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88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99%의 중소기업이 전체 노동자 88%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숫자로 표현한 겁니다. 그러나 9988이라는 숫자는 정확한 수치는 아닙니다. 전경련에 따르면 중소기업이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 비율은 76%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통계의 정확성을 떠나 9988론은 중소기업이 국민경제에 이바지하는 비중을 잘 표현하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고용 창출이라는 건, 대단한 일입니다. 혼자 먹고살기에도 버거운데, 함께 먹고살 거리를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거니까요.
◆ 9988이 의미하는 것
하지만 99%의 중소기업이라는 수치는 애매한 구석이 있습니다. 프리랜서, 1인기업, 소상공인 등 보다 다양한 경제주체들도 이 수치에 포함된 걸까요? 그렇다면 99% 안에서도 몇 %를 차지할까요? 통상적으로 사업체 수는 사업자등록증 수량을 기준으로 추산합니다. 경기에 따라 개업과 폐업의 부침이 있기 때문에 대략 650만~700만 사업체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산하곤 하죠.
물론 사업자 1인이 여러개의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을 때도 있기에 650만~700만 사업장 수만큼의 사장님이 존재하진 않을 겁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아봤자 이 중 대기업의 비중이 1만을 넘어갈리는 절대 없을 테고, 제법 규모가 큰 중견기업의 숫자도 10만을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저 숫자 중에서 2/3 정도는 1인기업과 소상공인 등 작은 규모의 사업체들이 아닐까요? 그렇게 따진다면 대략 우리 나라에 있는 작은 규모의 사업체는 500만 개 이상 존재할 거라 추측해봅니다.
한편으로는 굳이 사업자등록이 필요 없어 사업소득세 3.3%를 공제하는 일로 생계를 도모하는 프리랜서들도 존재합니다. 이명박 정부시절 ‘1인창조기업’이 법으로 정의된 이후로 많은 수의 프리랜서가 사업자등록을 한 상태입니다. 프리랜서 사업자와는 달리 독립된 기업으로서 업을 이루어 가고 있지만, 이런 유형의 1인기업들도 일정 규모의 경제와 비즈니스 구조를 지닌 중소기업과는 다른 생리를 지닌 사업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프리랜서와 1인창조기업의 차이는 또 다른 기회에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 9988론에 작은 사업체의 이야기는 없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서 마주치는 작은 사업체들을 따져보면, 갈수록 1인기업의 범주로 한정되는 곳들이 많습니다. 사장님 혼자 운영하는 작은 가게거나, 파트타임 알바 하나, 둘 정도만 고용해 운영하는 곳들이 대부분입니다. 부부,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경우 애매할 때도 있습니다.
겉보기에 종사자 수는 여러 명으로 보이지만 대표자 1인을 통한 매출과 수입에 불과한 경우입니다. 원칙대로라면 가족 구성원도 각자 급여를 따로 받아야 하고 4대보험이나 휴무 등도 적용되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 정도로 넉넉하게 운영되는 형편이 아니기에 생계를 위해 가족이 단결하는 근로형태가 되고 만 것입니다.
이렇게 소규모 사업체의 이야기로 가면 앞서 나온 9988이든 9976은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않는 수치입니다. 저는 앞선 이야기는 작은 기업과는 관련 없는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무엇보다 소규모 사업체들을 어떻게 불러야할지도 애매합니다. 자영업, 소상공인, 1인기업, 프리랜서 등등의 개념은 사업체의 규모로 구분된 말들이 아니라 각각의 쓰임이 다른 용어들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스스로 창업전문가라고 우기며 자기PR 열심히 하는 분들 중에도 이 개념들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은 채(실제로는 못한 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을 봅니다. 이런 헛똑똑이, ‘전문가호소인’들 덕분에 더더욱 개념이 정리되지 못하고 있고, 소규모 사업체를 영위하는 분들이 잘못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쉽습니다.
◆ 자영업 무시하지 마세욧!, 소상공인, 1인기업 – 뭐가 다른걸까?
여기서 간단히 정리해 본다면, ‘자영업’은 사업체 운영 성격을 설명하는 쪽에 가까운 표현입니다. 국어사전에서 ‘자영업’을 찾아보면 ‘자신이 직접 경영하는 사업’을 의미하는데, 이 말 그대로인 사업체를 말하는 거죠.
개인사업자 중에서도 간이과세자가 자영업자라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자영업도 자영업 나름입니다. 간이과세와 일반과세는 매출규모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지, 종사자 수나 영업장의 규모로 구분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1평짜리 작은 가게라 대수롭지 않지만, 알고보면 제조와 도매유통, 무역까지 하고 있어 100억 매출을 내는 곳도 있습니다. 매출규모가 커짐에 따라 절세효과와 사업 고도화를 위해 법인사업자의 형태를 가져가기도 합니다. 때에 따라선 여느 중소기업보다 종사자수가 많거나 매출이 더 클 수도 있습니다.
