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학(考現學)이란 '현대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유행의 변천을 조직적, 과학적으로 연구하여 현대의 참된 모습을 규명하려는 학문'을 의미합니다. [일상의 고현학]은 일상생활 속에 벌어지는 사안 하나를 주제로, 언제 어디서 시작되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펼쳐보는 이색코너입니다. 인터넷 검색 정보를 중심으로 정리한 넓고 얇은 내용이지만, 일상을 충실히 살아갈 수 있는 지식의 층위를 높여가 보자구요!
겨울이 다 갔는데, 해도 길어지는데, 3월인데 왜 이렇게 추운 거죠? 가장 예쁜 이름을 지닌 꽃샘추위만큼 감기로 고생시키 건 없는데요? 오늘은 감기와 감기약의 고현학입니다.
1. 근데 꽃샘추위와 감기 무슨 상관이 있을까?
꽃샘추위라는 이름은 봄꽃이 피는 걸 시샘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요. 초봄이 지나 따뜻해지고 꽃이 필 때 쯤 다시 날씨가 일시적으로 추워지는 기상현상 때문입니다. 꽃샘추위가 유난히 추운 이유는 일교차가 심해서입니다. 따뜻한 듯 하면서도 눈보라가 몰아치기도 하니까요. 여기까지는 다 아시는 내용인데...
그런데 일교차가 심하면 감기에 걸리는 이유는 몸의 온도 조절 메커니즘이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게 되어, 몸이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면역 시스템이 약화됩니다. 면역 시스템이 약해지면, 바이러스나 세균 등에 의한 감염이 쉽게 발생할 수 있으며, 이때 유행성이 있는 감기 바이러스에 쉽게 감염될 수 있습니다.
2. 인류는 언제부터 감기에 걸렸을까?
그래서 제가 찾아봤습니다. 우리나라의 감기 기록은 삼국사기를 통해 추측할 수 있는데요. 삼국사기에 실린 질병에 관련된 내용이 24건 정도인데, 이 내용으로 추측했을 때 겨울철에 유행성 감기가 돌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겨울철 감기조심”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게 2천년 정도 되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감기에 대한 더 오래된 기록이 있습니다. 기원전 1,550년 전, 지금으로부터 3,600년 전에 만들어진 이집트 파피루스에 감기에 대한 내용이 상형문자로 기록된 것이 발견되었는데요... ‘에버스 파피루스(Ebers Papyrus)’라고 알려진 파피루스에서 코막힘 감기에 대한 기록이 발견됐습니다. 감기 외에도 당시 이집트의 의학지식과 치료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는데, 재밌는 것은 수술 방법뿐 아니라 마법 주문, 영적 치료 같은 것도 포함하고 있다고 합니다.
감기에 대한 내용을 굉장히 신비롭게 서술하고 있는데요... “콧물을 뱉어내라, 점액의 아들아. 뼈를 잡고, 두개골을 만지며, 동물 기름으로 문질러라. 일곱 개의 구멍을 치료하라, 라의 신에게 봉사하고, 토트 신에게 감사하라. 그리고 나는 너를 위한 치료제를 가져왔다, 너를 위한 음료를 가져왔다, 쫓아내고, 치료하기 위해. 아들을 낳은 여자의 우유와 향기로운 빵...” (참조: 조선일보 23.11.24. <4500년 전에도 인류 괴롭힌 감기…이집트 상형문자로 기록>)
어떤 면에서는 오늘날의 코감기 치료법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치료제로 물약으로 주고 영양분을 보충시킨 것을 찾아볼 수 있어요.
3. 동의보감에 자세히 나와있지 않을까?
동의보감을 살펴보면 감기를 감한(感寒:차가운 기운을 맞았다) ,사시상한(四時傷寒:4계절 모두 찬기운으로 감기에 걸릴수 있다) 등으로 표현하여 그 원인, 증상 및 치료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감기의 원인을 차고 더운 것을 조절하지 못하거나, 몸조리를 알맞게 하지 못하면서 좀 덥기만 하면 옷을 벗거나, 몹시 더울 때 찬물을 지나치게 마시거나, 앉거나 누울 때 찬바람에 노출되거나 이슬을 흠뻑 맞거나, 서리와 눈을 맞거나,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지나치게 찬 공기를 마셔도 감기에 걸린다고 기록하고 있는데요. 면역력이 저하되는 잘못된 행동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어요.
이렇게 세세한 가르침을 주고 있는 이유는 동의보감은 예방의학과 공공 의료라는 개념이 담긴 세계 최초의 의학서적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세계 최초라서가 아닙니다. 대부분 동의보감은 허준 선생의 업적으로만 알고 계시는데, 사실은 허준 선생이 선조의 명을 받아 광해군 때 완성한 국가적인 프로젝트였습니다. 국가가 공공 의료를 책임질 것을 선포하는 선구적인 정책의 결과라는 점에서 큰 자부심을 갖는다고나 할까요?
