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세대는 가혹하게 살았습니다. 요즘보다 더 심각한 노동 착취, 사회 악습, 전쟁 위기를 겪었습니다.
정부와 기업은 노동자의 권리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는 주 6일, 혹은 일주일 내내 출근하다가 낡은 기계 부품처럼 버려졌습니다. 노동 운동은 반체제 활동으로 규정당했고, 공권력은 기업의 부당 행위를 눈 감아 줬습니다. 노동자는 스스로를 지킬 수 없었고,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했습니다.
학생이든 군인이든 여성이든, 윗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고통스러운 차별과 폭언을 당연히 감내해야 했습니다. 당시는 지금처럼 가해자가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저항하는 사람은 눈치 없는 사람, 사회성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철저히 따돌림 당했습니다.
우리나라는 항상 준전시체제였습니다. 서방 세계는 지금의 중국이나 러시아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영향력을 발휘하던 소련과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소련은 서유럽의 코 앞에, 미국은 소련의 턱 밑에 핵무기를 배치하고 있었고, 곳곳에서 대리전을 벌였습니다. 우리나라도 버마에서 주요 각료가 공격당하는 사건을 겪었습니다. 전쟁 공포는 현실이었습니다.
흔히 요즘 세대는 앞 세대가 경제 호황의 혜택을 톡톡히 누렸다고 여기지만, 대다수는 그 호황을 유지하는 데에 동원되는 입장이었습니다. 대학만 나오면 취직하기 쉬웠다지만, 당시에도 고급 일자리는 흔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지금보다 노동법도 사회안전망도 허술하던 시대였는데, 과연 편하게 경제 호황을 누릴 수 있었을까요? 요즘 세대도 충분히 고통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앞 세대가 편하게 살았다고 이야기하기는 힘듭니다.
객관적으로 앞 세대는 지금 세대보다 더 험난한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이런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요즘 세대는 앞 세대를 마냥 기득권 적폐로 몰아 갑니다.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심심하면 세대 교체론을 들고 옵니다. 정작 앞 세대를 대체할 능력도, 사회적 네트워크도 갖고 있지 않으면서, 마냥 권력만 바라고 있습니다. 그 권력의 원천이 인구의 다수인 앞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앞 세대를 몰아낼 생각만 궁리하고 있습니다.
흔히 요즘 세대는 앞 세대를 갑질하는 꼰대 즈음으로 여기지만, 딱히 요즘 세대라고 해서 더 정의롭지는 않습니다. 지금도 군대와 학교, 직장에서는 젊은이가 젊은이를 부조리하게 괴롭히는 사건이 수도 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젊은 진보는 자신들이 규정한 약자 외에는 관심이 없고, 젊은 보수는 자유를 내세워서 약자를 배제하려 하고 있습니다. 대체 어디에 정의와 공정이 있나요?
요즘 세대는 정말 우리나라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요? 그저 어느 세대보다 더 시끄럽게 징징거릴 뿐이지 않은가요?
앞 세대를 배제하는 청년 정치인은 필요 없습니다. 사회적 화합을 깨뜨리고 불필요한 갈등만 낳을 뿐입니다. 정말 능력주의를 아낀다면, 나이 따위는 신경쓰지 않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에는 유능한 사람이 필요할 뿐, 그저 젊을 뿐인 사람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다른 누구보다도 갈등을 봉합해 줄 정치인이 필요합니다. 세대 교체는 자연히 이뤄질 것입니다. 자연은 앞 세대에게 영생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수 많은 노인이 혼자 외롭게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누구에게도 관심받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보살핌 받지 못한 채 눈을 감을 것입니다. 누구보다 약자이지만 누구보다 적폐 취급당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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