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8일, 서울의 서대문 서울아트시네마 8월 수요단편극장에서는 첫 장편 <딸에 대하여>의 개봉을 앞둔 이미랑 감독의 초기 단편영화 3편을 상영했다. 2005년작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 2007년작 <목욕>, 2013년작 <춘정> 등 20년 전 감독의 대학 졸업작품부터 감독과 함께 보고, 감독은 물론 함께 작품에 출연했던 배우 김기남, 강민선이 관객과의 대화를 나누었다.
GV에 함께 출연한 두 배우는 감독의 서울예대 졸업작품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의 남녀 주인공으로 20년의 인연을 함께한 이들이다. 김기남 배우는 9월 4일 개봉하는 <딸에 대하여>에 출연했으며, 강민선 배우는 감독의 2번째 단편 <목욕>에서 조감독을 맡은 바 있으며 현재는 드라마와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 중이다. 최근 개봉한 <빅토리>가 그가 참여한 작품이다.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이들은 과거를 회상하며 때로는 웃고 때로는 진지한 표정으로 영화와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미랑 감독의 단편들은 여성, 소수자, 이방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첫 작품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의 제작 계기에 대해 “의외로 단순했어요. 사회적인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는 생각은 전혀 못했고, 졸업을 해야 해서 졸업 작품으로 만들었어요”라며 “당시 학교가 있던 안산 지역이 공장이 많고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살던 곳이라 항상 보게 되던 현수막에서 영감을 얻었어요”라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전했다.
두 번째 작품 <목욕>도 문예창작과 졸업 작품으로 쓴 단편 소설을 각색해 영화화 한 것이라고 한다. 감독은 스스로 이 작품에 대한 불만을 여러 번 토로하기도 했다. 당시로서는 트렌스젠더를 주인공으로 하는 꽤 도전적인 주제를 다루면서 실제 트렌스젠더 여성을 캐스팅해 리얼한 감정과 연기가 배어나는 작품이지만 “지금 볼 때 굉장히 불편한 쇼트들이 많아요”라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공교롭게도 세 번째 단편 <춘정>도 감독의 대학원 졸업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모든 단편이 감독의 ‘졸업작품’이었다는 점도 이번 GV를 통해 알게 된 즐거움이었다. 이 작품은 연극만 고수하는 김소희 배우가 출연했다는 점에서 의미깊은데, 감독이 직접 쓴 가사의 노래를 극중 김소희 배우가 부르는 장면들이 이 영화의 독특한 정서로 작용한다.
이날 상영회에 참석한 관객들은 세 편의 단편을 보며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한 관객은 “세 편 모두 분명 유머러스한 포인트가 있는데, 함부로 웃지 못하는 마음 속 답답함과 불편함 덕분에 제가 살고 있는 세상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어요”라는 감상을 전했다.
곧 개봉할 첫 장편 <딸에 대하여>에 대한 질문도 여러 번 나왔는데, 감독은 “개봉을 앞두고 있지만 작업이 이어지고 있어 계속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든 피로를 다 날려버릴 만큼 부족한 옛 작품들을 보고 머리가 하얘졌다”는 자조 섞인 유머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장편은 예산도 커지지만, 수많은 전문 스태프들이 존재하기에 제 단단함을 유지하면서 작품을 해나가야 되는데 그 일이 굉장히 어렵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라며 창작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지 20년이나 되었지만 “단 한 줄의 시나리오가 그렇게 어렵게 쓰여지는지, 한 테이크 연기가 그렇게 어려운 건지, 하나의 쇼트를 찍기 위해 많은 스태프들과 예산이 들어가는지 장편을 찍기 전까지는 몰랐어요”라면서, “한 명의 감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타인의 경우처럼 보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그 감독이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가장 근래의 모습을 보고 싶으시다면 <딸에 대하여>까지 봐주시면 너무 감사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