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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페사랑경영 관점에서 본 SDG(4)] 신약성경이 다루고 있는 빈곤의 문제

Goal 1. No Poverty; “모든 곳에서 모든 형태의 빈곤 종식” #04

aSSIST 박종욱 교수 승인 2022.10.20 11:16 | 최종 수정 2022.11.03 21:42 의견 0

신약에서의 가난에 대한 관점은 구약에서의 가난에 대한 관점을 기초로 하여 더욱 더 확장되고, 극대화된다. 심지어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눅 6: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가라사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하는 본뜻은 자신의 궁핍한 처지에서 하나님을 찾게 되고, 이로 인해 구원에 대한 소망이 더 높아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라는 선언이다. 문자적으로만 보면 가난한 자에 대한 인식이 구약성경의 인식과 달라진 것 같은 인상을 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구약성경의 기초 위에서 신약성경의 가난한 자와 빈곤문제에 대한 인식이 한층 더 확장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용은 신약성경에 나타난 예수의 비유에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가난과 관련된 여러 비유가 존재하나 가장 명확한 것은 ‘거지 나사로’의 비유로, 이를 통해서 신약성경이 갖는 가난에 대한 관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눅 16:19~31) 『[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20]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21]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25]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26]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27]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비유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한 부자가 있었다. 얼마나 부자였는지, 화려하고 다양한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파티로 세월을 보냈다. 반면 나사로라는 이름의 거지도 살고 있었다. 피부병을 앓고 있었고,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고픔을 달래려 했지만 그조차 달려드는 개들과 경쟁해야 얻어먹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사로가 죽자 그는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으로 들어 갔다. 반면 부자는 죽어 음부(陰府; 저승. 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에 떨어지게 되었다. 부자는 고통 중에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보내어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 호소한다. 아브라함은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여기서 나사로는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는 것이다. 게다가 너와 우리 사이는 서로 건너 오갈수도 없다”고 답한다.

이 비유의 핵심은 나사로가 구원을 받고, 부자가 구원을 받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나사로는 가난했고, 부자는 부자였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아브라함의 답변을 통해 구체화시킨다면 부자는 부자로서 자신이 받을 위로를 이생에서 다 누렸기 때문에 죽음 이후 음부에서 고난을 받고, 나사로는 거지로 이생에서 고난을 받았기 때문에 죽음 이후 낙원에서 위로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비유의 의미를 구약성경의 가난한 자에 대한 원칙과 연결하여 해석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게 된다.

구약성경의 원칙에 의하면 부자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거지 나사로를 돌보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는 날마다 파티를 하면서도 고통받는 거지 나사로를 돌보지 않았다. 부자 스스로 자신의 경건하지 않음, 자신의 의롭지 않음을 자기 행동으로 입증한 것이다. 반면 나사로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 죽음 이후 아브라함 품에서 위로를 받게 된다.

이 비유가 주는 명확한 교훈은 “가난한 자를 돌보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경건하고 의로운 하나님의 편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신약성경의 가난한 자에 대한 태도는 엄중한 경고다. 가난한 자를 돌보지 아니한다면 구원받지 못할 수 있다는 강한 암시를 주고 있다.

아가페사랑의 관점에서 볼 때 부자는 반드시 자신 가까이에 있는 거지 나사로를 ‘보호’하고, 영양을 공급하여 올바로 기능하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육성’해야 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빈곤 퇴치를 목표로 하는 SDG-1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목표임에 분명하다.

가난과 빈곤에 대한 신약성경의 관점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 또 다른 예수의 비유를 제시하고자 한다. 바로 양과 염소의 비유다.

양과 염소의 비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심판주로 재림하셔서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장면에 대한 비유인데, 이 비유를 통해 아가페사랑의 원천이신 예수께서 빈곤의 문제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어떻게 다루시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전술한 나사로의 비유도 매우 강렬하지만, 양과 염소의 비유는 더욱 더 드라마틱하게 가난과 빈곤이라는 주제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다.

(마 25:31-46) 『[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 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비교적 긴 분량의 비유지만 내용은 심플하다. 의도적으로 동일한 내용을 4번 반복함으로써 그 중요성을 독자들에게 상기시키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비유의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심판자이신 예수께서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재림할 때에 영광의 보좌에 앉아 심판에 임하신다. 모든 민족을 모아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나누는 것과 같이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으로 나눈다. 오른편에 있는 양에 속한 무리들에게는 칭찬하시며 상을 내리신다. 예비된 나라-영생천국에 들어간다는 의미다. 상을 내리는 이유는 “내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기에 상을 내린다.

그러자 의인들은 의아해 하며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예수께 반문한다. 그러자 예수께서 명확한 답을 주신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이제 장면은 왼편으로 넘어간다. 염소의 분류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며 무서운 저주의 심판을 내리신다. 그리고 이들에게 왜 지옥불에 떨어지는 지 이유를 설명하신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다”

그러자 무리들은 언제 주를 섬기지 않았냐며 억울함을 항변한다. 이에 예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라는 답변으로 비유의 결론을 맺는다.

지금 살펴본 양과 염소의 비유는 명확한 심판의 기준을 제시한다. 추상적이지 않으며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지극히 작은 자가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었는가? 지극히 작은 자가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는가? 지극히 작은 자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고 돌보아 주었는가? 지극히 작은 자가 헐벗었을 때 입을 옷을 주었는가? 지극히 작은 자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는가? 지극히 작은 자가 감옥에 갇혔을 때 찾아가 보고 돌보아 주었는가?

여기서 ‘지극히 작은 자’를 ‘가난한 자’로 치환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심판의 기준이라는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그렇게 한 사람은 양으로 분류되어 영생의 상급을 받지만, 부지불식간에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은 염소로 분류되어 지옥불에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이 기준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경솔히 여길 것을 우려했는지 예수께서는 4번을 의도적으로 비유에서 반복하여 기준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필자는 평소 이 내용을 ‘예수의 마지막 기말고사 문제’라고 표현하곤 한다. 예수의 양과 염소의 비유는 빈곤한 자, 가난한 자에 대한 신자의 마땅한 태도를 명확하게 제시한다.

그렇다면 이 내용은 아가페사랑과 어떻게 연결될까? 단언컨대 아가페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16)는 구절은 하나님의 존재가 바로 아가페사랑임을 의미한다. 또한 본질이 아가페사랑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예수로 이 세상에 나타나셨으니, 사랑의 원천이신 예수께서 가난한 자에게 어떠한 태도를 취하셨을지는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아가페사랑의 원천이신 예수의 길을 따르는 자들도 당연히 이 아가페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같은 맥락에서 요한복음은 아가페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온 인류를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마땅히 빈곤 퇴치, 가난한 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을 육성하여 자립할 수 있도록 도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아가페사랑 경영 관점’은 우리 주변의 지극히 작은 자, 가난한 자를 돌볼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생을 얻지 못할 뿐 아니라 지옥불에 떨어진다고 하는 신약성경의 관점과도 같다. 신약성경의 가난과 빈곤 퇴치에 대한 관점은 SDG-1의 실현을 위한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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