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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강 읽어보기(1)] 채식주의자: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24.10.16 00:20 의견 0

한국 노벨문학상 최초 수상자는 작가 한강이었다. 맨부커상을 수상했을 때부터 한국의 첫 수상자는 한강으로 어느 정도 예정된 셈이었다. 다만, 작가가 몇 작품을 더 쓴 후에 노벨상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맨부커상을 수상한 《채식주의자》는 최근의 세계적인 문학 트렌드를 반영한 작품이다.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의 작품 세계를 봐도 숨기고 싶은 개인의 생활을 작품화 시킨 작가의 실험과 과감성은 충격이라 할만하다. 개인적으로는 아니 에르노의 작품도 한강이 읽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개인이 사회 구조의 한 부속물로 억압받고 있는 현실을 표현해냈다. 2004년에는 오스트리아 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는데, 이때도 포르노냐 예술이냐 논란이 많았다.

그러나 이 두 작가와 비교하면 한강의 작품은 파격적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 그러나 한강만이 가진, 문체의 압축성이 여운을 남게 한다. 작가가 자세한 설명을 생략했기에, 독자는 생각해야만 한다.


◆작품을 읽는 시선

작품은 세 가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첫째, 여성작가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페미니즘’일 수도 있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세 편의 연작에서 작가는 등장하는 남성을 가부장적으로 그린다.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 아내를 하나의 인격체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본인의 성적 만족과 사회적 관념상 데리고 산다고 생각하며 주체가 아닌 객체로 취급하는 남편들. 작가는 유치하게 육두문자로 그들을 비판하지 않았고, 억압의 구조를 드러내 독자의 분노를 자아내게 만든다.

아내가 고기를 안 먹기에 손해 봤다고 생각한(먹고 싶으면 밖에서 사먹음 된다) 남편은 그런 사실을 장인과 장모에게 알린다. 딸 가진 죄인이 된 이들은 사위한테 용서를 구한다. 그러고 나서 가부장적 피라미드의 최상위에 위치한 장인은 딸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이후 남편은 이혼의 정당성을 인정받고, 아내를 버린다.

이런 작품의 전개를 통해 작가는 한국 사회 속 여성의 위치를 되짚었다. 20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성의 지위는 남성 아래다. 여성권이 신장 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여성은 남성의 아래에 놓여있다. 작품은 그 이전의 시대를 다루고 있으니 조금 과장됐다고는 하더라도, 현실 속에서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이야기다.

둘째, 사회적 관습, 관성, 통념에 대한 재고이다. 우리 사회의 관습과 관성은 무엇일까? 한국 사회는 유교주의와 편리주의가 합쳐진 유사 유교주의 사회이다. 장유유서를 따지지만, 분쟁의 여지가 있을 땐 힘이 나이를 지배한다. 결국 힘이 없는 자가 얻어맞는다.

작가는 영혜의 브래지어를 언급한다. 도드라지는 유두. 노브래지어에 대한 남성의 시선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정숙하지 못하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은밀하게 그 유두에 시선을 모은다는 것. 여성들은 어떨까?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여성들도 정숙을 따지고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여성을 못마땅하게 본다. 비단 여성에 대한 부분만이 아니다.

마지막 연재작인 《나무 불꽃》에서 작가는 여성의 사회적 순응을 은밀히 비판한다. 결국 영혜를 정신병원에 보낸 사람은 남성이 아니었다. 그녀를 잘 아는, 언니였다. 같은 여성이 봐도 이해할 수 없었기에, 아니 처음부터 이해할 생각이 없었다. 이런 언니한테, 영혜는 한 마디 한다. “……왜, 죽으면 안되는 거야?” 살아 있는 사람에게 죽음은 떠올리기 싫은 단어이다. 그러나 영혜는 식물을 본다. 죽은 고기를 씹어서 자신의 오장육부를 살찌우고 미각에 희열을 돌게 하기보다, 영혜는 햇빛만 받아도 살 수 있는 식물의 생존을 제시한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그리스 신화의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를 기억해야 한다. 죽음의 신과 대지 여신의 딸. 올해의 죽음 없이 다음 해의 꽃과 과수는 기대할 수 없다. 작가는 사회 속 관념과 관성 등을 죽은 고기라 명명한다.

