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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알자] 도쿄올림픽,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국민들

정회주 일본지역연구자 승인 2021.07.19 09:30 | 최종 수정 2021.07.19 11:39 의견 0

◆ 일본사회에 만연한 ‘애매함’

일본의 유명한 저널리스트이면서 평론가인 다하라 소이치로는 자신의 SNS를 통해 반복적으로 “전후 민주주의는 2가지의 문제가 있다. 첫째, 애매함을 오히려 무기화해온 것이며, 둘째, 법치주의보다 인치주의였다”고 전하고 있다.

일본 사회의 애매함을 나타내는 사례 중 하나가 일본 법령 속 제목일 것이다. 일본의 법령(헌법, 법률, 정령, 부성령, 규칙) 8,569건 중 제목에‘등’(等)이 포함된 법령이 2,920건으로 34%나 된다.

우리나라의 법령 5,647건 중 제목에 ‘등’이 포함된 것은 907건(16%)이고, 자치법규(조례, 규칙) 120,856건 중 16,553건(14%)이니 한·일간 2배의 차이가 있다. ‘등’(等) 이라는 융통성이 있는 단어를 통해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스스로가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아베 정부 이후 언론에서 논란이 된 단어를 보면 ①‘전투’를 ‘무력 충돌’, ②‘헬기 추락’은 ‘불시착’, ③‘카지노’를 ‘통합형 리조트’, ④‘안보 법제’는 ‘평화 안전 법제’, ⑤‘무기 수출’은 ‘방위장비 이전’ 등으로 표현한다. 이를 ‘가스미가세키’(霞が関) 문학이라고도 하는데, ‘가스미가세키’ 문학의 ‘가스미가세키’는 중앙관청이 모여있는 곳을 말한다.

‘가스미가세키’ 문학은 ①후에 증거가 남지 않는 화법, ②유연한 해석이 가능하고, ③차후에 도망갈 수 있도록 하는 애매한 화법이나 문장을 사용하거나, ④관료가 집단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혹은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⑤나아가 정치가에게 저항할 때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출처 : 명치대학 田中秀明, NHK, https://www3.nhk.or.jp/news/special/kasumigaseki/article/article_190624.html)

최근 일본의 올림픽 개최와 코로나19 사태를 보면 일본 사회 속에 만연한 애매함을 오히려 정치인들이 아주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다. 일본 국민들도 도쿄에서 코로나19 사태가 다시 확산되는 것은 무섭지만, 올림픽은 개최하고 싶은 마음이 교차하고 있기 때문이다.

◆ 선동정치에 길들여져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국민들과 이를 이용하는 정치인

지난 6월 23일 일본 외국특파원협회 기자회견에서 가미 마사히로(上昌広) 의료 거버넌스연구소 소장(전 도쿄대학의과학연구소 특임교수)은 ①일본의 미숙한 코로나19 대응문제는 “관청들의 종적행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임상실험 경험이 없는 의사면허만 가진 약 300여 명의 후생노동성 관료가 의료정책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라면서 “최근의 대신들은 의료정책을 의료 관료들에게 완전히 맡겨 버렸다” 고 비난했다.

또한 ②“선수촌에서 실시하는 코로나19는 PCR검사가 아니고 항원검사이다. (일본의) 항원검사는 무증상환자에 대해서 약 절반 정도를 놓친다. 일본 프로야구를 포함해서 세계 프로스포츠는 (선수들에게) 매일 PCR검사를 가미마사히로(일본 외국특파원협회)한다” “하지만 일본 의료관료들은 PCR은 불필요하다며 항원검사(키트)를 대량으로 사들였고 그 비축량이 있기 때문이다”면서, ③“델타바이러스가 유행하면 기존 코로나19에 비해 5배 이상 유행할 것이고 코로나19는 선수촌 요리, 청소원들도 백신을 맞지 않으면 감염된다. 하지만 백신접종이 늦어져 이들은 백신을 맞지 못했다. 올림픽 개최여부에 관해 일본 전문가들의 판단이 필요하지만 일본의 전문가들은 그러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는 폭탄 발언을 쏟아냈다.

가미 소장 발언의 파급효과를 우려한 듯, 수일 후인 6월 28일 야마시타 야스히로 JOC회장이 가미 소장과 같은 장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세계 각국의 선수들의 활약이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빛이 된다. 안심·안전을 전제로 대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싶다”는 감성적 회견을 했다. 결국 가미 소장의 발언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런 결과를 반영하듯 <니혼게이자이 신문>과 <TV도쿄>는 6월 25∼27일 각각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내각 지지율이 43%로 전회 조사인 5월보다 3%포인트가 상승했다. 백신접종 때문에 지지율이 상승했다고 하니 일본 국민들이 정부에 바라는 기대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같은 여론조사에서 ‘올림픽 무관중 개최’는 33%, 개최 연기 또는 취소해야 한다는 응답은 37%였다. ‘통상적인 관객 규모로 실시’는 4%에 불과했다.

일본에서는 국민들이 떨떠름한 상태에 있지만 올림픽이 시작되고 일본이 금메달을 따게 되면 한껏 분위기는 상승할 것이며, 여세를 몰아 선거를 하면 정권은 유지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먹히고 있다. 게다가 여당 정치인들은 물론, 연예인, 각종 정치 코멘테이터들이 방송에서 “5년간 준비한 선수들의 노력이 안타깝다”면서 논리적으로 통하지 않을 때는 감성에 호소한다는 전형적인 일본사회의 분위기로 ‘쿠우키’(空氣)를 조성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언론을 보면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잔치상으로 인해 코로나19가 전세계로 퍼지는 것을 우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과 국민들은 외국인들이 바이러스를 전파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2013년 IOC 총회에서의 일본은 진심을 다하는 정중한 환대라는 의미의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를 하겠다고 주장했던 것은 헛말이었던가?

연일 감염자가 증가하고 있는 도쿄의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전전긍긍하며 올림픽을 개최하고자 하는 일본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 일본은 바이러스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끼리 싸우고 있는 가운데,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올림픽을 개최한다던 정치인들은 불리할 때는 애매한 상황을 조성하고 국민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도록 하고 있다.

https://youtu.be/d_S4FYjp9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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