얼마나 세세한 내용이 담겨있냐면 기침의 종류만 해도 16가지로 분류할 정도고, 증상면에서 유행성 감기, 보통감기, 목감기, 기침감기, 노인성 감기 등으로 구분하여 치료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세부적인 증상과 종류도 콧물과 코막힘, 재채기, 두통, 발열, 오한, 인후통, 인후 건조증, 쉰 목소리, 기침, 객담, 숨을 쌕쌕거리는 천명 등의 증상에 대해서도 상세히 다루면서 전신피로감, 관절통, 결막염, 설사, 고열 등의 합병증의 치료까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4. 감기에 쌍화탕이 잘 듣는 걸까?
많은 분들이 “감기엔 쌍화탕”으로 알고 계신데요? 땡입니다! 쌍화탕이 동의보감 처방은 맞는데요. 동의보감은 감기에 쌍화탕을 처방하지 않습니다. 갈근탕이나 소폐탕(소청룡탕), 십신탕 같은 약이 감기약에 해당합니다.
쌍화탕은 감기약이 아니고, 잘못 먹으면 오히려 증세가 심해질 수 있습니다. 특히 고열감기에 쌍화탕을 함부로 복용하면 안 됩니다. 인후통과 발열이 심한데 쌍화탕을 마시면 염증이 심해지고 열이 더 나게 됩니다. 쌍화탕은 면역반응을 활발하게 하기 때문에 급성 염증반응을 심화시키고 열을 조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쌍화탕(雙和湯)의 쌍화(雙和)는 기(氣)와 혈(穴)을 모두 화평하게 하는 처방이라는 의미로, 정신적·육체적 과로로 인해 나타나는 만성적인 피로와 병후 체력을 회복하는 데 쓰는 ‘피로회복제’입니다. 즉, 감기가 어느 정도 낫기 시작할 때부터 체력을 회복하는 데 아주 좋고, 오한기가 있으면서 으슬거리는 감기 초기에는 좋은 약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5. 감기약이 감기를 낫게 하는 게 아니란 이야기를 들었는데?
감기는 주로 바이러스에 감염됨으로써 발생하는 질병인데요. 감기약이 이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감기약은 감기의 증상을 완화하고 합병증을 예방하는 목적으로 쓰이는 약일 뿐입니다.
병의 원인이 되는 세균을 잡는 약을 ‘항생제’라고 하는데, 일반적인 감기 바이러스를 잡는 ‘항바이러스제’가 딱히 없는 상황이라고 해요. 그래서 우리가 먹는 감기약은 감기로 인한 증상을 완화해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서입니다.
결국, 감기는 결국 신체의 면역 체계에 의해 자연적으로 치유되는 질병이기 때문에 영양을 충분히 섭취하고, 몸을 따뜻하게 하며, 충분한 휴식을 취해 주면 된다는 거죠. 이런 점에서 3,600년 전 파피루스에 적힌 치료법과 지금의 치료법의 차이가 없는 거 같아요.
6. 그럼 종합감기약 같은 걸 복용할 이유가 없는 거 아닌가?
꼭 그렇지 않은게,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감기 바이러스를 이겨내는 동안 느끼게 되는 괴로움이 사람마다, 증상마다 정도의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감기약을 쓸모없다고 할 수는 없어요.
종합감기약이란 건 감기의 일반적인 증상을 종합적으로 처방해 놓은 약을 말하는데요. 종합감기약은 개별 증상에 맞춘 것이 아니라는 점이 장점인 약입니다. 우선 병원에 가서 의사의 처방을 받지 않고도 일반인이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특히 약 먹기를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물약형, 캡슐형, 알약형, 요즘은 과립형과 짜먹는 형태도 있어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7. 감기약 먹으면 졸리던데? 감기약 부작용 피해 먹는 법
감기약을 먹으면 졸리는 건 콧물이 나는 증상을 완화해주는 항히스타민제가 들어가면 그렇게 됩니다. 항히스타민제는 뇌의 히스타민 수용체에 작용하기 때문에 졸음을 유발하게 됩니다. 운전을 해야한다든지, 시험공부를 해야한다든지 그런 상황이 된다면 진료를 받으시고 다른 처방을 받으시는 걸 추천합니다.
졸린다고 커피라든가 카페인이 든 음료를 드시면 또 다른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데요. 감기약과 함께 커피, 녹차, 콜라, 초콜릿, 에너지음료 등 카페인 함량이 높은 식품을 함께 섭취하면 가슴 두근거림, 불면증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또 감기약이나 해열진통제를 복용 중일 경우 멀미약도 좋지 않으니 복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또 감기약을 오렌지 주스 등 비타민 음료와 함께 복용하면 효과적이라는 말은 절대 믿지 마세요. 음료수나 차에는 ‘탄닌’이라는 성분이 들어갈 수 있는데 탄닌은 약물을 흡착하기 때문에 약효를 떨어뜨린다. 우유와 유제품에 들어 있는 칼슘도 감기약이 체내에 흡수되는 것을 방해합니다. 뭐니뭐니해도 체온과 비슷한 미지근한 물 한 컵이 가장 약효가 좋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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