조금 알기쉽게 설명하자면, 50평 이상의 매장공간과 20평 이상의 주차공간을 보유한 갈비집의 경우 월 매출만 수억을 달성하는 곳도 있습니다. 주방과 접객에 동원되는 인원이 20명을 넘기기도 하죠. 한참 R&D에 골몰하는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 중에는 직원 수나 매출 모두 갈비집 발꿈치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자영업 vs 기업 – 뭐가 다른걸까?
그렇다면 ‘자영업’이란 뭘 말하는 걸까요? 뜻밖에도 다단계 마케팅이 최고조에 달하던 시절, 경영경제분야 필독서로 꼽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이 자영업에 대해 가장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선 자영업자를 ‘Self-employed’, 즉 “자신이 자신을 고용한 형태”라고 간단명료하게 말합니다. 사업자 자신이 생산수단이나 생산시스템에 메어있을 때 소득을 올리게 되는 형태의 사업이 자영업이라는 겁니다. 이 말인 즉, 사업자 자신이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거나 소외될 때 생계가 곤란해진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일반적으로 월급쟁이라 부르는 노동자, ‘employee’와 동일한 운명을 지닌 존재로 보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번 정리하자면 보통 우리가 ‘기업(회사)’라 부르는 조직의 상대적 개념이 ‘자영업’, ‘자영업체’, ‘자영업자’인 거지, 규모가 작거나 사업자등록증에 간이과세자나 개인사업자로 인쇄되었다고 해서 자영업이 아닌 거죠.
그렇다면 여기서 ‘기업(회사)’이란 뭘까요? 자영업에 비하면 상당히 조직화되고 고도화된 사업체를 말합니다. 소위 조직도가 그려지는 조직이죠. 사람과 사람의 역할과 기능이 구분되고 조직되고, 이에 따라 움직이는 전문성이 강화된 비즈니스 집단입니다.
이들은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비즈니스 모델이 돈을 벌어들이도록 비즈니스를 구조화합니다. 따라서 자영업과 달리 기업은 누구 한 사람이 있고, 없고로 영업이 단절되지 않습니다. 경영자가 생산수단이나 생산시스템에서 분리되어 있어도 영업이 이루어지고 돈을 벌어들입니다.
여기서 “영세한 회사들은 그렇지 않아요. 당장 우리 회사만해도 그래요!”라고 항변하실 수 있는데요. 이건 조금 다릅니다. 회사가 어려운 상황이거나 이제 막 성장하는 상황 속에 처해 있다면, 경영자가 혼자 1인다역을 하기 때문에 경영자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인 거라서요. (그러니 조금만 더 힘내세요! 반드시 좋은 날 올 겁니다.)
◆ 소상공인 vs 중소기업 – 뭐가 다른걸까?
사업의 규모를 어림잡는 구분에 적합한 표현은 ‘자영업자’보다는 ‘소상공인’이라는 표현이 보다 정확하다고 봅니다. 이건 아예 대한민국 법률(소기업 및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특별조치법)에서 정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 법률에 따르면, “도소매, 서비스업은 상시근로자 5인 이하, 제조업, 건설업, 운수업은 상시근로자 9인 이하일 경우 소상공인”이라 부릅니다. 요즘은 더 세분화해 ‘소공인’이라는 말도 나왔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상시근로자 9인 이하인 경우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5인 이하, 9인 이하라는 소상공인 구분 기준을 넘어설 정도로 규모가 크면 중소기업으로 분류할 수 있을까요? 그건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맨 처음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말할 때 설명했어야 했는데 이야기의 흐름이 이렇게 되다보니 이제 서야 언급하게 되었습니다. (왠지 죄송합니다.)
중소기업의 기준 또한 법률이 정하고 있는데, 소상공인과는 달리 인원수로 분류하지 않는다는 점이 다릅니다. 『중소기업기본법 시행령』을 보면, “중소기업은 평균매출액 400~1,500억 원 이하이면서 자산총액이 5,000억 원 미만의 기업”을 말합니다. 즉, 개인사업자나 법인사업자의 구분, 임직원 수나 조직 규모로 어림잡는 개념이 아니라는 거죠. 중소기업 안에서도 중기업과 소기업으로 구분하는데, 중기업과 소기업의 분류 기준 또한 세부업종에 따라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소상공인은 자산과 매출액 면에서 중소기업 영역에 속하기에 중기업 또는 소기업으로 보게 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소상공인에게서 우리가 상상하는 전형적인 중소기업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정부의 창업지원에 있어서도 스타트업과 소상공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는 겁니다.