셋째, 권력에 대한 도래하는 시간의 저항이다. 역사적으로 권력에 저항하는 방법은 봉기였다. 그 봉기의 힘이 약하면, 권력이 처참하게 일어나려고 하는 힘을 짓밟았지만, 봉기의 힘이 권력을 넘어서는 순간, 최고 권력자는 단두대로 향했고, 한국 사회에서도 하야, 죽음, 탄핵 등의 결과물이 나왔다. 물론 기존 권력자가 사라졌다고 해서 모든 게 바뀐 건 아니었다. 새로운 권력이 꼭 민중들에게 좋은 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작가는 봉기라는 방법을 제시하지 않았다. 당장 권력자를 누를 수 있는 더 큰 힘을 모으자고 선동하지 않는다. 다만,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라고 되풀이한다. 『채식주의자』에서는 무자비한 가부장적인 권력과 폭력으로 인한 한 개인의 파멸을 다뤘다면, 『몽고반점』에서는 한 여성이 예술을 빙자한 폭력적인 예술가의 희락으로 소비되는 포르노를 보여준다. 외도, 부정을 저지르고서도 반성하지 않고, 자신의 예술혼을 인정해 주지 않는 아내에게 떳떳한, 자가당차적인 남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무 불꽃』에서 비로소 작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쏟아낸다. 여전히 자신의 주체성을 찾기보다, 남편, 자녀, 여러 상황에 속에 자신을 놓아야 편안함을 느꼈던, 그러다가 문득 그 위치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기 시작한 한 여성의 고민을 통해, 완성되지 못한 저항을 읽을 수 있다. 완성되지 못했기에 작가는 ‘시간’을 가져다 쓴다. 멈추지 않는 시간을 통해 시간이 더 흐른다면, 바뀔 수 있을 거란 소망을 담는다.

◆생태주의 목소리 : 고기를 먹는 것,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이다

영혜는 처음부터 채식주의자가 아니었고, 끝까지 아니었다. 그녀는 고기를 안 먹을 뿐이었다. 그런 그녀를 사람들은 채식주의자라고 규정한다. 채식주의자는 육식을 하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 자신의 욕망–다이어트, 건강한 몸 등–을 위해 개인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어차피 죽은 식물을 먹는다는 의미에서 고기를 먹는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혜의 회피는 죽은 것들에 대한 회피이다.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피를 머금은 동물을 먹는다는 의미다. 그 피 맛을 즐기면서 인간은 만족한다. 아울러 살을 찌우고 근육을 만드는 데, 고기는 좋은 영양을 공급한다. 나의 근육과 몸을 위해 다른 생명체를 죽이고 먹어 치운다. 이기적인 탐욕이다. 그리고 이런 탐욕을 위해서 인간은 돈을 벌고, 권력을 추구한다.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그의 책 『육식의 종말』에서 지구 환경오염의 최대 주범은 소와 돼지를 먹는 인간의 식생활이 문제임을 증명했다. 살아있는 생명을 죽일 수 있는 타당성이 인간에게만 있을까, 없다. 다만, 인간이 그 타당성을 억지로 발견하고 정당성을 부여할 뿐이다.

그래서 채식주의자는 일방적인 사회적 관념이며, 편견이 된다. 이런 편견에서 벗어나 작품을 읽으면, 생태주의자가 된다. 영혜는 점점 말라가면서 체중이 30킬로까지 줄었다. 주변 사람들의 우려 섞인 말에 영혜는 대답한다. “밥 같은 거 안 먹어도 돼. 살 수 있어. 햇빛만 있으면.”

◆이전에는 ‘무의미’였더라도 앞으로는 ‘의미’로

작품은 갈등을 봉합하지 못한다. 영혜는 이혼당했고, 가족과 멀어졌고, 결국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격리됐다. 그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부터 그녀를 외면했다. 그러나 배신감을 느끼지 않는다. 원래 인간은 그런 거야라고 말하며 모든 상황에 순응한다.

조금 오래전으로 돌아가 보자. 독일의 법학자 칼 슈미트는 ‘노모스(nomos)’를 말했다. ‘정해진 공간’, 조금 의역하면 ‘표준’이라고 할 수 있다. 표준은 전체적으로 볼 때, 문제없다. 그러나 개인적인 공간, 이념, 사상 등을 제한한다. 우리가 살아온 집단은 집단의 유지를 위해 개인을 제물 삼는다. 한강은 이런 전체주의적 잔재를 청산하려고 한다. 그러나 아직 역부족이다. 단지, 고민이 시작됐을 뿐이다.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오래전의 어린 시절부터, 다만 견뎌왔을 뿐이었다” 작가는 한 여성의 인생을 판별한다. 생명이 있으나, 살아본 적 없는 여성의 삶. 그러고 나서 결론을 내린다. “이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라고.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무의미는 이전 삶에 대한 것이다. 앞으로의 삶에 대한 변화 의지를 담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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