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은 가난과 빈곤의 문제를 매우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율법서에서 가난을 언급한 구절들은 빈곤에 사회적 규범의 내용까지 담고 있다. 각각의 구절을 살펴보며 구약성경은 빈곤의 문제를 어떻게 언급하는지 살펴보자.
성경에 가난이란 단어가 가장 먼저 등장한 곳은 출애굽기 22장 25절이다.
(출 22:25-26) 『[25]네가 만일 너와 함께한 나의 백성 중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이거든 너는 그에게 채주 같이 하지 말며 변리를 받지 말 것이며 [26]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하나님의 백성이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주었을 때는 그를 빚쟁이처럼 대하지 말고, 이자도 받지 말라는 이야기다. 또한 가진 것이 없어 자신의 옷을 저당잡힐 정도로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해가 지기 전에 옷을 돌려주라는 소리다.
여기서 ‘가난하다’에 대응하는 히브리어는 ‘아니(לא)’로서 ‘가난한(poor), 비천한(humble), 낮은(lowly), 억압(압제)받는(oppressed)’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모두 77회나 나온다. ‘아니(לא)’의 용법은 더 큰 시사점을 준다. 억압하는 자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는 텍스트에서는 일반적으로 ‘사회적인 입장에서 가난한 자들’, 즉 ‘토지가 없는 자들’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구약성서 내의 다른 텍스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응당 지불해야 할 임금을 주지 않음’으로 고용한 종을 압제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는다. 더 나아가 고용한 종이 압제 당할 경우, 그 는 하나님을 옹호자로 요청하라고 전한다. 이를 통해 ‘아니(לא)’한 자들은 재정이 어려워 매일 벌어서 생계를 꾸려가는 자들이며, 사회적으로는 방어할 수 없는 압제 받는 자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이스라엘의 ‘아니(לא)’가 담보물이나 저당물로 삼을 물건으로 겉옷 밖에 없다 하더라고 돈을 꾸어 줄 것이며, ‘아니(לא)’한 자는 자신을 따뜻하게 보호하는데 반드시 옷이 필요하므로, 옷을 돌려주지 않음으로 인하여 그들에게 밤새도록 더 큰 괴로움을 주지 말 것을 명령한다.
(레 19:10) 『너의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너의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레위기에서는 ‘아니(לא)’한 자들은 ‘타국인과 나란히 밭의 이삭을 주울 권리를 지니는 자’로 분류된다. 이러한 원칙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는 사람들 중에 절대적인 빈곤이 없게 하기 위한 배려와 나눔의 기준이 된다. 또한 이 기준은 이스라엘 백성이든 이방인이든 관계없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즉 어떠한 신분을 가졌다 하더라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에는 빈곤이 없어야 함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신명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축복 아래서 ‘아니(לא)’한 자들에게 자선을 베풀라고 명령받는다.
(신 15:11)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이러한 구약성경의 원칙들은 아가페사랑이 실천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는 가난한 자를 향한 지속적인 실천이 요청되고 있다. 이러한 원칙은 아가페사랑 관점의 핵심적인 요소인 ‘보호’의 요소에 해당한다.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를 보호하고 필요를 채워줌으로 말미암아 공동체 안에서 빈곤을 퇴치하기를 요청하셨다는 것이다.
동시에 구약성경은 단지 가난한 자를 보호하는 요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를 향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삶이 망가지지 않고 일시적인 가난을 극복해 온전한 인간으로 ‘육성’되어가기를 바라는 측면도 나타나 있다. 이러한 원칙들은 아가페사랑의 또 다른 요소인 ‘육성’ 요소의 기초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가난한 자를 아가페사랑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절대적인 빈곤으로부터 ‘보호’하고 기초적인 생활이 되도록 영양분을 공급하여, 단지 빈곤한 상태-가난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인간으로 ‘육성’되어 기능하도록 의도하고 있다.
(출 23:3)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지니라』
(출 23:6)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공평치 않게 하지 말며』
위와 같은 출애굽기의 기준을 정리하면 “가난한 자의 송사라도 편파적으로 편을 들어주어서는 안 되는” 동시에 “가난한 자의 송사라도 공평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가난한 자라고 막연하게 보호해서는 안 되고,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으로, 올바른 것은 올바른 것으로 공평한 기준으로 재판을 진행하여 지속적으로 올바른 인간으로 ‘육성’되도록 분명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잠 22:22) 『약한 자를 약하다고 탈취하지 말며 곤고한 자를 성문에서 압제하지 말라』
더 나아가 잠언서는 “약한 자를 약하다고 탈취하지 말고, 곤고한 자를 성문에서 압제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다. 여기서 곤고한 자라는 표현에 ‘아니(לא)’라는 히브리어가 사용되고 있다. 즉 “약한 자를 탈취하지 말고, 가난한 자는 압제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렇게 명령하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은 괴로움을 당하는 자들의 보호자이자 구원자’이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도 곤고한 자, 즉 가난한 자의 보호자, 구원자가 되라고 요구하신다. 이러한 요구에 응하는 자들은 경건한 자로 간주하고(겔 18:17), 그리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사악한 자로 간주한다(잠 14:21).
(겔 18:17) 『손을 금하여 가난한 자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변이나 이식을 취하지 아니하여 내 규례를 지키며 내 율례를 행할진대 이 사람은 그 아비의 죄악으로 인하여 죽지 아니하고 정녕 살겠고』
(잠 14:21) 『그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
지금까지 살펴본 구약성경 속의 가난한 자를 향한 원칙들은 아가페사랑의 실천의 실질적인 기준이 된다. 아가페사랑의 관점에서 가난한 자를 ‘보호’하고, 가난한 자들이 빈곤으로부터 탈출해 올바로 기능하는 인간으로 ‘육성’되기 위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빈곤 퇴치’라는 SDG-1은 아가페사랑 관점에서 1순위로 실천되어야할 목표임에 분명하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aSSIST) 마스터플랜 박종욱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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