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도심 속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조성된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 (사진: 방랑식객)

방랑식객의 첫 번째 행선지는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된 대구다.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과 인근의 맛집을 탐방하는 2가지 목적 달성의 의지로 불타올랐으나, 대구에 도착한 때는 오후 3시가 조금 지난 시각으로 살짝 해가 지려는 시간대였다. 사실 이 시각은 사진촬영이나 탐방을 하기엔 다소 늦은 시각이다. 겨울 해가 일찍 지는 것도 문제지만, 햇빛이 비춰지는 각도가 낮아서 사진이 예쁘게 찍히지 않을 수 있어서다.

그럼에도 방랑식객이 이 시각을 골랐던 건, 탐방이 끝나자마자 바로 저녁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킨 후, 그 뒷맛을 곱씹으며 약간의 산책을 하고, 그 다음에 맛있는 식사가 이어지면 머리와 가슴과 배가 모두 채워지기 때문이다. 전시관에서 공급된 지식으로 인한 지적 만족과 더불어, 오래된 골목이 채우는 감성을 만끽하고, 그 와중에 생긴 공복감은 맛있는 음식이 들어가며 만복감으로 연결된다. 적은 비용과 시간에 비해 만족감이 넘치는 소소한 호사스러움을 즐길 수 있다고나 할까?

이런 기대감과 별개로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에 도착하기까지 찜찜한 생각이 머리를 짖누르고 있었다. 국채보상운동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다는 게 찜찜함의 이유였다. 분명 중고등학교 시절 국사 시간에 배웠고, 시험에 나온다고 해서 달달 외운 것도 많았는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개화기 이후 나라를 잃고 다시 찾기까지 어마어마한 사건들이 서로 연관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수업시간도 길었고, 시험문제도 많이 나오는 부분이라 열심히 공부했었는데 남은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구 중구 원도심 관광의 중심에 있는 기념공원 (사진: 방랑식객)

■국채보상운동의 발자취를 따라

기념공원 자체는 평범했다. 원래 이곳은 국채보상운동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던 장소는 아니었다. 원래 1982년에 ‘동인공원’으로 조성한 공간으로, 일제 강점기 이후 적산가옥의 형태로 경북도지사 공관이 있었다고 한다.

IMF 구제금융이 들어온 직후인 1998년부터 1999년 사이 국채보상운동 정신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자는 취지로 옛 대구여자고등학교와 대구시경찰서 자리까지 4만 3000㎡ 규모의 공원으로 개축하며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인근의 지하 주차장, 원도심이 연결된 공간으로 재탄생했고, 국채보상운동 기록전시관은 이보다 10년 뒤인 2009년에 개관했다.

기념관 입구에서 측면으로 난 길의 양 옆에는 12개의 기둥이 도열해 있었다. (사진: 방랑식객)

평일 오후라서인지 공원을 찾은 시민은 많지 않았다. 공원을 조금 둘러본 다음 기념관으로 향했다. 우리 일행을 제외하곤 국채보상운동 기념관을 향하는 발걸음은 없었다. 공원에서 전시관으로 진입하는 길목에 12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었는데, 이 사이를 걷는 짧은 시간 동안 살짝 숙연한 기분이 들었다.

기념관에 들어가니 자원봉사자로 보이는 분이 가볍게 관람안내를 해준다. 전체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짧은 영화를 한 편 보고 관람을 시작하라고 하는데, 어린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버전과 성인을 위한 다큐 버전 2가지가 있었다. 마침 먼저 온 엄마와 딸 일행이 들어와 있어 함께 애니메이션을 잠깐 감상했다.

기념관 입구 (사진: 방랑식객)

■1907~1910년까지 4년의 모금운동의 기록

전시공간으로 들어가니 애니메이션으로 살펴본 스토리 순서대로 전시배치가 이루어져 있었다. 국채보상운동의 발단이 된 사건에서부터 진행과정을 연대순으로 보여주고 있었고, 국채보상운동이 확산된 지역들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시도했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점은 국채보상운동의 역사적 사료가 된 기록물들을 모아 전시하고 있었던 점과, 비록 일제의 방해로 실패한 국채보상운동이 사그라들지 않고 ‘물산장려운동’으로 연결된 것을 함께 보게 해준 점이었다.

