와 부하라는 상하 관계에서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소위 ‘느슨한 연대’라 표현되는 업무상의 모든 관계 속에서도 대두된다. 타 부서, 거래 업체, 관여하는 모든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업무를 추진하는 사람의 리더십은 중요하게 작용된다.
이 시대의 리더십은 특정 유형으로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화무쌍해 형체불명의 존재라고 보는 게 설명하기 쉬워 보인다. 따라서 리더는 날마다 리더십의 위기를 겪게 되며, 리더가 아닌 존재라도 리더십에서 자유롭지 않다. 리더십은 조직을 이끌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모든 관계 속에서 상호작용하는 인간관계를 잘 하는 지식이자 지혜다.
새 연내 [위기의 리더십]은 비즈니스는 물론 삶 전체를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중간관리자들과 작은 기업의 대표들의 리더십과 처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조직 내에서, 조직과 조직 사이에서 ‘미들맨’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이들의 고민과 더불어 해법을 찾아가는 새로운 시도를 응원해주시기 바란다.
☞ 당신이 고민하는 리더십 위기와 사연, 질문을 여기에 남겨주세요.
취재와 전문가 자문을 통해 이어지는 연재를 통해 차분히 답해 드리겠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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