◆ 1인기업 vs 프리랜서 – 뭐가 다른걸까?
이왕 이야기 나온 김에 1인기업과 프리랜서의 차이에 대해서도 따져보겠습니다. 이 둘은 정말 비슷해서 구분짓기가 참 어렵습니다. 과거처럼 사업자등록 유무로 판단하는 건 큰 오산입니다. 고소득을 올리는 프리랜서들의 경우, 세금계산서 발행이 필요하기 때문에 진작에 사업자등록을 하고 있고, 절세혜택을 위해 1인법인을 설립해 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좀 긴 설명이 필요합니다.
1인기업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설명부터 차근차근 살펴보면요. “스스로 사장이면서 직원인 기업”을 1인기업이라 하는데요, 이건 일할 때 필요한 다양한 비즈니스 페르소나를 떠올리시면 금새 이해될 겁니다. 대외적으로는 ‘대표’로서 회사의 이미지와 입장을 표명하고, 대내적으로는 ‘대표’로서 업무를 구조화하고 의사결정에 돌입합니다. 실무에 돌입할 때는 ‘전문가’이자 ‘실무자’로서 책임감을 갖고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는 거죠.
프리랜서는 1인기업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재능과 능력으로 돈을 버는 개인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안을 처리하는 플레이어” 한 사람으로 한정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 살펴볼게요.
“나는 다른 건 모르겠고 디자인만 하고 싶어!” 이런 분이 있습니다. 어느 회사에 디자이너로 취업해 일하다보니 의외로 디자인하는 시간은 적고 회사 조직이 원하는 일을 많이 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자기성취가 부족해지고 일이 재미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디자인 잘한다는 소문이 퍼지다보니 여기저기 의뢰가 들어오기도 합니다. 회사생활에 대한 동기부여도 떨어지거니와 회사를 다니면서 다른 회사의 일을 해주기도 뭐 하다 보니 들어오는 일감을 가지고 독립을 꾀하게 되는 거죠.
◆ 관건은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1인기업과의 결정적인 차별점은 혼자 따로 일한다는 점뿐이라는 겁니다. 이들은 굳이 대내외적인 대표 업무를 하지 않습니다. 전문가와 실무자로서의 비즈니스 페르소나만 존재한다는 점이죠.
따라서 비즈니스 모델을 구체화하려 노력면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1인기업은 기업으로서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상품화’한 후 이를 ‘사업화’합니다. 즉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형태로서의 비즈니스 모델이 존재한다는 거죠. 자신의 능력을 판매한다기 보다는 비즈니스 모델이 매출을 올리는 형태를 갖추려 노력합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만일 이 글을 쓰는 저 윤준식 편집장이 창업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전하는 세미나를 만든다든가 컨설팅을 진행해 돈을 번다면 강사료나 컨설팅비를 벌어들이는 ‘프리랜서’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내용의 프로그램을 하더라도 이를 유형화하는 노력이 들어간다면 1인기업이 됩니다. 이왕 하게 될 강의 콘텐츠를 잘 정비해 녹화해 ‘상품’의 형태를 만들고, 동영상 교육플랫폼을 활용해 ‘서비스’한다고 보자고요. 이를 마케팅 차원에서 효과를 발생시키기 위해 자체 창업아카데미를 구축하고 이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프로모션 활동을 전개한다면 이 지점부터는 동영상 교육 서비스 판매를 주력으로 한 ‘1인기업’이라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이는 자영업과 기업의 구분과도 같은 방식의 구분이라 볼 수 있는데요. 프리랜서는 고객에게 밀착해 지속적인 용역을 수행해야 매출이 발생하지만, 1인기업은 여기서 나아가 고객에게 밀착해 있지 않더라도, 상품과 서비스가 지속적으로 제공되며 매출을 발생시키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설명드리고 싶습니다.
◆ 스몰 비즈니스: 새로운 형태로 등장하는 작은 규모의 창업자들
이밖에도 새로운 형태의 창업자는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요즘 많이 회자되는 로컬크리에이터, 사회적기업의 경영주체, 창직을 통해 등장하는 다양한 비즈니스 페르소나들까지 포함하면 끝도 없습니다.
따라서 처음 시작하는 창업자,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성장을 꿈꾸는 창업자들처럼 작은 규모의 사업자들은 어떤 틀에서도 이야기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창업 21년차가 된 저도 여전히 창업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이 영역에 정답은 없습니다. 성공창업의 대명사인 백선생이 왔다가도 감당 못할 정도로 스몰비즈니스의 영역은 넓고 세밀합니다.
그래서 규정하기 어려운 작은 규모, 적은 매출의 사업자들을 통틀어 말하기가 애매한 상황입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스몰 비즈니스’라는 용어로 이들을 통칭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차근차근 나눠보고자 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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