매우 아쉬웠던 점은 국채보상운동의 확산을 보여주는 지도 모양의 전시물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건데, 버튼을 누를 때마다 운동의 확산 형태가 전기장치를 통해 표현되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단정할 수 없지만, 고장나고 방치된 지 제법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기도 했다. 처음부터 고장이 덜 나는 형태로 했거나, 유지보수가 간편하도록 했어야 했는데 매우 안타까웠다.

2개 층으로 나뉜 전시장을 둘러보는 데는 40여 분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물론 기록물 하나하나를 꼼꼼히 읽고 메모한다면 90분은 잡아야 할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전시관 홈페이지에 많은 내용이 담겨 있어 눈으로 확인하고 가슴으로 느끼는 동기부여만으로도 충분했다. 홈페이지에는 세세한 기록물 하나하나의 사진과 설명까지 제공하고 있다.

아쉽게도 우측 하단의 콘트롤패널의 버튼 몇 개가 작동하지 않았다. (사진: 방랑식객)

■바다 건너 이어진 애국의 손길

이렇게 기념관 방문을 마치고 나오는데, 출구 쪽에서 작은 안내 브로셔 하나가 눈에 띄었다. ‘바다 건너 전해진 작은 손길, 큰 울림’이라는 특별기획전이 진행중이라는 거다. 장소를 살펴보니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 1층 모아갤러리에서 하고 있었다. 도서관이라는 또 다른 장소에 호기심이 생겨 이번에는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념관의 상설 전시가 국채보상운동 전체를 한눈에 보여주고자 했다면, 이번 특별전은 해외의 국채보상운동을 집중적으로 재조명하고 있었다. 전시 내용을 2가지로 정리하면, 조선 말 생계와 독립운동을 위해 전 세계로 흩어진 코리안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위국충정과 헌신, 한국을 사랑하는 세계인들의 성금 기탁으로 말할 수 있겠다.

해외로 이주한 한인 공동체의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먹고 살길을 찾아 이국땅으로 갔지만,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중노동을 해야 했고, 생활을 위한 기반도 없었다. 조국은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지만,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힘든 와중에도 성금을 보내왔다. 당시의 한반도 땅을 밟았던 외국인들 중에도 한인들과 한인들의 나라를 사랑하고 후원하는 마음으로 성금을 기탁하고 힘쓴 이들의 마음도 소중하게 여겨졌다. 외모도, 언어도, 생각도 많은 차이를 지닌 이들에게 무엇이 작용했을까?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 1층 모아갤러리의 특별기획전 (사진: 방랑식객)
하와이 동포들의 모금 기록 (사진: 방랑식객)

■이제 동인동 찜갈비 골목으로

최근의 시끌시끌한 사회 이슈들로 머리가 지끈거렸기에 특별전을 둘러보는 내내 “왜?”, “무엇 때문에?”라는 질문이 꼬리를 물고 따라다녔지만, 대구의 지인을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이 다가와 잠시 미루게 되었다.

기념공원에서 지인과 만났지만 어쩌다보니 대구 원도심을 이리저리 방황하게 되었고, 그 과정 속에서 숨겨진 비밀스런 카페 한 곳과 정말 맛있는 디저트 가게 한 곳을 알게 되었다. 이건 또 언젠가 나눌 이야기로 접어둔다. 지인과 헤어지기 전에 국채보상운동공원 인근의 맛집 정보를 확인하고자 동인동 찜갈비 골목에 대해 물어보게 되었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을 듣게 되었다. 찜갈비가 너무 뻔하지 않냐며, 찜갈비보다 더 저렴하고 개성있는 메뉴를 추천받게 되었다. (계속)

(사진: 방랑식객)